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진을 뒤적거리다 2002년 2월 14일에
내가 태백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날, 그러니까 2월 13일이 설날이었고,
우리는 설날엔 경복궁에 가서 놀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 딸 문지와 처제의 딸 은지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그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일으켜 세워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추억은 다시 여행을 부추기는 힘을 갖고 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옛추억이 서린 몇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계룡산, 부산 태종대, 제주도, 완도, 대천해수욕장, 변산반도 채석강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다.
모두 여행은 갔었지만 사진은 남겨놓지 못한 곳들이다.
추억 여행은 그때 그곳에 타임캡슐이라도 묻어놓은 것처럼 기억의 지층을 헤쳐
아득하게 멀어진 과거를 복원시켜 줄 것만 같다.
태백은 내 고향인 영월에서 아주 가깝다.
우리는 태백산을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짧은 유일사 코스를 택했다.
딸이 그곳의 주차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두툼하게 중무장한 딸의 옷차림새에
우리는 며칠간 눈구덩이에 빠져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먼저 식사부터 했다.
딸은 그때나 지금이나 귀엽지만
그때는 더 귀여웠다.
산길은 눈이 내리면 눈길이 된다.
온통 하얀 순백의 길이다.
산을 오를 때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갖가지 나무와의 만남이다.
겨울엔 가지와 가지 사이가 비면서
나무의 자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왼쪽이 은지, 가운데가 문지, 오른쪽은 나의 그녀.
눈밭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 위에서 뒹굴어도 된다는 것.
나도 한 귀퉁이의 그림자로 그 즐거움의 자리에 끼어들었다.
시야가 트이면 그때부터 가슴도 열리는 느낌이다.
산을 오를 때면 나는 종종 뒤를 돌아본다.
그때마다 내가 지나온 곳이 조금씩 조금씩 더욱 아득해진다.
나는 틈틈이 그 아득함을 돌아보며 산을 오른다.
그것이 산에 갔을 때 나의 즐거움이다.
태백산의 정상에 있는 천제단.
앞쪽은 거의 눈이 녹아있었고,
뒤쪽으로는 눈이 거의 그대로였다.
올라갈 때는 걸어서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썰매타고 바람처럼 미끄러져 내려왔다.
썰매는 오궁 썰매라고 불렀다.
오리궁둥이 썰매의 줄임말이 아닐까 싶다.
올라갈 때 힘들다고 투덜대며 한발이 나와 있던 아이들의 입은
내려올 때의 즐거움과 함께 쏙 들어가 버렸다.
6 thoughts on “태백산의 추억”
아마 ’97년인가 말일에 태백산을 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새해 첫날을 태백산 정상에서 일출과 함께 했었거든요. 특히 그녀와 함께…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새해 다짐을 했던 기억이 새로워집니다….
97년이면 태백산은 저보다 훨씬 먼저 오르셨네요. 사실 강원도 영월의 산골에서 자라 서울로 이사온 뒤로는 산에 자주가질 않았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산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내 고향의 산이 제일 그리워요. 그 산의 이름은 뒷산인데 말이죠. 언제 고향에 내려가 이제는 길도 모두 지워져 버린 뒷산과 앞산을 한번 올라가 볼 생각입니다. 엠파스의 블로그에 찾아가 보았더니 아빠의 정이 넘쳐 흐르는 군요. 마음이 푸근합니다.
정말 멋진 가족이네요.^^ 저라면 그 추운데 산을 오를생각은 꿈에도 못하겠어요. 더구나 아이들 데려갔다가 다치면 어쩌나 걱정할테고.^^
눈위에서 뒹구는 모습들이랑 통통이님이랑 찍은 세 여인들(?)의 모습등 넘 멋져요.^^
태백산은 산이 험하질 않아서 아이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어요. 이번 겨울에 태백산으로 가족들과 함께 한번 놀러가 보시길.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올라갈 거예요. 유일사 코스는 거의 산중턱에서 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거나 일단 눈이 왔을 때 가야 멋있어요.
역쉬 엄마는 엄마다.
울 딸은 언제 봐도 예쁘고 귀엽다.
어떻게 저런 천진난만한 표정이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게 좀 아쉽다…
요즘 기말고사 준비한다고 힘들어하는 딸을 보니 더 아쉽다…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우리 딸 귀여운 옛모습이 너무 많다. 요기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