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따라 마포까지 가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처럼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날 쉬듯이
일의 시작과 끝이 딱 부러지게 분절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일이 끝나는 날이 있다.
10월 들어와선 처음 일이 끝난 날이 5일이었다.
요일로는 수요일이었고 시간으론 오후 두 시쯤이었다.
일이 끝나면 그것이 또 다른 일의 시작이긴 하지만
일단 끝난 일의 끝을 곧바로 다른 일의 시작으로 잇기는 매우 어렵다.
그 일이 밥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일 때는
일이 끝나는 순간,
특히 그 일의 지겨움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최고조에 달하여
몇시간이라도 일에서 손을 털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가
천호동에서 마포나루까지 한강변을 따라 내려갔다.
오후 늦은 시간의 햇볕이 아주 좋았다.
마포에서 그날 하루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를 만나
차의 트렁크에 타고간 자전거를 접어서 집어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가 이상열 선생님을 꼬셔내
밤 12시까지 술먹다가 늦게 집에 들어왔다.

Photo by Kim Dong Won

누가 강아지풀이라 이름 붙였을까.
다 자라도 언제나 개풀이 아니라 강아지풀이다.
그 강아지풀이 푸른 하늘을 호흡하고 있었다.
몸을 세우면 강변의 아파트가 시야를 가로막는데
몸을 낮추었더니 강아지풀의 작은 키로도 얼마든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누군가가 올림픽 대교의 꼭대기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헬리콥터 한 대가 주변을 돌며 그 시위를 찍고 있었다.
예전에는 허가받지 않은 시위는
좌파들의 몫이었는데
요즘은 항상 그런 자리에 우파들이 서 있다.
예전에는 세상을 밀고 가려고 시위를 했는데
요즘은 굴러가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든 붙들어 매두려는 시위가 잦다.

Photo by Kim Dong Won

원래 그가 노를 저을 때마다
강물이 한움쿰씩 뒤로 물러났는데
오늘 그는 물과 더불어 빛을 함께 젓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루 종일 세상을 밝혀준 빛도 저녁때가 되면 피곤하다.
그때면 빛은 물로 내려앉아
잠깐 물결에 몸을 의지하고 하얗게 부서지며 장난질 친다.
그렇게 부서질 때마다 하루의 피곤이 씻겨 나간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람이 수면을 밀며 물결을 만들면
저녁빛이 냉큼 그 위로 올라탄다.
부서지는 빛은 그 물결 위에서 뒤뚱거리다
물속으로 풍덩빠진 저녁빛의 물보라가 분명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항상 그녀의 차에 동승할 때면
천천히 천천히를 입에 달곤 했다.
속도가 집어삼키는 풍경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김훈은 어느날 자신이 출연했던 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자전거를 가리켜
몸이 감당할만한 속도를 가진 놀라운 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자전거의 속도도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곧잘 풍경을 집어 삼키곤 한다.
풍경과 함께 하려면 역시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강변의 저녁 풍경 속에 한참을 서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불행히도 나는 63빌딩을 볼 때마다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 함성호의 시구절을 그 건물에 매달아 꼬리표로 삼곤 한다.
그 꼬리표엔 “5공화국의 송덕비”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63빌딩을 지나며 “5공화국의 송덕비”를 떠올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는 그게 “자유”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지는 해를 뒤로 거느리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63빌딩 앞에서
오늘도 나는 예외없이 함성호의 시구절이 생각이 났다.

Photo by Kim Dong Won

삐딱하게 보면 63빌딩이 계속 삐딱하게 보인다.
63빌딩은 저녁 햇볕을 너무 혼자 독차지한다.
보시라.
온통 저녁 햇볕이 모두 저 빌딩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헷볕이라도 골고루 나누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마포나루에 도착하니
항상 물위에 둥둥 떠다니던
노란 백조 둘이 오늘은 뭍에 올라 시커멓게 배를 뒤집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물었더니
백조가 이렇게 답했다.
–글쎄, 말이야.
우리에겐 예술이 일상이잖아.
백조의 호수가 우리들 삶이니까.
그래서 일상이 지겨워서 예술 속으로 가듯
고고 고고, 백조의 땅으로!
그렇게 외쳤더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버렸네.

8 thoughts on “한강변을 따라 마포까지 가다

    1. 어디가 오타인지 모르겠어요.
      숨은 오타 찾기하는 심정으로 찬찬히 읽어 보았는데 딱히 집히는 데가 없네요.
      원래 원고를 쓰고 나면 오자를 지적해주던 나의 그녀도 별 말이 없으니, 이번에는 비목어님이 친절을 베풀어 주시길.
      통영에는 한번 내려가야죠.
      어딘가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부터 그곳이 낯설지가 않아요. 또 사진찍기 좋은데 안내도 받을 수 있고…

    2. 강물이 ~뒤로 물러났는데(낳)
      백조의 호수가 우리들 삶이니까(삶아)
      그렇게 외쳤더니 ~이꼴이 되어버렸네(되버버)

      혹 저의 컴퓨터가 낡아서 저의 눈에만 잘못 보이는 건지….

    3. ㅎㅎ, 비목어님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Eastman님, 잘 아시겠지만, 원래 자신의 글에 있는
      오타는 잘 안보이는 법이지요~~

      자전거… 잘 못타는 저에게는 아쉬움과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4. 제 모니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컴퓨터에 모니터를 두 대를 쓰고 있는데 한쪽은 LCD, 한쪽은 CRT 거든요.
      LCD에선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CRT쪽은 흐리멍덩해요.
      이번에 돈 생기면 CRT를 LCD로 바꾸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젠 CRT는 잘 적응이 안되네요.

  1. 나의 그는 강아지풀을 사진에 담아오고
    그의 그녀는 강아지풀을 가느다란 꽃병에 꽂을만큼 꺾어왔다… ㅎㅎ

    1. 이번 달에 어디 놀러갈 수 있을까.
      20일까지 일정이 차 있으니 놀러갈 시간도 없을 것 같다.
      가끔 한강이나 나가는 수밖에.
      밤에 청계천에도 한번 갔다가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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