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보내지만 역사는 보내지 않는다 – 나눔의 집 송년회

올해도 예외없이 한해가 저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동체인 나눔의 집에서도 한해가 저물기는 마찬가지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상에 밝히고, 숨겨야할 수치로 강요받았던 과거를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해야할 죄임을 외치고 나서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반짝 관심의 대상이 될 뿐 아직도 정부나 우리 국민으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해가 저물 때마다 나눔의 집에선 한해가 아쉽다.
그 아쉬움 속에서 오늘(27일) 나눔의 집에선 자원봉사자들과 그간 도움의 손길을 보태준 사람들이 모여 송년회를 열었다.
그 현장을 사진으로 스케치했다.
(나눔의 집 홈페이지: http://www.nanum.org
또는 http://www.cybernanum.org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Photo by Kim Dong Won

이용녀 할머니.
할머니는 오늘 곱게 차려입으셨다.
“할머니, 오늘 옷이 참 고우세요”라고 했더니
“이런 날은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
그냥 대충 입고 왔더니 사진이 너무 추레하게 나와”라고 하신다.
일단 먼저 할머니의 고운 자태를 사진에 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송년회는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도 있지만
역시 그 기쁨 중 가장 큰 하나는 보고 싶은 얼굴들과의 만남이다.
간만에 본 얼굴들과 주고받는 얘기는 그것만으로 큰 즐거움이다.
오른쪽부터 이용녀, 이옥선, 박옥련 할머니,
그리고 왼쪽에서 뒷줄 두번째는 박옥선 할머니.

Photo by Kim Dong Won

김순옥 할머니는
나눔의 집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청 원장의 목에
팔로 목걸이를 둘러주셨다.
그냥 목걸이와 달리 팔목걸이엔 따뜻한 정이 흐른다.
그것이 팔목걸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몸이 아픈 문필기 할머니와 지돌이 할머니를 빼고
이제 할머니들이 모두 자리했다.
오른쪽부터 의자에 앉은 순으로
배춘희, 강일출, 이용녀, 이옥선, 박옥련, 김순옥, 박옥선, 김군자 할머니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할머니들의 건강한 얼굴을 보는 것이 송년회의 가장 큰 기쁨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올해는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할머니들의 동시 증언 집회가 개최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할머니의 증언을 접했던
연세대 신학과 3학년 유이정 학생은 이 날 송년회 모임에 참가하여
이곳에 오게된 계기를 설명하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유이정 학생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김군자 할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흐뭇한 표정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올해의 송년회엔 멀리 일본에서 온 두 명의 일본인이 함께해 주었다.
왼쪽은 치에, 오른쪽은 루이이다.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하루 전에 나눔의 집을 찾았다.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나 할머니들께 깜짝 즐거움을 선물했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없어지는 사회를 위해
할머니들의 운동에 동참하고자 그들은 이 자리를 찾았다.
일본 극우 인사들의 망언을 접할 때마다 멀어지기만 하던 일본이
이 날 이 두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들 가까이 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들이 식사하는 동안
루이와 치에씨는 계속 잔심부름을 하면서
할머니들의 식사를 도왔다.
뒤쪽의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도 일본인이다.
그의 이름은 무라야마 잇페이이며,
나눔의 집에서 연구원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통역을 맡고 있다.
이 날 할머니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일본과 한국이 나란히 한자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원당리 주민들도 이번 행사에 함께 했다.
이용녀 할머니가 동네 친구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이런 것을 보면 할머니는 역시 영락없는 우리의 할머니시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용녀 할머니가 과거를 얘기하다 담배 한대를 무신다.
일제가 패망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할머니의 그 옛날은
담배 한대를 빼어물지 않고선 얘기를 이어갈 수 없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오르는 현재형의 오늘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나 계속 분노 속에 잡혀있을 순 없다.
송년회 자리는 어찌보면 흥으로 그 분노를 덮어
내일 싸울 수 있는 힘을 준비하는 자리이다.
뒤풀이 자리에선 중앙대 사진학과와 경기도 광주 중앙고의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흥을 일으켜 세웠다.
그 중에서 중대 사진학과 3학년 김충환 학생은
김순옥 할머니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젊은 파트너를 맞은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오래 젊게 사시게 하려면
젊은이들이 더 많이 와야겠다.
젊게 오래 사셔야 두고두고 일본의 죄를 증언할 것이 아닌가.

Photo by Kim Dong Won

박옥선 할머니가 노래를 부를 때,
광주 중앙고의 학생들이 뒤에서 박수로 흥을 보태며
할머니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젊은이가 뒤를 받쳐주자 뒤가 든든했다.

Photo by Kim Dong Won

학생들이 돋궈주는 흥이 점점 정상으로 치닫자
할머니들의 춤도 위험할 정도로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젊은이들이 함께 해준다면
아직 할머니는 늙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경기도 광주 중앙고를 졸업하는 김미립 학생은 올해 숙대 영문과에 합격했다.
김미립 학생이 소양강처녀를 불러 할머니에게 노래를 선물로 드리자
할머니는 흥에 겨운 춤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가 돌려준 가장 중요한 것은
잊혀져 가던 아프고 쓰라린 역사이다.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올 한해를 보내지만
그러나 할머니들이 있기에,
그리고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역사는 절대로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지 않을 것이다.
나눔의 집 송년회는 한해는 보내지만
역사는 절대로 보내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면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4 thoughts on “해는 보내지만 역사는 보내지 않는다 – 나눔의 집 송년회

  1. 얘기하시다 담배 피우셨다는데선 같이 울분이 올라오고..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게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포레스트님께 카메라 맡기시고 김동원님도 춤추는 모습
    찍었음 좋았을텐데요.^^

    1. 외진 곳이라 담배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중앙대의 젊은 친구가 용케 구해가지고 들어왔어요.
      전에 한번 본 친구인데 정말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할머니가 담배 한대는 괜찮은데
      두 대 피우면 좀 어지럽다고 하는 말에선 목도 메이고…

  2. ^^
    진정 나눔이 필요함을 느끼는 ..
    감동의 포스트 잘보구 감니다.
    동원님께서는 두루두루 안다니시는곳이 없네요.~~~~
    좋은일도하시고요..
    복받으실거에요~~~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