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는 아주 얇다.
시골살 때,
우리들이 사는 대부분의 집에서
문은 그 창호지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창호지문은 반투명의 문이었다.
때문에 열어놓지 않아도
빛과 바람이 3할쯤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창호지문치고 찢어진 구멍하나 없는 문은 거의 없었다.
모든 창호지문은 마치 상처처럼 그런 찢어진 틈을 갖고 있었고,
작은 창호지 조각을 덧입혀 그 상처를 막은 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냥 그 상처를 방치한채 가을까지 그대로 살았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볕좋은 날을 골라 집집마다 문을 다시 발랐다.
그러면 문은 지난 한해의 흔적을 묵은 때 버리듯 깨끗이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문이 되었다.
몸의 상처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문을 바르듯 한해에 한번씩 깨끗이 그 흔적을 털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을 것 같다.
알고 보면 그것도 소중한 나의 옛날이거늘.
생각해보면 찢어진 문은 그 틈으로 솔솔 들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겨울 한철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겨울을 넘기고 나면 가끔 그 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찢어진 문의 틈처럼
우리들 마음의 상처는 알고 보면 세상을 내다보는 틈이 된다.
난 상처받으면서 깊고 넓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김형경이나 공지영과 같은 작가들은 그런 경우의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건 상처를 찬바람이 들어오는 틈으로만 보지 않고
그 상처를 세상을 내다보는 작은 창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 봄날, 창덕궁에서 찍어두었던 찢어진 창호지문을 보고 있노라니
행복한 시간을 맘껏 즐기는 것보다
상처를 잘 도닥여 통증을 가라앉히고
그 상처난 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4 thoughts on “창호지문”
청평에 사시는 외삼촌이 한지 공장을 하셔서 어릴때 놀러가면 닥나무라던가
폐지가 가득쌓인 창고에서 놀곤했어요.
좀더 고학년이 되어서는 켜켜이 떠 놓은 종이를 뜨거운 철판에 잘 펴고 부드런 솔로
붙여서 말리는 작업도 해봤죠.^^
그때만해도 평범한 화선지라던가 창호지였는데 어느때부터인가 일본을 다니시며 더 보존성이 좋은 종이로 바꿔가시더라구요.
한지공예까지 하셔서 경복궁에 전시하시기도했구요.
목걸이라고 택배로 보내주셨었는데 이쁜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했어요.^^
창호지는 문에 바르는용으로 화선지는 붓글씨,그림용으로 썼던거 생각나네요.
아주 부러운 기억이네요.
갓나온 하얀 색의 창호지는 정말 느낌이 좋았을 거 같아요.
나 어릴 적에는 엄마가 창호지를 다 바르고 한 귀퉁이를 잘라내고
거기에 유리를 달은 적이 있었어.
그곳을 통해 밖을 내다봤었지.
그 작은 유리를 통해 내다본 밖의 풍경이 참 좋았던 기억이야.
밖에 나가긴 춥고, 그렇다고 방에만 있기에는 심심하고…ㅎㅎ
그 유리를 통해서 내다본 눈오는 풍경을 참 좋아했는데…
나도 그런 기억이 있어.
그 유리문엔 창호지로 덮개도 만들어 놓곤 하지.
그 덮개를 들고 내다보고 덮개를 내려놓았던 기억이야.
보통 손잡이 주변에는 창호지를 덧대 한겹 더 발라주는데 그때 단풍잎을 속에 넣기도 했었어.
옛날엔 지금보다 훨씬 추웠는데 그 얇은 창호지문으로 어떻게 겨울을 났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가 많이 약해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