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공원은 가을을 담는 그릇이다 – 올림픽 공원에서

어제 11월 8일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올림픽 공원에서 두 시간 가량 사진을 찍었다.
자주 가던 곳이지만 계절의 순환은 공원의 풍경과 느낌을 바꾸어놓는다.
여기에 하늘의 구름이 그날 어떤 낯빛을 하느냐에 따라 또 공원의 느낌은 달라진다.
같은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은 공원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그 말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이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6시부터는 어느 행사에 가서 약속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오는 길에 10만원 받았다.
글도 안써주고 사진만 찍어준 뒤 돈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한잔 걸쳤다.

Photo by Kim Dong Won

은행나무의 발밑이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사실 알고보면 은행나무가 한잎두잎이 제 이파리를 떨어뜨려 채색한 것이다.
은행나무에겐 형상은 없어도 좋다.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는 색, 오직 그것 만으로 그림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은행나무는 매년 그 색으로 노랑을 선택한다.
이제 물릴 법도 하건만 은행나무의 노랑은 올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Photo by Kim Dong Won

가끔 하늘이나 자연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은 하늘이 시커멓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시커먼 하늘의 한가운데 푸른 하늘이 주먹만큼 남아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시커먼 구름은 하늘의 일부이다.
걸음을 몇 걸음 옮기고 고개만 돌리면
나무와 하늘, 그리고 언덕의 능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금방 우울한 채색을 벗어버린다.
그 두 풍경이 내 눈앞에 동시에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한 나무의 잎은 노랗고,
한 나무의 잎은 빨갛다.
하늘은 파랗다.
구름은 희다.
누가 조합한 것도 아닌데 색들은 조화를 이룬다.

Photo by Kim Dong Won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이다.
저렇게 큰 것을 보면 아마 아주 오랫동안 저 자리에서 마주보고 살았을 것이다.
언듯보면 하나지만 그러나 분명 두 그루이다.
그러나 자신할 수 없다.
혹 하나의 뿌리를 두 개의 줄기로 나눈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은 자꾸 하나로 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언덕의 풀섶 위에
눈썹만한 달이 하나 걸려있었다.
오늘의 저녁은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달빛에 물드는 시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설악산에 갔을 때는 산의 곳곳에 가을이 내려와 있었다.
도시의 공원에 갔더니 그곳엔 가을이 담겨있었다.
원래 도시에는 가을이 오지 않는다.
도시가 서면 가을의 자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가을을 담아둘 작은 그릇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을이 왔을 때 그 그릇에 가을을 담아둔다.

Photo by Kim Dong Won

문명은 편리하다.
하지만 그곳엔 시간따라 자연스럽게 얼굴을 바꾸고
다시금 생명으로 일어나는 순환의 움직임이 없다.
자연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곳엔 그냥 보기만 해도 우리의 시선이 전율하게 되는
원초적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은 그 둘을 동시에 누리려고 한다.
공원 옆에 호텔을 지은 뜻도 그러할 것이며,
경치 좋은 곳에 어김없이 들어서는 찻집들도 그런 욕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으로 갔을 때면
그냥 자연만 있고
문명의 편리함은 없었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달은 자연이다.
하지만 달이 자연이 아닐 수도 있다.
이원은 <1999 달의 운행 계획>이란 시에서 자연이 아닌 달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시인은 그 자연이 아닌 달을 얘기한 자신의 말을 “무골질의 은유”라고 했다.
뼈가 없는 은유란 뜻이다.
나는 언젠가 그에 관해 쓴 한 편의 글에서 그 뼈가 서정성이라고 말했다.
그가 시인이니까 당연히 그를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뼈대는 서정성이다.
이제 세상은 과학의 힘으로 지탱되는 것 같았는데
시인은 세상의 뼈대가 사실은 서정성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다면
달을 보고 눈물지을 수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 세상은 살기 어렵지 않을까.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공원의 저편에서 비행기 한대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잠시 달을 올려다보며 눈물짓던 나는
퍼뜩 이곳이 문명의 한복판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비행기도 내 눈물에 물들었다.
눈물에 물들면 문명도 자연이 될 수 있다.
비행기가 요란한 날갯짓과 함께 내 머리 위를 지나쳐 사라졌다.

2 thoughts on “도시의 공원은 가을을 담는 그릇이다 – 올림픽 공원에서

  1. 저도 어젠 운동도 귀찮아서(사실 운동이라면 죽도록 싫어하는 저인데 집에만 있음 두통이 심해서 시작한게 1년 넘었어요.^^) 근처 공원으로 사진찍으러나 갈까 하다가 아냐 영화나 한편볼까? 하며 검색해보니 사랑해 말순씨가 상영되고 있더라구요. 혼자가서 볼까? 하다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몰라..그러곤 그냥 운동하러 갔다는..^^
    바보같죠.
    엊그제만해도 달이 초승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오늘보니 반달에 가까와졌네요.^^

    1. 오늘, 달 보셨군요.
      저도 마당에 나갔다가 봤어요.
      하룻만에 금방 차는 군요.
      빨리 일 끝내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데, 의외로 일이 많네요.
      내일 새벽에나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