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0일,
나는 영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날 날씨는 쨍하다 못해 무더울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영주에서 내린 나는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부석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 건물,
바로 무량수전을 처음 만났다.
보통 절의 건물이 대부분 단청으로 덮혀 있는데 반하여
무량수전은 나무의 결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커다란 연못과 폭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만으로는 볼 것이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연못만으로도 볼 것이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연못 속에선 물들이 끓어오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려 하고 있었다.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의 나무는
그 몸의 한가운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이끼류의 하나일 것이다.
화려함으로야 폭포와 분수로 치장한 연못을 따를 수 없지만
부석사엔 그냥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는 나무들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종은 말이 없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침묵은 여전하다.
하지만 귓전에는 웅하는 울림이 퍼지는 느낌이다.
침묵도 때로는 우리의 귓전에 그 느낌이 분명한 울림을 만든다.
삼신각.
오늘은 또 누가 이곳에서 아이를 받아갔을까.
무량 수전.
왼쪽에서 보다.
무량 수전.
오른쪽에서 보다.
좌우의 어느 한쪽을 고집하지 않을 일이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뱃머리의 형상이어서
금방이라도
지상의 중력을 뒤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갈 것만 같다.
뱃머리를 상상했더니
서까래는 노로 보이기 시작한다.
힘차게 저어보자.
붙박힌 이 자리를 훌훌 털고,
저 넓은 창공으로 떠나보자 꾸나.
나무는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
건물을 이룬다.
우리 또한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
세상을 이룬다.
기둥도 숨을 쉰다.
살아있을 때는 잎을 흔들어 바람을 호흡하지만
죽어 기둥이 되었을 땐
몸으로 호흡한다.
갈라진 틈새는 숨의 길이다.
이름자를 적을 때
사람들의 소망을 담았을 저 종이 쪽지들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소망이 아우성을 치며 달려가는
저 끝자리엔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부처님의 공력은 놀랍다.
아우성을 치며 달려가던 소망이
그 앞에 이르면
모두 조용히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그 앞에 이르러
조용히 소리를 죽였으니
아마도 부처님이 그 모든 소망을 조용히 들어주셨을 것이다.
아마도 돌을 쌓은 원래의 뜻은
그렇게 돌을 쌓아 터를 다지고
그 위에 건물의 자리를 마련하려 했음이리라.
그러나 그 자리의 한쪽 구석에선 놀랍게도
고사리가 그곳을 제 삶을 가꾸는 생명의 터전으로 삼고,
고집스렇고 굳은 돌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
지붕을 얹은 원래의 뜻은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종종
작은 생명의 텃밭이 되기도 한다.
알고보면
그 생명의 시작은
바로 지붕으로 막으려던 빗줄기이다.
살려고 빗줄기를 막았는데
지붕 위에선 그 빗줄기가 생명을 키우고 있다.
4 thoughts on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제가 학교에서 영주 부석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사진과 님의 경험담을 보니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거운 탐방이 될 거예요.
아주 인상에 깊이 남는 절이었거든요.
자주 들러주시니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온갖 소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땐 조용한 산사를 떠올리게되는데 역시 한번 떠나려면 쉽지않더군요. 사진으로나마 그리고 언제나 섬세한 감각의 글로나마 위안을 얻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