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그 부활의 생명력을 먹는다 – 연왕모의 시 「붕어빵」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16일 양수리에서


붕어는 오염에 강하다.
그래서 혼탁한 물에서도 잘 견딘다.
어릴 적 기억을 들추어 보면
냇물에서 잡아온 고기 중에 어항에 넣어놓으면
물에서 가장 날쌔고 잡기도 어려운 피라미가 가장 먼저 죽었고,
그다지 몸놀림이 빠르지 않고 둔한 붕어는 몇달이고 끄떡없이 잘 살았다.
붕어는 그렇게 몸은 둔해도 생명력은 질기다.
붕어의 생명력이 정말 놀라운 계절은 사실 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모든 물고기들이 두터운 얼음장 밑으로 몸을 낮추고
봄까지 그들의 움직임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묶어 둔다.
겨울엔 모든 물고기들이 죽은 듯 산다.
그러나 붕어는 겨울이 되면 아예 물밖으로 나와
우리들 인간들 세상으로 버젓이 외출을 한다.
항상 겨울이면 예외없이 거리에 등장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붕어빵을 말함이다.
사람들은 그걸 풀빵이나 국화빵의 변종 쯤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풀빵의 형태를 빌린 붕어의 외출이다.
일찍이 그걸 간파한 시인이 있었다.
연왕모이다.

붕어의 육체를 빌렸음
똑같은 틀 속에서 똑같은 형태로 계속 태어남
밀가루 계란의 향으로 비린내를 감추려 했음
붉은 팥 그리고
달궈진 쇳덩이 틀로부터 불의 혼을 받아 태어남
탄생은 죽음으로 예정됨
그러나
예정된 죽음이 존재하는 한
계속 부활할 것임
껍데기일 뿐인 육체를 빌려
-연왕모, <붕어빵> 전문

시인은 붕어빵을 가리켜 붕어의 육체를 빌렸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붕어가 붕어빵의 육체를 빌려 우리의 곁으로 외출한 것이다.
오염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는 그 왕성한 생명력은
얼음장 밑에 덮어두어도 다소곳이 몸을 숙이고 봄을 기다리는 법이 없다.
붕어는 겨울이면 항상 붕어빵의 육체를 빌려 우리의 곁으로 외출을 한다.
붕어는 겨울 한철은 물밑 뿐만 아니라 물위도 그들의 세상으로 모두 접수해 버린다.
그러므로 붕어빵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풀빵이나 국화빵을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건 오염을 뚫고 살아남는 질긴 부활의 생명력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엔 반드시 붕어빵을 몇개 먹어두어야 한다.
그래야 봄까지 견딜 수가 있다.
난 어제 두 개 먹어 두었다.
붕어빵을 먹어 두었으니 이제 그 부활의 생명력으로 봄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 겨울이 춥고, 어렵고, 힘들다면
붕어빵을 먹어볼 일이다, 그 부활의 생명력을 먹어볼 일이다.
겨울엔 얼음구멍을 뚫고 낚시질을 할 필요도 없고,
어물전을 뒤지고 다니며 이 가게엔 붕어가 있을까 어렵게 찾아볼 필요도 없다.
그냥 천원 한 장을 내밀고 붕어빵을 사 먹으면 된다.
천원에 네 마리나 주더라.
내가 두 마리 먹고, 두 마리는 그녀가 먹었다.
각각 5백원어치씩 먹은 셈이다.
난 겨울엔 단 돈 5백원으로 부활의 생명력을 얻는다.
이 모두 붕어빵의 비밀을 내게 알려준 시인의 덕택이다.
내게 그 비밀을 알려준 시인에게 큰복있으라.
그리고 내 여기 그 비밀을 널리 알리노니,
부디 모든 이들이 단 돈 천원으로 부활의 생명력을 얻는 놀라운 기쁨이 있길.

6 thoughts on “붕어, 그 부활의 생명력을 먹는다 – 연왕모의 시 「붕어빵」

  1. 참 이쁜 붕어빵이네요.
    엊그제 남편이 붕어빵을 사왔는데 아주 쌔까맣게 탄.ㅡㅡ;;
    어떻게 이런걸 팔수 있고 어떻게 이런걸 준다고 돈주고 받아올수 있는지 어이없다는 말을 몇번이나했죠.ㅋㅋ
    “난 탄거 안먹을거니까 당신이 다 먹어.”
    먹고있는거 보니까 왜그리 웃음이 나던지.ㅋㅋ
    학생이 엄마 대신 붕어빵을 굽고 있었는데 차마 말을 못했나봐요.^^
    입바른 소리 잘하는 사람이 그런건 또 뭐라 못하고.^^

    1. 착한 남편이네요.
      우리도 학생이 엄마 대신 나와 있었는데 어찌나 부끄러움을 타던지…
      이 날은 양수리 시장에 들러 무우말랭이 무친 것도 좀 사고…

  2. 연왕모의 붕어빵이라는 시가 걸려있는 붕어빵 아저씨를 만나봤으면…
    외옹치의 작은 횟집에 황동규의 외옹치라는 시가 걸리는 날이 왔으면…
    그러면 현실의 힘겨움이 훨씬 가벼워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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