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2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16일 두물머리에서

두물머리에 나가면 강변에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어찌나 큰지 그 허리라도 한번 가늠해 보려면
족히 네 사람은 팔을 펼치고 맞잡아야 할 듯 여겨집니다.
난 그게 한그루라는게 믿기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끔찍히 사랑한 두 나무가 있었는데
서로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에
오랜 세월 뿌리를 조금씩 움직여 서로에게 다가서고
결국은 하나로 엉키기에 이르렀지 않았나 싶습니다.
굵은 줄기 두 개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둘의 사랑이 엮어낸 자식 새끼들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어쨌거나 그 나무도 겨울에는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가 됩니다.
겨울나무는 대개의 경우 그렇지요.
나무는 여름 더위는 녹빛 잎사귀를 부채삼아 부치며 그런대로 견뎌가지만
겨울 한철은 찬바람을 그대로 방치한채 가지로만 계절을 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름나무는 풍성해 보이는데 겨울나무는 헐벗고 가난해 보입니다.
또 외로운 느낌마저 들지요.
가지로만 나는 계절엔 빈틈이 많아 가지 사이사이가 숭숭 뚫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외로움에 뚫린 구멍처럼 여겨지거든요.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게 모두 우리들의 생각이 굳어진 탓일 수 있습니다.
시인 오규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하다. 아니 조용하다는 생각은 고정 관념이다. 침묵이 요란하다.”
이런 이런, 조용한 내 방이 갑자기 너무 시끄러워 졌습니다.
그래도 기발나기 이를데 없는 생각입니다.
그런 시인의 생각을 슬쩍 빌려오면
아무 것도 없는 나무 가지 사이의 허공은 아무 것도 없는게 아니라
비어있음이 가득한 자리가 됩니다.
또 그게 빈자리라고 해도 그냥 비워둔 자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나무는 평생을 같이 붙어살 것입니다.
여름에는 가지 사이를 나뭇잎으로 빽빽하게 채우며 더욱 바싹 당겨앉습니다.
그러다 겨울엔 나뭇잎을 모두 털어내고
가지 사이사이를 투명하게 비워놓습니다.
우리도 가끔 겨울나무처럼
너와 나 사이에 휑하니 빈 공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외로움을 앓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엔 너없이, 또 나없이 외로와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여름이면 나뭇잎이 까맣게 지웠을 그 자리에
오늘은 저녁해가 한가득 자리를 잡았습니다.
붙어서 살면 삐걱대고 서로 상처가 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나무는 그걸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지의 나뭇잎을 털어내고
겨울 한철엔 그 자리에 하늘을 들이고, 바람을 들이고, 또 저녁해를 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저녁해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둘의 사이에 저녁해를 들이면
둘 사이의 빈자리를 저녁해에게 빼앗길 것 같은데,
그와는 반대로 다시 서로가 서로로 그득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서로가 서로로 충만해지면
그게 바로 봄의 이파리로 다시 돋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봄이란 결국 새로 채운 둘의 충만함으로 또 다시 빚어내는 사랑의 계절인 셈입니다.
그 봄을 위해 가끔 둘의 사이를 비워두고
저녁해를 들이는 외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겨울나무의 빈가지 사이로
하늘이 가득했고,
또 저녁해가 가득했으며,
하늘은 아주 빛이 고왔습니다.
나무가 점점 충만해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16일 두물머리에서

4 thoughts on “겨울나무 2

  1. 좀전에 어느집을 좀 다녀왔는데 산자락 밑엣집이어서 찾아가는 도중의 느낌이
    무슨 봄에 들길을 거니는 느낌이었죠.^^
    밭가엔 파릇파릇 나물같은것도 많이 보이구요.
    왠지 봄이 무지 빨리 올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겨울 다운 겨울을 느껴본것도 며칠 안되는데..
    한번 더 눈이 왕창 쏟아져야 겨울 다우려나.^^
     

    1. 바둑이//전시회는 못봤어요.
      출판사가서 사람만나고 그걸로 일정이 끝나 버렸네요.
      시간나는대로 누구랑 같이 가서 보려구요.
      보고나서 그 감동을 누구랑 나눠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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