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나무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0일 강원도 상남의 어느 고갯길에서

물은 한 해 내내 나무의 품속에서 살았어요.
나무가 그 품의 한가운데로 내준 물관을 타고
나뭇가지 끝까지 가서 햇볕을 만나고
그리곤 푸른 잎사귀를 잉태하곤 했죠.
나무는 발끝에서 정수리 끝까지
온통 물로 그 속을 채우곤 했었죠.
그렇게 항상 나무의 품에서 살았던 물은
그러나 반대로 나무를 제 품에 한 번 안아보는게 평생의 소원이었어요.
종종 빗방울로 날릴 때
나무를 안아보려 그 가슴으로 뛰어내렸지만
곧바로 가슴을 미끄러져 땅으로 흘러내리는 게 물의 운명이었죠.
그러다 겨울 어느 날, 나무 밑둥으로 흐르던 물은
갑자기 흐름이 멈추면서 몸이 부푸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곤 얼음으로 부풀어 오른 물은
결국 나무를 그 품에 꼭 껴안게 되었어요.
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얼어 죽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거 같아요.
사랑의 품에 안겼는데 설마 얼어 죽었겠어요.
새봄에 물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 파릇파릇한 싹을 틔우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무의 오는 봄은 더 찬란할 것 같아요.
그 엄혹한 겨울을 사랑으로 넘겼는데
어떻게 봄이 찬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봄이 되면 강원도의 그 고개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곳에서
아마 난 지난 겨울, 그곳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물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사랑으로 함께 하면
겨울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0일 강원도 상남의 어느 고갯길에서

6 thoughts on “얼음과 나무

  1. 클로드 모네의 붓끝이라면 님의 저 예리한 감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놀라운 대상을 유화로 이젤 앞 캔버스 위에다가
    프러시안 블루색에 부드러운 하얀색을 더하여서 멋드러지게
    표현하고도 남을 것 같은 가슴시리게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대상을 바라보시고 사진을 빌려 언어로 이끌어 내시는
    시각이 대단하다 싶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통찰력에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진실로 앞에 글들에 담겨진 사진들도 그렇구요….
    시적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2. 무조건 마구 찍고나서 나중에 사진 보면서 생각하면 김동원님 발끝이라도 따라가려나..^^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이쁜 풍경이 아니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거든요.
    뭐 그나마도 그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찍지도 못하지만.ㅋㅋ
    근데 저 나무 봄에 정말 싹을 틔울까요?
    사랑으로 감싸였다고는 하시지만 전 불쌍하게 여겨져요.^^

    1. 나중에 한번 가보려구요.
      찾아갈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는데… 가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요. 죽어있으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3. 하여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요.
    도대체 그림이 될 것 같지도 않은 곳에 카메라를 드리밀면 나는 뭘 찍냐고 묻기까지 하니…
    이렇게 사진이 글이 되는 걸 보면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어.

    1. 도시가 편하긴 한데 편안함을 빼놓으면 모든 문화가 인위적이란 생각이 많이 들곤해.
      어제 대학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딱히 카메라를 들이댈만한 곳이 보이질 않더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되는 거지. 도시에선 모델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게 참 어려운 거 같아.
      자연으로 걸음했을 때는 그렇지가 않거든. 그냥 들풀 하나도 눈길을 끌어당길 때가 많은데 도시는 그렇지가 않아.
      도시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쉽지가 않은 거 같아.
      눈오면 무작정 눈오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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