그림을 찍다, 글을 찍다 – 만레이 사진전을 보고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6일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만레이 사진전에서


만레이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사진에선 그림의 느낌이 묻어났다.
실제로 사진 중엔 그림을 찍어놓은 것도 있었다.
그림을 찍어놓으면 그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아닐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화가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피사체에게서 그림의 느낌이 날 때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인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앵그르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앵그르 그림 속의 여인네들이 가졌던 몸의 느낌을
고스란히 짐작하게 만든다.
그는 앵그르가 이룩한 그림 속 여인네들에게서 몸의 느낌을 빌려오고
그 위에 바이올린의 문양을 얹어 자신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제목을 보기 전에 나는 여인의 등 뒤에 그려진 그 바이올린 문양을
문의 손잡이로 착각을 했다.
나는 한 여인의 내면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고픈 우리들의 소망을 생각했다.
나중에 제목을 알고 나니
여인의 몸이 바이올린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가 여인의 몸에서 음악을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라고 생각했을 때보다 여인의 몸이 더 감미롭고 깊어 보였다.
그건 한폭의 그림이었다.
앵그르의 화풍에 그의 느낌이 얹어진 독특한 그림이었다.

그러고 보면 만레이는 사진을 찍었다기 보다 그림을 찍은 셈이다.
그럼 나의 사진은 무엇을 찍고 있는 것일까.
난 사진을 찍고 있다기 보다 글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림을 찍는 것이 카메라를 든 화가의 숙명이라면
글을 찍는 것은 카메라를 든 글쓰는 자의 숙명이랄 수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글을 찍으러 떠나고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2월 6일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만레이 사진전에서

8 thoughts on “그림을 찍다, 글을 찍다 – 만레이 사진전을 보고

  1. 경험이 많아야 좋은때 멋있는 장면을 잘찍을 수 있습니다.
    저도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설경장면을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1. 산으로 좀 올라가면 좀더 멋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그냥 밑에서 찍다가 왔습니다.
      다음에 여유되면 설악산이나 오대산 정도 가서 다시 찍어야 겠어요.
      미시령엔 올해 벌써 네번째 눈이 왔다고 하더군요.

  2. 앵그르 그림의 화풍이 묻어나는 사진작가 군요.
    화가와 사진작가는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것 같군요.
    얼마전에도 해외에서 고호 .세잔느.고갱등이 사진을 참조해서 작품을
    제작햇다고 화제가 되었는디…^^
    동원님도 글을 찍는 좋은 사진.작가이십니다.
    강원도에서도 겨울풍경 사진 많이 찍으셨는지…

    1. 눈풍경은 항상 좋은 사진이 되는 거 같아요.
      늦게 출발했는데도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찾아내서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저희가 사진찍고 내려오니까 불도저가 그 길의 눈을 치우면서 올라오고 있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좋은 장면을 놓쳤을 거예요. 제가 정말 때는 잘 맞춰서 돌아다닌다니까요.

    1. 강원도 미시령으로 사진찍으러 갔다가 지금 들어왔어요.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서 미시령으로 올라가다 꼭대기까지는 못가고 중간쯤에서 사진을 찍었네요.
      그림같이 찍혔어야 하는데…

  3. 그래서 화가가 찍는 사진이 다르고,
    작가가 찍는 사진이 다르구나.
    만레이의 저 사진은 참 유명한 사진인데 직접 보니까 느낌이 다르더라.

    1. 만레이는 사진전에 나온 다른 사진 작가들하고는 너무 구별이되더라. 다른 작가들은 모두 사진작가들 같았는데, 만레이는 화가의 느낌이 더 강했어.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