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눈이 내렸다(12월 4일).
그날 집을 나선 나의 발걸음은 결국은 원주의 치악산으로 향하고 말았다.
도시의 눈은 반갑기도 하지만 아울러 번거롭다.
바쁜 생활의 한가운데서 맞는 눈은 그럴 수밖에 없다.
눈이 내리면 그 분주한 속도의 도시가 발목을 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시는 눈이 내린 날 순백의 겨울을 마음껏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도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마비가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보면 눈이 내린 날, 어딘가를 시간 맞춰 바쁘게 가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만이라도 그런 도시의 분주함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눈이 내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날 나는 밀려있는 일을 팽개치고
원주의 치악산으로 날라버렸다.
그리고 내내 눈과 동행하며 그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눈은 포근하다.
아니다, 눈은 차다.
눈은 그렇게, 볼 때와 손에 만졌을 때의 느낌을 전혀 달리한다.
그러나 눈은 포근하다는 느낌이 차다는 느낌을 압도한다.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눈의 그 차디찬 느낌을 내몰라라 한다.
우리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눈밭에서 마냥 즐거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냉기가 5분 이상 장갑을 벗고있기 힘들게 했지만
세상을 덮은 눈밭을 지날 때 나의 마음은 푸근하기만 했다.
부도탑 위에도 눈이 쌓였다.
돌의 냉기를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누군가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휴식을 청했을 나무둥치 위에
오늘은 눈이 엉덩이를 걸쳤다.
눈을 슬쩍 밀어내고 나면
따끈한 엉덩이의 온기가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겨울 나무는 앙상해 보인다.
바람이 숭숭 통하는 그 앙상함 때문에
겨울나무는 우리 눈에 안스럽게만 보인다.
오늘 눈이 나무의 몸을 반쯤 덮어주고 있다.
안스러움이 반쯤 가려진 느낌이었다.
사실 겨울은 대지의 맨살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겨울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점에서 보면 대지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더운 계절엔 겹겹의 초록잎을 두텁게 두르고 살다가
하필 겨울이 왔을 때는 맨살로 오들오들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 대지의 가난을 눈이 포근하고 하얗게 덮어주었다.
겨울 찬바람에 쫓기던 단풍잎 하나는
잠시 눈으로 된 움집에서 추위를 피했다.
드디어 치악산의 정상에 올랐다.
과연 누구였을까, 치악산의 정상에 저 돌탑을 쌓은 사람은.
치악산의 정상에서
돌은 한켜 두켜 쌓여서 더 높이 올라가려 한다.
눈은 그와 반대로 한켜 두켜 쌓여서 세상을 덮으려 한다.
돌탑은 그렇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었고,
눈은 가슴을 대지로 두고 있었다.
눈의 느낌이 따뜻한 것은 그 때문이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치악의 정상에 오르고
나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모두가 올라 선 치악의 정상에 눈이 있었다.
우리들이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고,
정상의 돌탑이 더 높이 하늘을 향하여 몸을 세울 때
눈은 반대로 그곳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우리에겐 정상이 가장 높은 곳이나
눈에겐 우리가 출발했던 저 아래쪽,
그곳에서도 가장 비루하고 가난하며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다.
나는 눈의 길을 거슬러 정상에 오르고,
그 다음엔 눈의 길을 따라 내가 출발했던 저 아래쪽으로 동행을 계속했다.
눈이 외나무 다리를 삐뚤삐뚤 건너가며 이렇게 말한다.
균형을 잘 잡아.
장난기 어린 그 걸음을 따라
팔을 벌리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듯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갔다.
한 배에서 낳는데
어찌 이리도 모습이 다른 것일까.
산을 내려오다 눈속에 쌓여있는 투명한 낯빛의 얼음을 만났다.
얼음은 언제나처럼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눈은 그 차가운 표정을 제 가슴에 따뜻이 품어주고 있었다.
계곡에선 한배에서 난 눈의 또다른 형제를 만났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이제 계곡에선
소리로 먼저 귓전을 파고들었던 물줄기가 그 몸을 드러냈다.
물은 폭이 좁은 곳에선 몸을 가늘게 늘이며 빠른 속도로 하강을 했다.
그러다 쉴 곳이 넓게 나타나면 곧바로 보폭을 줄이며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물은 강약의 박자를 끊임없이 바꾸며 계곡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물의 걸음을 뒤쫓지 않고
오늘은 계속 눈과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바람이 흔들자
나뭇가지에 얹혀있던 눈들이 내 머리 위로 우수수 날렸다.
눈이 날릴 때 숲엔 나밖에 없었다.
눈이 올 때면 세상 모두의 눈이지만
눈온 날 숲에 가면
혼자 독차지하는 눈도 있다.
처음 산을 오를 때 눈은 나무의 앙상함을 가려준 포근함이었는데
이제는 나무가 눈이 지상으로 오는 길이었다.
나무의 길 안내를 따라 그렇게 눈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단풍은 눈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러다 바람이 잠잠해지면 잠시 조용히 제 자리를 지켰다.
단풍은 아무리 굴러다녀도 눈 위에 제 자국이 없었다.
나뭇가지 사이에선
눈이 팔을 들어 양쪽으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으X, 으X,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가던 길에 잠시 뻐근해진 몸을 풀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따라 팔을 들고 잠시 몸을 풀었다.
눈밭에 누군가 남긴 발자국이 있었다.
나뭇잎이 잠시 발자국의 흔적을 기웃거렸다.
지난 가을, 유난히 자신을 오랫동안 올려다 보았던 누군가의 체취라도 남아있는 것일까.
눈밭에선 모두가 그렇게 자기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곧 사라지겠지만
그러나 눈이 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다.
흔적도 없이, 아무 자취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다.
눈과의 동행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얻어들은 눈의 전언이었다.
5 thoughts on “눈과 동행하며 얘기나누다 – 원주 치악산에서”
치악산에 오시면 들리세요^^
무지 추우셨죠? 담에 가실땐 손난로라도 양쪽에 넣고 가세요.^^
귀를 가릴게 하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은 장갑이 있는데 귀가 무방비 상태가 되서. 털모자 하나 사야겠어요. 아무래도 눈올 때마다 어딘가 갈 것 같아서.
흔적도 없이, 아무 자취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없다…. 늘 그게 슬픔의 원천이 되지요…
잠시 들러 쉬었다가 갑니다..건안 하세요
엇, 슬프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일해야 하는데 자꾸 사진만 뒤적거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