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월악산에 다녀왔다.
동서울터미널에서 8시 40분 버스를 타고 갔으며,
산을 내려온 뒤 까맣게 밀려든 가을밤 속에서
반달을 친구삼아 1시간 정도 노닥거리다
서울오는 7시 10분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6시 40분 첫차를 타려 했으나
어떻게든 떠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전날밤 밤 1시까지 일을 해야 했던 피로 때문에
몸은 나를 이른 새벽에 일으켜 주질 못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버스나 기차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아쉬움과 기다림인 것 같다.
그 아쉬움과 기다림은 말을 바꾸면 곧 버스나 기차 여행의 불편이다.
차창으로 아무리 좋은 풍경이 스쳐가도 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고,
기다림은 말 그대로 띄엄띄엄 있는 차 시간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버스가 수안보를 지날 때쯤 밭 한가운데 서 있던 감나무와
월악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붉게 타고 있었던 단풍들이 그 아쉬움으로 남아있으며,
기다림은 떠날 때 동서울 터미널에서 해장국을 먹으며 보냈던 50분 정도의 시간과
아울러 돌아올 때 버스 터미널도 없는 마을 한가운데서 보냈던 1시간의 시간이었다.
버스에 오른 것이 달랑 나 혼자였으니 그곳에 터미널이 생기길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버스표는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곳이 버스표파는 곳이란 사실을 절대로 알 수 없는,
<소따배기 가든>이란 이름의 식당에서 팔고 있었으며,
나는 다행히 월악산 매표소의 친절한 직원에게서 그 비밀스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의 아주머니는 바깥의 쌀쌀한 날씨 속에 식당 앞 들마루에 앉아있는 나에게 식당에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나는 밀려든 짙은 밤 속에서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가끔 귓전을 울리는 마을의 개짖는 소리가 더 좋아,
그냥 참을만한 냉기라고 여기며 1시간을 그렇게 바깥에서 보냈다.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월악산을 오르는 길도 여러 갈래이다.
나는 덕주사쪽의 길로 올랐다.
초입에선 아직 단풍이 그 고운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계곡은 원래 물의 차지였지만
가을엔 낙엽의 자리이기도 하다.
잎은 갔지만 감은 남았다.
곧 감도 갈 것이다.
잎과 감은 모두 가기 전에 아름다운 색과 달콤한 맛을 남긴다.
나의 삶도 세상을 마지막 갈 때 그럴 수 있을까.
이제는 산에 가면 종종 나무들이 모두 제 이름자를 쓴 명찰을 목에 걸고 우리는 맞곤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명찰과 함께 자세한 신상 명세까지 곁들인다.
이름도 알고, 신상도 알게 되니 좋기는 한데
개인 정보를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해도 되는 거야.
바위 사이에 틈이 있고,
그 틈으로 내 시선이 비집고 들어간다.
그러자 절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무들이 내쪽으로 고개를 내민다.
설마 그럴리야 있겠냐만 종종 틈은 그런 환각의 힘을 보여준다.
새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월악산에선 새가 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새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거리는 신기함과 동시에 즐거움으로 변환되었다.
하늘이 빛을 부채살처럼 지상으로 펼쳐들었다.
원래 높이 오르면 멀리 보이는 법이지만
그러나 멀리 보려면 아울러 하늘이 맑아야 한다.
말하자면 시선이 멀리 가려면
높이와 맑은 날의 두 가지 날개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날이 흐려 높이의 날개 하나만으로 날아간 나의 시선은 그다지 멀리가지는 못했다.
내려다보이는 곳은 충주호이다.
흐린 하늘의 틈새를 비집고 갑자기 한줄기 빛이 내려오더니 봉우리 하나를 환히 밝혀주었다.
옆에 있던 분이 빛이 밝힌 봉우리가 바로 월악산의 정상인 영봉이라고 일러주었다.
빛으로 길안내를 받는 기분은 아주 신비로웠다.
이제 월악산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
여기는 월악산의 정상 영봉이다.
