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있으면 다정한 둘이 되는데
셋이 있으면 다정한 셋이 아니라
종종 다정한 둘과 외로운 하나로 나뉘어진다.
둘이 다정해 보이는 것은
둘이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정해 보인다는 것은 둘 사이의 거리가 지워져
둘이 하나로 겹쳐 보인다는 뜻이다.
세상의 사랑하는 둘은 모두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렇다고 물론 그 둘이 하나가 될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둘은 그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둘의 곁에 하나가 있을 때면
그 착시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하나의 외로움이란 실제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둘에 대한 그러한 착시현상에 기반한다.
둘은 하나와 하나의 둘로 나뉘어 살다가도
하나가 곁에 있을 때면
하나로 들러붙어 하나의 외로움을 조장하며
셋이 되는 것을 극히 꺼린다.
셋이 아니라 둘,
즉 하나가 된 둘과 하나인 하나로 셋을 둘로 나누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셋은 종종 다정한 셋이 아니라
다정한 둘과 외로운 하나로 나뉘곤 한다.
12 thoughts on “둘과 셋”
저흰 다정한 둘과 외로운 셋인데.ㅋㅋ
동원이랑 저는 꼭 껴안고 잘 정도로 다정이 지나치고
나머지 남편이랑 딸아이 둘은 각자라서.^^
야, 요거 재미나네요.
집집마다 나눠보는 거.
저희는 다정한 둘과 외로운 둘이예요.
포레스트(구 통통이)와 딸이 아주 친하고, 저랑 어머니는 따로 놀거든요.
가을소리님… 울 동원이는 제가 껴안고 자는데요…ㅎㅎ
^^ 우리 꼬맹이동원이라해두죠.^^
커버리면 그렇게 제 품에 파고들지도 않겠죠?
제품에 꼭 맞지도 않을테구요.
지금은 너무 작고 사랑스러운데다 애교가 많은 아이라서
마구 커버려 제 품을 떠나면 무지 섭섭할거같아요.
아마도 우리 어머님도 그러시겠지요…
털보는 할머니가 귀하게 애지중지하셔서 할머니랑 같이 잤다고 하더라구요. 품안에 그렇게 쏙 들어오는 자식은 그때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며 선물이잖아요. 품안에 품지 못할 때는 마음에 품어야 하는게 또 자식인 것 같구요…
아..마음에 품어야겠군요.ㅠㅠ
딸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아들은 무척 집착을 하게 되네요.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어떻게 줄수있어?하는.ㅋㅋ
그렇다잖아요. 며느리 될 아이가 라이벌로 보인다는.ㅋㅋ
전 질투심이 많아서 마음 넓은 시어머니역은 못할거같아요.
하나 하나 다 시샘할거같아서 차라리 아주 멀리 멀리 보내서
제 눈에 안띄는곳에 살았음 좋겠어요.
저 너무 우습죠.
이런 마음이 들때는 군대 보냈다가 의문사한 가족들 생각하면 굉장히 화가나기도.ㅡㅡ
딸들은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그냥 저랑 살면서 맛있는거 해먹고 그럼 좋겠어요.^^
나를 중심으로 한 하나와 또 다른 하나
다시 말하면, 나를 통하지 않고선 소통하지 않는 둘을 데리고 셋이었음 하는 바램.
현실이 따라주질 못하니 욕심만 많아지네요. 하하
아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건지… 긁적긁적
말이 헷갈려서 “나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둘을 데리고 셋으로 살고 싶은 바램”으로 다시 읽었어요.
그 소설 제대로 읽었네.
그게 욕심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이상적 관계가 아닌가 싶어요.
다만 이상이라는게 역시 꿈같은 것이라서 그렇게 사는게 힘들다는 것 뿐.
우리가족은 말이죠… 둘과 하나 맞아요…
그둘의 동일함에 때론 자빠집니다!!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어떻게 저렇게 나를 닮나 싶어서.
가족이면 셋은 너무 화목해 보이는데…
가족이야, 뭐, 넷도 다섯도 하나가 되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