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밤

내가 청계천에서 받은 첫 느낌은 이것이 복원된 자연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의 조형물이란 것에 더 가까웠다.
기억을 들추어보면
강원도 영월에서도 40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서 자란 내게 있어
밤의 시냇물은 그저 소리로만 우리와 함께 할 뿐이다.
그러나 서울이란 거대 도시의 한복판을 흘러가는 청계천은
내가 늦은 밤에 그곳을 찾았을 때
소리보다는 오히려 어두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일종의 빛의 조형물이었다.
때문에 어두워져도 청계천엔 볼거리가 많다.
10월 14일 8시경부터 10시 정도까지 밤의 청계천을 따라
청계 4가까지 내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청계천의 발원지.
청계천은 밤이 오면 빛과 함께 그 시작의 걸음을 뗀다.

Photo by Kim Dong Won

발원한 청계천은 일단 솟구친다.
자연에선 일단 떨어진 뒤 튀어오르는 경우를 제외하곤
물이 솟구치기 어렵지만
도시에선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경이롭다.

Photo by Kim Dong Won

물은 제 색깔이 없다.
그 때문에 빛의 색에 쉽게 물든다.
그러나 빛은 그렇게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 아니어서
사실은 물의 속까지 그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아니다.
물은 빛의 색에 물든 듯 보여도 사실은 여전히 투명하다.
즉 빛과 함께 할 때 빛의 색이 되어 주면서도
여전히 물은 물이다.
빛도 물과 함께 할 때는 그 물의 투명함을 속까지 제 색으로 강요하는 법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물을 위로 쏘아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도시의 공력은 놀랍지만
그러나 그 공력에도 엄연한 한계가 있다.
결국 솟구친 물도 아래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으며,
모든 물은 결국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갈 수밖에 없다.
도시의 공력은 놀랍지만
알고보면 자연의 공력이 더욱 놀라운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천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천천히 걸어다니거나
아니면 여기저기 천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시간의 여유를 즐긴다.
천변에 섰을 때
가장 큰 물의 매력은
사람들을 그 여유로운 흐름으로 물들인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그들의 그림자가 물구나무를 서서 함께 건넌다.

Photo by Kim Dong Won

돌다리는 밤이 오자 파랗게 불을 켜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돌다리는 모두 푸른 등을 하나씩 등에 이고
불빛이 오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돌다리는 모두 빛이 오는 쪽으로 모인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항상 제자리였다.
도시에선 빛도 항상 제자리이다.
도시에선 거의 항상 그렇다.
항상 목마르지만 그러나 그 갈증을 풀어줄 빛의 샘은
저만치 거리에서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언제나 갈증만 부추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들은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는 사진을 찍는 그들을 찍었다.
내 사진은 그들을 폭포 속으로 묻어 버렸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건너편에서 그들에게 물벼락의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Photo by Kim Dong Won

그렇게 가르쳤건만
두드려보고 돌다리 건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남 탓할 게 못된다.
나도 그냥 건넜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디 깊은 바다로 내려앉은 심해 탐사선으로 오해마시라.
무릎 깊이의 시냇물도 불빛이 짧으면 심해가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가로로 흐르는 빛의 다발을 세 등분하면 무엇이 되는지 아시는가.
청계천변 어딘가에 있는 어느 다리의 일부분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조심하시라.
물이 빼어든 칼일지도 모르니.

8 thoughts on “청계천의 밤

  1. 맥주를 타고 이곳까지 오게 됬습니다. 제가 침입자가 된 느낌이네요. ^^; 얼마 전 파인더에서 김동원님의 청계천 사진을 보고, 또 마침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 청계천에 가 보았는데 그래도 도시에 슬슬 걸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는 건 좋은 것 같더군요.
    김동원님의 고향이 영월 근처시라구요? (저보다는 훠~얼씬 형님이 되시지만) 저희 어머니 고향이 영월 근처 주천이라..이상하게 영월 쪽 이야기만 나오면 친근감이 드네요.
    앞으로도 좋은 사진 구경 많이 하겠습니다.

    1. 반갑습니다.
      주천은 너무 풍광이 좋은 곳이죠.
      특히 고속도로가 나기 전엔 고향가는 길에 항상 그곳을 거쳐서 갔기 때문에 저에겐 더욱 친숙한 곳입니다.
      들러주셔서 고마워요.

  2. 4:19 혁명나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하루 저녁 내에 청계천 벽들이 천막촌으로 변하고, 인왕산의 국유지가 판자촌으로 싹 변하던 자연파괴의 절정을 이루던 때를……., 어떤 천재지변보다, 하루 아침에 법이 무너지면 생지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잠자리를 마련하게 되더니… 이 아름다운 청계천에도 거리의 무숙자가 잠을 자게된다면?…

    1. 지금 청계천의 가장 놀라운 점의 하나는 물소리가 들린다는 점이죠. 그 물소리를 들으며 무숙자들이 잠을 청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행복이 되겠지만 청계천에 나가보시면 그건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 관리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도시의 삶이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이 이제는 청계천변의 풍경도 사실은 통제와 규제 속에 놓여 있습니다. 자연을 찾는다면 청계천에 그것은 없습니다. 또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숙자들이 잠을 청하기엔 환경 자체가 너무 혼잡스럽습니다. 물론 점차로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서울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환상에 취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으므로 사람들의 발길이 그렇게 쉽게 끊길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 요 며칠간 안보이시길레 예전의 블로그 링크로 들어가 봤더니 그 페이지가 없다고 나오더군요.
      저는 어제 설악산에 갔다가 밤 12시에 돌아왔어요.
      대청봉이 그렇게 높은 곳인줄 아무 것도 모르고 갔다가 고생 엄청했네요.
      너무 늦게 산을 내려오는 바람에 택시타고 속초까지 가야했죠.
      교통비 엄청 들었네요.

    2. 지금 사진 정리 중이예요.
      1000여장을 찍었죠.
      제가 올라가본 산이 지금까지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그리고 어제의 설악산인데 설악산이 가장 끝내주더군요. 대신 너무 힘들어요.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한몫 거들기는 했지만요.
      너무 늦어서 나중에는 길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죠.
      다행히 불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 끼어서 내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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