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동체인 나눔의 집에
일본에서 90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평화 페스티벌을 겸하여
올해 두번째로 열리는 한일 노래 교류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다.
페스티벌 중간에 모두 무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통일은 남북한의 일인줄 알았는데
이들에겐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마음을 합치는 것도 통일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 그 아픔을 위로하고
평화 헌법 9조를 고치려고 하는 일본의 불순한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 한국을 찾아 왔으며,
입을 모아 평화를 노래하며 그 마음을 다졌다.
이 행사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이며,
일본에서 90여명,
한국에서 월드카프, 흥사단 등의 단체에서 100여명이 참가했다.
배춘희 할머니(오른쪽)가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오늘 쇼하는 건가?”
공연이 있는가를 묻는 말이지만
갑자기 쇼하고 있네로 들려 웃음이 나온다.
행사가 1회성 쇼로 끝나선 안된다는 날카로운 압력(?)인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무슨 행사가 열리긴 끊임없이 열리는데
해결은 안되는 걸 보면
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법도 하다.
찾아온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들이 이 땅에 남긴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평화를 노래하기에 앞서 역사의 실체를 아는 것이 우선이다.
모두 두 팀으로 나누어 역사관 관람과 비디오 시청을 했다.
보통은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일본인 무라야마 잇페이씨가 설명을 하지만
이 사진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원봉사를 나온 일본인 오가타 요시히로씨이다.
일본인들이 일본군 위안소의 분포도 앞에 서서 설명을 듣고 있다.
일본군 위안소는 동남아 전역에 걸쳐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많은 숫자에 일본인들도 놀랐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외면하고 지우려 하는 그 분명한 역사를
오늘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이 모두 눈여겨 들여다보며
그들의 가슴 속에 담아간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은
평화는 역사를 지우고 새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분명히 알고 그 위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발뺌을 하는 일본을 마주할 때면 이곳 나눔의 집이 분노로 들끓지만
이렇게 멀리 바다를 건너와
역사 앞에 마주서는 일본인들에게선 희망을 보게 된다.
오늘 나눔의 집 역사관에선 분노와 희망이 교차된다.
그 희망이 분노를 잠재웠을 때 진정한 평화는 온다.
한 일본인이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할머니의 그림에는 분노가 있고,
아픈 기억이 있고,
또 잃어버린 꿈이 있다.
그림을 둘러보던 한 일본인 여성이
결국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았다.
뒤쪽으로 약간의 흐느낌마저 들린다.
시노다 유미코라는 분이다.
역사관 관람에 이어 할머니의 증언이 뒤를 이었다.
이날 증언에 나선 할머니는 박옥선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열여덟에 끌려가 60이 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얘기를 어찌 한두 시간에 담을 수 있으랴.
아마도 얘기를 있는 그대로 다 풀어놓으면
여기 앉은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반백이 되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눈물은 계속되었다.
할머니들의 그림 앞에서 흘렀던 시노다 유미코씨의 눈물은
이번에는 박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듣던
일본인 사이토 요시코씨의 눈을 넘쳐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증언을 들은 뒤
일본인들이 박옥선 할머니를 둘러싸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의 기분은 어땠을까.
평화의 염원에 둘러쌓였으니 따뜻하고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다.
본격적인 공연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은 꼬마 관객이 홀로 노래를 듣는다.
하지만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사람들이 불렀던 평화의 노래를.
그리고 아이는 그 평화의 싹을 크고 무성한 나무로 키워갈 것이다.
평화의 염원을 짧은 문구에 담아 장식을 하는 행사도 마련되었다.
“평화! 아무 이유없어!”
그렇다. 평화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에 무슨 이유가 있으랴.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의회에서 위안부 증언을 했던 김군자 할머니이다.
김군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베 수상이 미국에 가서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사과를 할 곳은 이곳인데 왜 미국에 가서 사과를 합니까?”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는 파랑새 밴드가 있었다.
모두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일본 여성들이라고 한다.
증언을 듣다 눈물을 보인 사이토 요시코씨는 이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이며,
그림을 볼 때 울음을 터뜨린 시노다 유미코씨는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다.
주로 남한산 초등학교와 당촌 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산도깨비란 이름의 풍물 모임에선 사자놀이를 선보였다.
풍물패를 이끌고 나온 분은
사자가 잡귀를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미국과 일본의 전쟁귀신을 오늘의 사자 놀이로 모두 쫓아내자고 말했다.
가수 손병휘씨는
우리가 그동안 이룬 것도 많지만 해결해야할 일도 많은 처지라며,
그 중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인은 음악으로 그런 일에 동참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늘의 이 자리에서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가 고민했다며
그가 꺼내든 노래는 “봄날은 간다”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의 노래가 봄날을 따라 흘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강일출 할머니가 말했다.
“노래 잘하네!”
날은 따뜻했으며, 하늘은 푸르렀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머리맡에서
태극기가 쉼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평화가 왜 좋은지, 또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날 하루의 축제가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었다.
6 thoughts on “노래에 평화를 싣다 – 나눔의 집 한일 평화 페스티벌”
여기 가지고 계신 글 퍼가도 되나요?
전 그 때 행사에 같이 참석한 월드카프의 김정래라고 해요~^^
출처는 남겨 놓을께요~^^
이런 일이야 널리 알리면 좋지요.
당연히 퍼가셔도 됩니다.
손병휘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 할머니들이 좋아하셨겠어요.
전 멀단 핑계로 찾아뵙지 못 하고, 바라만보는데
또 이런 행사가 있으면 귀뜸해주시겠어요?
이런 소중한 만남과 장소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오면 좋지만 경남에서 오기엔 보통 먼게 아닌데요.
손병휘씨는 잘생기기도 하고, 말도 잘하고…
여기서 한 공연 가운데서 가장 음향 설비가 좋았다는.
정말 잘 쓴다.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한 연대가 필요 할때 입니다.
오늘 나눔의 집 찾아준 일본인들,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