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제일 많이 가본 항이 동명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명항은 속초항의 바로 위에 있습니다.
동명항을 자주 찾게 된 것은 순전히 버스터미널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속초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리면
몇걸음 걷지 않아 곧바로 속초항이 나오고,
바로 그 위에 동명항이 있기 때문에 자꾸 그리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게다가 영금정과 등대 전망대가 붙어있어
바다를 바로 옆에서도 보고
또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앞의 영금정 바다는 물론이고
속초항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항의 곳곳에선
생선들이 속을 다 버린채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속은 다 버렸어도
평생을 저며온 바다의 추억은
도톰한 살에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이곳에서 파는 회가 100% 순수 자연산이란 것은
갈매기가 보증을 할 모양입니다.
평생 바다를 헤엄치며 살 때는
수면으로 뛰어올라봤자 한뼘도 못되는 하늘을 호흡하는게 고작이었는데
죽고나니 이렇게 높은 하늘을 호흡하게 되었습니다.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는 얘기는 분명히 맞는 얘기 같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항구에서 무엇인가를 잡고 있습니다.
항구는 어찌나 깨끗한지 속이 다 들여다 보입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숨이 가빴습니다.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그래도 할머니의 잠수는 그 날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할머니가 아니라 항구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습니다.
항구는 할머니 덕분에 살아있습니다.
어떤 생선은 말리는 김에 그림자도 함께 말립니다.
바다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림자에서도 바다 냄새가 납니다.
바위 하나가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섬이 되었지만
그래도 바위섬과 뭍의 바위는 모두 같은 뿌리를 나눈 형제였을 것입니다.
바위는 한번 바다로 나가 섬이 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뭍의 바위들도 몸이 무거워 바위섬에 놀러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 지척의 거리에선 바닷물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가며
서로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바닷물이 서너 번을 밀려들고 또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전할 얘기가 특히나 많은가 봅니다.
영금정 정자에 올라 내려다 보니
아무래도 물결은 바다가 바위섬의 주변으로 밀려들며 생기는게 아니라
바위섬이 슬쩍 꼬리를 흔들어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등대에 올라 내려다보니
바다로 나가 섬이 된 바위는
아무래도 섬이 아니라 고래가 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영금정의 바위도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섬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육지에서 보낸 그 오랜 세월의 정을 뿌리치기 어려웠던게 분명합니다.
결국 영금정은 바다로 길게 목을 뽑았지만
몸은 그대로 육지에 묶어둔채
그 오랜 세월을 마음 하나는 바다에 두고,
다른 마음 하나는 육지에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다가옵니다.
저녁은 어둠과 밝음이 2할씩 섞여있고,
나머지 6할은 사랑의 따뜻함으로 채우라고 텅 비워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지는 저녁 시간을 둘이 함께 보내면
이상하게 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사랑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내 말이 거짓말 같다면
속초 등대의 전망대에 올라
저녁해가 질 때쯤 그곳의 등에게 물어보세요.
나도 해질녘에 그 등에게서 들은 얘기니까요.
바로 그 6할의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에
저녁은 함께 있으면 더욱 따뜻한 느낌의 시간이 됩니다.
바위섬에도 지금 저녁의 사랑이 가득한가 봅니다.
2할의 저녁 햇볕이 밀려든 바위섬은 따뜻하고 푸근해 보였습니다.
2 thoughts on “항구를 돌아다니다 – 속초 동명항과 영금정에서”
저 그림자도 꾸둘꾸둘 맛있겠당~~~^^::
이번에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보니 고성 바다가 아주 좋더라.
고성에 삼포항이라고 있는데 거기 가면 아주 좋은 사진 나올 거 같아.
진부령 넘어서 그리로 한번 가봐야 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