내려다보니 산은 대지의 등줄기이다.
위쪽이 등줄기면 우리가 사는 아래쪽은 그 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지의 품에 산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하늘이 튿어진 구름의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구경났다고 산의 나무들이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려와서 올려보니 영봉이 저만치 아득했다.
저곳에서 이곳을 내려볼 때도 이곳이 아득했었다.
그러니 오늘 아득함을 오르고 내린 셈이다.
단순히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오르내린 거리의 아득함이 깊을 때
우리의 만족도 뿌듯하고 크다.
이제 내가 가졌던 높이는 달이 대신하고
숲엔 어둠이 찾아들었다.
까만 윤곽으로 하늘과의 경계선을 그은 나무 위로 뜬 반달은
떠나는 내게 있어 월악산의 마지막 배웅이었다.
8 thoughts on “아쉬움과 기다림이 여행의 매력이 되다 – 충북 월악산에서”
월악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무척 낭만적이네요..
‘악’자가 들어가면 험준한 산이라고들 하지만..
사진으로 본 산의 이미지는 참 좋습니다..
혼자 산에 가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지만
월악산도 함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또 여행다녀오시면 좋은 글 올려주세요^^
찾아주셔서 고맙구요,
사진에 곁들인 글은 한달에 서너 번은 올라갈 거예요.
예전에 여행한 곳들도 많아서 그게 가능하거든요.
제 리더기에서 글을 쭉 읽으며 저도 다음세상이란게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김동원님처럼 틈만나면 이곳저곳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누군가랑 같이라는건 무슨 제약이 그리도 많이 따라붙는지..^^
요며칠 또 후회되는것이 올가을 동물원 못가본것이랍니다.
김동원님은 좋으시겠어요. 동물원도 실컷 가보시고.^^
여자 여행가도 많던데요.
그 유명한 한비야라는 여자도 있고.
나의 그녀가 말하길 아침에 나가는지도 모르게 훌쩍 떠나버리는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도 있다고 가을소리님께 꼭 말해주라는 데요.
그리고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 수학 여행 한번 못가본 사람이라서 지금이라도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 것 뿐.
아직 해외 여행도 한번 못가봤어요, 저는.
다만 저의 재주 중의 하나는 여행 한번 갔다오면 꼭 열번 갔다온 사람처럼 말을 한다는 것 뿐.
저도 한비야씨 보면 넘 존경스러워요.
어쩌면 그렇게 용기있게 세상을 향해 열려있을수있을까하고.^^
결혼초에 남편이 야구나 낚시에만 열올리는게 무지 섭섭하고 속상해서 울었던적도 많고 못가게 한적도 많았는데 어느순간 그게 집착이란걸 깨닫고 놓아줬어요.^^ 그러니 제 맘이 편해지더라구요. 이젠 무얼한다해도 하고싶어하는거 하게 해주죠. 저도 좀 그렇게 해주면 좋으련만.^^
글쎄요. 그녀를 포함하여 세상의 여자들은 무얼하고 싶은데 남편이 막는다기보다, 아이 사랑과 남편 사랑 때문에 그 길을 훌쩍 떠나질 못하죠. 가령 저는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렸어도 그냥 여행을 떠나는 편인데 그녀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밥을 먹인 다음에야 여행을 나설 수가 있죠. 아이가 시험 때면 또 그게 걸려서 그때는 여행을 못 떠나구요. 가을소리님 블로그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이 사랑과 남편 사랑이 느껴지던 걸요. 제가 보기엔 그게 범인인 것 같아요.
욕심이라는 것이 부리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멋진 여행과 멋진 감흥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그 작은 새는 때까치로 보이는 군요.
힘들어서 며칠간 집에서 쉬어야 겠어요.
다리의 피로가 아직 안풀리네요.
새의 이름은 “동고비”라고 하는 것 같아요.
찾아보니 습성도 맞는 것 같고. 나무를 빙빙 돌며 오르내린다고 했는데 이 새가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