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봄같지만 그래도 옷깃을 파고드는 겨울 날씨의 쌀쌀함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나눔의 집 역사관 마당에 흥겨운 사물놀이 가락이 울려퍼졌다.
소리를 연주하는 사람과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앉아 둥글게 원을 그렸다.
국민대 문과대의 사물놀이 동아리인 <소리마니>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2월 3일부터 9일까지 나눔의 집에서 열리고 있는 피스로드 행사의 하나였다.
피스로드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사이에 두고
한일간의 과거사와 여성 인권을 고민해보고
화해와 평화를 모색해보는 모임이다.
매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동체인 경기도 퇴촌 원당리의 나눔의 집에서 열리고 있으며,
올해는 일본에서 13명, 한국에서 17명, 총 30명이 자리를 함께하여 평화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누었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에서 자원한 10명의 진행요원들이 행사를 도왔다.
첫날의 행사와 참가자 소개에 이어, 둘째날엔 연구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씨의 설명으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관람했으며, 3시간에 걸쳐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다.
셋째날은 할머니들 방으로 흩어져 교류의 시간을 가졌으며, 넷째날은 한국문화 체험의 하나로 떡방아 찢기와 사물놀이 공연 관람, 윷놀이, 찜질방 시간을 가졌다.
다섯째 날의 일정엔 서대문 형무소 방문과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수요 시위 참가가 포함되었다.
여섯째 날엔 평화를 염원하기 위한 기념품을 만들고 일곱째 날엔 행사를 마감할 예정이다.
주된 행사의 사이사이에 몇 시간에 걸친 토론의 시간을 갖고 있다.
6일 오후와 7일 오전의 행사를 함께 하며 사진으로 스케치했다.
(나눔의 집 홈페이지: http://www.nanum.org
또는 http://www.cybernanum.org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김순옥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
사물놀이 가락의 흥겨움이 가져다 준 것이지만
역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열정과 위로가
할머니를 짓누르고 있는 과거의 악몽을 녹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꽹과리 둘이 서로 소리를 주고 받는다.
주고 받으니 즐거움이 크게 증폭된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이 함께 한 피스로드 행사도
화해와 용서를 위하여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를 주고 받는 자리이다.
꽹과리가 서로 소리를 주고 받으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박옥선 할머니의 손이 절로 장단을 맞추며 그 흥겨움에 함께 한다.
6일 오후에는 윷놀이 시간이 있었다.
문필기, 김순옥, 박옥선 할머니가 함께 자리했다.
나눔의 집 교육관 바닥에 말판을 마련하고 참가자들이 말이 되었다.
“야, 걸이다! 잡았어!”
나눔의 집이 떠들썩했다.
말판 중의 하나는 ‘할머니께 뽀뽀하는 자리’였다.
한 참가자가 박옥선 할머니께 뽀뽀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참가 학생이 가까이 가자 학생을 덥썩 안고 뽀뽀를 하려 하셨다.
그 반대로 학생이 할머니께 하는 거라고 하자
할머니는 주저없이 볼을 내주셨다.
학생이 할머니의 볼에 뽀뽀하며
항상 건강하세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순옥 할머니도 빼놓을 수 없다.
할머니는 중국에서 오래 살다가 나와 아직 한국말에 서툴다.
젊은 참가자가 뽀뽀를 해주자
할머니의 얼굴에서 아이처럼 순박한 웃음이 쏟아졌다.
7일엔 아침 7시 30분에 나눔의 집을 나와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
일본 참가자 두 명이 숙연한 자세로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한때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갇혀 온갖 고초를 다 겪었던 창살너머 옥사에
오늘은 과거를 고민하는 일본 대학생들이 서 있다.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 복도는 어둡다.
한일간의 과거도 어둡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이 피스로드의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 어둠의 과거를 풀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과거의 어둠을 함께 걸어가며 체험해보면
그 길은 더욱 빨리 다가올 것이다.
이동하는 버스가 즉석 토론장이 되기도 한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이나라(가운데 왼쪽) 학생은 버스 속에서 대학원생인 일본의 요리코(오른쪽)에게
어제 토론 때 나온 얘기를 수요 시위의 자유 발언 때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요리코는 어젯밤의 토론 때,
일본이 평화헌법을 버리고 무장의 길로 나가 전쟁이 나면,
전쟁에선 항상 여성이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평화헌법을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은
곧 일본 여성 자신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평화의 길은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젊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그 길은 더욱 활력을 얻는다.
한 참가자가 평화의 길 피켓을 높이 치켜들었다.
2007년 봄엔 한국와 일본에서 모인 30명의 대학생들이 그 길에 함께 하고 있다.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이 공식 사죄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2007년 봄 피스로드의 참가자들이 6일밤에 만든 시위 문구는
‘일본군 위안부는 살아있는 역사다’라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일본 대사관을 향하여 그 엄연한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함께 외쳤다.
그 구호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은 하나였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만난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은
그렇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외치는 구호 속에 하나되어
평화의 길을 함께 가고 있었다.
6 thoughts on “한일 대학생이 함께 가는 평화의 길 – 나눔의 집 피스로드 행사”
이번에 피스로드 스탭으로 참가했던 학생입니다.
오마이 뉴스 기사 검색해 보면서 들어왔어요. ^^
좋은 사진하고 좋은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위의 사진 속 꽹과리 치는 학생이죠?
봉사한 사람들이 정말 수고한 거죠, 뭐.
고마워요, 젊은 사람들이 봉사해줘서.
박옥선 할머니가 춥다고 하니까 이페이씨가 재빨리, 진심으로 옷을 벗어서 드리려고 하더라.
물론 할머니가 손사레로 마다하셨지만…
그때 이페이씨는 겉옷 안에 반팔 티 하나 입고 있더라구.
이페이씨의 마음을 엿본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하더라…
근데 이름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자꾸 “이빼 이빼” 그래서 무슨 치과에 갈 사람처럼 들린다니까.
대학생들도 대학생들이지만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는게 너무 고맙네요.
할머니들께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지옥같은 날들을 다시 일일이
꺼내야하고 되짚어 생각케하는게 힘드실텐데..정말 용기있는 분들이세요.
그 일본인들이 대단한게
이번 행사의 참가비가 8만원이지만
일본의 경우엔 왕복 비행기 값이 자비 부담이란 거죠.
그 돈을 부담하면서 왔다는 것은 우리로선 정말 고마운 일 같아요.
사실 수요 시위는 강제할 수가 없어서 뒤에 있거나 불참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다들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통역들이 일본 대학생들에게 일일이 진행 상황을 동시에 옮겨주었는데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그런 것 보고 있으면 우리는 그런 시위에 한 그 열배는 참가해야 체면이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