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오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 공동체인
경기도 퇴촌 원당리 나눔의 집 마당에
선율 고운 클래식의 향기가 가득찼다.
할머니들을 찾아와 이렇게 음악을 선물한 사람들은 바로 구리시 교향악단.
오늘 저녁 7시 30분에 구리시 체육관에서
“뿌리와 한”이라는 주제로
음악에 할머니들의 삶을 담아 사람들에게 전할 예정인 이들은
그 전에 먼저 할머니들을 찾았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날 할머니들께 연주를 들려 드리면서
동시에 할머니들의 삶과 역사를 음악에 담은 셈이다.
공연은 오전 11시에 시작되어 오후 1시까지 계속되었다.
그 현장을 돌아본다.
관객보다 연주자가 더 많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겪은 삶을 생각하면
그 삶을 담아가기엔 더 많은 연주자가 와도 모자랄지 모른다.
오늘은 어버이날.
먼저 할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인사말을 부탁받은 구리시 교향악단의 김현철 단장은
1년전부터 이 공연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으며,
“할머니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부탁에 가장 큰 무게를 실었다.
김현철 단장은 이곳 나눔의 집 후원회원 중 한분으로부터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 제의를 받았으며,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뒤 공연을 결심했다.
의외로 할머니들 문제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놀란 김단장은
이번 공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장까지 나오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이곳에 와서 직접 할머니들을 위해 공연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나눔의 집 측에선 교향악단 전부가 움직이는 것은 어려울테니
일부만 와서 공연을 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김단장은 연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와서 할머니들의 역사를 호흡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며
단원을 모두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단원들은 일찍 나눔의 집을 찾아 역사관을 돌아보고 할머니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분위기는 숙연했으며,
역사관 지하의 위안소 모형을 둘러볼 때
젊은 여성 단원들 가운데 눈물을 훔치는 단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오늘의 공연은 오직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이다.
모두 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관객으로 자리해 주었다.
왼쪽부터 강일출, 이용녀, 이옥선, 김군자, 박옥선, 배춘희 할머니이다.
베토벤의 운명이 울려퍼진다.
이는 운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운명은 할머니들의 삶을 그린 음악이다.
할머니들보다 더 참혹한 운명을 겪은 삶을 어디에서 또 찾아볼 수 있으랴.
그러나 할머니들은 그 운명의 질곡을 떨쳐내고 일어서고 계시다.
베토벤의 운명은 할머니들의 음악이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은령씨와의 협연으로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을 선물한다.
여름은 초록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더위로 혹독한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여름이 오늘은 아름다운 선율로 넘실댄다.
할머니들의 삶도 여름처럼 혹독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삶은 바이올린 선율에 실린 오늘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바리톤 최종우씨가 나와 가곡을 불렀다.
배춘희 할머니가 따라불렀다.
아니 할머니는 노래를 받고, 대신 자신이 살아온 삶을 건네준다.
그 삶은 아픈 삶이었지만 최종우씨는 오늘 그 삶을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위로했다.
메조소프라노 추희명씨가 나와
바리톤으로 위로한 할머니들의 삶을
고운 여성의 음색에 다시 한번 담아간다.
구리시 여성합창단원들의 순서이다.
할머니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모두 목소리를 합치고
세상에 대해 평화를 합창하는 것이 할머니들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인줄 알았는데
오늘의 음악은 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연주할 때 그 선율에 할머니의 삶이 담기고,
노래를 할 때 그 노래에 할머니의 삶이 담긴다.
노래와 선율에 담긴 할머니들의 삶은
저녁 공연 때는 사람들의 가슴으로 흘러갈 것이다.
교향시 “내가 살던 고향”이 연주되자
귀에 익은 선율을 눈치챈 이옥선 할머니(왼쪽)가 따라부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리고 김군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었다.
나중에 인사말을 통해 자신을 말썽쟁이라고 소개해 좌중을 웃긴 김군자 할머니는
어버이날을 외롭게 보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좋은 음악을 들려준 덕분에
한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구리시 교향악단만 온 것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의 탄벌초등학교에서도 할머니들께 음악 선물을 들고 왔다.
아이들은 연주만 한게 아니고
교향악단 연주 때는 할머니들과 함께 관객도 되어 주었다.
탄벌초등학교 학생들은 타악 앙상블과 리코더 연주를 들려주었다.
역사관의 벽엔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삶이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아이들은 그 앞에서 할머니들의 삶을 음악으로 보듬었다.
연주를 끝낸 아이들이
할머니들께 달려가 손잡고, 그리고 그 품에 안겼다.
아이들을 가슴에 안은 할머니들은 세상을 모두 안은 표정이었다.
2007년 5월 어버이날,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하루는 훈훈하고 따뜻했다.
4 thoughts on “베토벤도 비발디도 할머니의 음악되다 – 구리시 교향악단 나눔의 집 공연”
멋있어요~^^
사진엔 없는데 색소폰 연주, 정말 멋있었어요.
탱고곡이었거든요.
그게 클래식 색소폰이라고 그냥 일반적으로 보는 색소폰하고 다르더라구요.
아마도 가장 적은 관객을 모시고 한 연주였을거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것도 편하게, 지휘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곳에서,
음악을 들으니 참 좋긴 하더라.
할머니 덕분에 내 귀가 호사했네^^
지휘자가 너무 잘 생겼어.
그리고 섹스폰 연주자도 참 잘했는데… 왜 사진은 없어?
음악 선곡도 참 잘한 것 같던데…
사진은 찍었어.
적당한 설명이 떠오르질 않아서.
그냥 사진만 넣을 수는 없잖아.
나는 탱고라고 해서 신나는 음악인줄 알고 사실은 사진을 많이 찍었거든.
근데 생각처럼 빠르진 않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