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겨울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2월 10일 계룡산 갑사 계곡에서

겨울산을 오를 때면
나는 종종 길에 앉아 자세를 낮추고
나무를 올려다 보곤 했다.
잎을 모두 땅으로 돌려보낸
겨울 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노라면
나는 종종 그것을 나무의 뿌리로 착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뿌리도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계룡산에서 찍어온 겨울 나무의 사진을 반전시켜 보았더니 더더욱 그럴 것 같았다.
반전은 색깔을 정반대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검은색은 흰색으로, 흰색은 검은색으로 바뀐다.
붉은색은 하늘색으로, 파란색은 황토색으로 바뀐다.
반전을 시켰더니 그날의 하늘빛이 순식간에 황토빛을 띄면서 땅속의 색이 되었다.
아마도 땅속을 파면 그런 빛일 것 같았다.
하늘과 달리 땅속은 어둡다.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찾으려면
나무의 뿌리는 스스로 빛을 밝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의 뿌리는 스스로 빛을 밝혀 흰색이 된다.
나무 뿌리는 여름엔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올려
줄기와 나뭇잎을 키우는데 여념이 없지만
겨울엔 그 분주함을 접고 잠시 삶의 여유를 갖는다.
그때면 뿌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
아마도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뿌리는 겨울엔 자신의 모습을
하늘을 호수삼아 그곳에 비추어 본다.
겨울은 그러니까 뿌리가 자신의 모습을 하늘에 비추어보는 계절이다.
삶이 분주할 때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 어렵다.
겨울은 춥지만 대신 그런 여유를 가져다 준다.
계룡산 오르는 길에
겨울 나무 아래 앉으니
하늘에 비친 뿌리처럼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나도 그곳에 나를 비추어보고 있는 듯 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그 여유가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2월 10일 계룡산 갑사 계곡에서

8 thoughts on “나무의 겨울

  1. 그 이야기 들으시면 저도 들려주세요….
    저도 그 제자분들이 가장 부러워요…..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싶고 얼마나 그런 순간적인 찰라들이 신령한가도 생각되지요.
    저에게 한권있는 오규원 선생님 시집을 요즘 아껴가며 읽고 있지요.
    모두로 부터 숨겨 놓은 듯한 이 가난한 한 영혼의 오솔길이
    된 님의 블로그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고 좋은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오규원 선생님은 대쪽 같은 선비이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내면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따듯하시고
    자상하시고 품위를 지키시는 분요….

    시정잡배들 처럼 문단 언저리에서 세속과 영합하고
    그런 일단의 아류들과는 분명한 선으로 구분되는 그런
    외롭지만 귀감이 되는 분이셨으리라 믿어져요.

    어느 문인이 세계문학사에서도 그렇고 한국문학사에서도
    죽어가면서 사랑하는 제자의 손에 마지막 혼신의 시혼을
    불어 넣고 가는 분이 있겠는 지요…..눈물이 와락 쏟아지는
    감동이었지요…..신령한 순수와 참사랑이겠지요…

    1. 얘기 들으니 병상에 계실 때도
      매일매일 핸드폰 문자로 시를 쓰셨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분인데…
      마지막을 지킨 그 제자들이 부럽기도 하고…
      이원 시인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예요.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이원 시인도 시집 낼 때가 되었는데…

  3. Photo 에세이가 Timi Yuro의 노래 “Just Say I Love Him”의 멜로디와
    어찌 그리도 잘 어울리는 지를 모르겠네요…반전된 두번째 사진은
    그 자체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너무나도 깊고 오묘한 의미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둥근 나무 – 오규원

    나무 하나가 몸을 둥글게 하나로
    부풀리고 있다
    그 옆에 작은 나무 한 그루도
    몸을 동그랗게 하나로 부풀리고 있다
    아이 하나가 나무 곁에 와서 두 팔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보다가 간다
    동그랗게 자기가 원을 만든 원을
    두 번 세 번 보다가 간다
    새 두 마리는 지나가다가
    쏙쏙 빨려 들어가 둥근 나무가 된다

    출처 – 현대문학 1월호, 2007년

    1. 저도 반전은 처음 시켜 보았는데 느낌이 독특했어요.
      갑자기 땅속을 찍은 듯한 느낌이 들었죠.

      예전에 오규원 선생님은 제 고향 가까운 곳에서 요양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많이 놀랐어요. 제가 매일 지나쳤던 풍경이 시의 잉태지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이럴 때가 가장 놀라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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