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간혹 현실을 뒤흔드는 시의 힘에 놀라곤 한다. 오해 마시라. 내가 말하는 시란 실천이나 참여의 테두리 속에 발을 딛고 있는 시들이 아니다. 시가 노동의 해방을 말하고 민주나 자유를 외치며 투쟁의 구호를 내비칠 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시에서 세상을 바꾸고 뒤엎고 싶은 변혁의 꿈을 읽어낼 수 있다. 나의 놀라움은 그와는 전혀 다른 시들에서 온다. 내 놀라움의 시들은 현실 속으로 스며들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지극히 낮으며, 대상을 서정성으로 물들이기 일쑤이다. 그 어디에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변혁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시들에서 현실을 뒤흔드는 힘을 접하며, 내게 있어 그 힘의 강도는 현실에 대한 참여 의식을 직접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시들보다 더 강하고 깊다. 그렇게 내게 있어 시는 때로 현실 속으로 조용히 잠입하여 그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지하철에서, 혹은 볼일보러간 덩치 큰 건물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부딪치곤 한다. 나의 시선은 무심하다. 그냥 은행원이나 판매원과 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의 하나로 그 아주머니를 지나친다. 때문에 내게 있어 그 아주머니의 삶은 그렇게 그어진 직업 분류 상의 선을 한번도 넘어오지 않는다. 아주머니의 삶은 그 선의 저편으로 언제나 일정 거리를 두고 그곳에 단단히 갇혀 있다. 아니, 아주머니가 갇혀있다기보다 나의 아주머니에 대한 시선은 그렇게 굳어있다.
그런데 한 시인이 ‘긴’ “복도 끝 바닥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초점을 맞춘다. 시인의 시선은 ‘그 여자’가 “부스스 일어”나 “푸르스레한 가운의 구겨진 앞자락을 느린 손놀림으로 펴내리고/무릎 위에 놓고 있던 자루걸레의 자루를 세”우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기다란 자루를 그냥 얹은 듯 쥐고”는 자루걸레를 “밀기 시작”하는 그녀의 몸놀림을 계속 따라잡는다. 그 중간에 우리는, “벽면 한쪽의 잇달은 창유리”로 “저무는 햇살이 들이쳐 복도의 반나마를 차지”하고 “열기와 힘이 이미 빠져버린 반나마의 햇살 속”에 그녀가 ‘잠길 때’ “시름중에서도 엷은 안락이 찾아오”는 짧은 순간을 스쳐가게 되며, 인화된 그 순간의 언어들은 우리로 하여금 빛과 구도가 조화를 이룬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연상시켜 준다. 그렇게 하여 그녀가 “일을 끝마”치고 “푸르스레한 가운을 벗어 흰 벽에 걸고/복도 끝에서 부스스 일어날 때와 같이/뒷문으로 해서 부스스 사라”지고 나면 이제 그 복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채색으로 나의 시선을 채운다.
자루걸레질하는 여자의 시름없는 생애가 밀고 간
복도가 조용하고 길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진명, 「자루걸레질하는 여자 1」 부분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아주머니의 일상과 그녀가 남기고간 복도이지만, 나는 반복되던 일상이 그곳에서 송두리째 바뀌어있는 놀라움을 본다. 복도가 그냥 통로의 의미를 너머 한 여자가 자기의 생애를 밀고 간 자취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예가 있다. 자폐아는 나에게 있어 장애의 일종일 뿐이다. 병명으로 재단하여 선을 그은 나의 일반적 인식 속에서 자폐아의 삶은 항상 그 선의 경계에 묶여있었으며, 그 아이는 내가 갖는 그 일반적 구분선의 경계에 묶여 그 이외의 모습으로는 한 걸음도 내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묶여있다기보다 나의 시선은 그렇게 굳어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시인이 그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을 때, 그 아이의 앞에서, 아이를 자폐아로 규정하고 묶어두었던 세상이 오히려 무력해지고 헛것이 된다.
너를 만나면 이 세계는 모두 헛것
텔레비전 뉴스는 소음 책은 팔랑이는 악기
신발은 우유를 싣고 달리는 통통구리배
거실은 화장실 피아노는 낙하대
(중략)
달력은 더 이상 넘어가지 않고
신나는 방학도 즐거운 크리스마스도 오지 않아
너를 만나면
옷은 거추장스럽고 모든 약속은 터무니없고
세상의 일이란 돌멩이 하나만도 못하게 되지
─김점용, 「자폐아2」 부분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여서, 자폐아 ‘우인’이는 여전히 말을 할 줄 모르고 있으나, 내가 그의 앞에 경계를 그어 구획했던 세상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지반을 뒤엎는 그 급격한 지각 변동의 현실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이다. 시인의 시는 자폐아가 전혀 ‘길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망명’(김점용, 「내 마음의 망명 정부」)의 공간이며, 그 속에서 자폐아를 재단했던 현실의 구속력은 모두 무력해진다.
나에게 있어 시가 현실을 움직이고 바꾼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면서도, 그러니까 세상의 표면적 질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뿌리채 뒤흔들고 바꿀 수 있었다. 때문에 내게 있어 시는 종종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힘이었다. 우리의 시선 속에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그 전환의 이후로 사실은 앉은뱅이 지구가 몸을 일으켜 걸음을 내딛는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나는 지금 시에서의 폭력 문제를 살펴보아야할 여정을 앞두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번에도 시에 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이 유효할 수 있을까? 그러한 시의 힘이 폭력 앞에서도 똑같이 작용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하여 나는 걸음을 떼기도 전에 회의 쪽으로 기울고 있다. 폭력은 내가 예로 든 두 가지의 경우와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 그것은 나를 짓밟고 무너뜨리려 하는 흉포한 힘이다. 그 앞에서 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점에서 현실을 흔들고 뒤바꾸는 시의 힘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기대를 버릴 일도 아니다. 그동안 나에겐 희망적인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루걸레질하는 여자와 자폐아 우인이는 바로 그 경험의 한 부분들이다. 그러므로 그와 양상을 달리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시는 예외없이 그 힘을 보여주며 폭력의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세계를 뒤엎고 바꾸는 힘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이번의 내 여정은 바로 그 희망과 함께 발걸음을 뗀다.
2
나의 여정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80년대로부터 시작된다. 80년대라는 시점과 관련하여 밝혀둘 점은 이 여정이 과거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우리의 주변에서 폭력의 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란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의 저편 아프가니스탄에선 테러에 대한 보복이란 이름 아래 미국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우리의 가까이에선 가정이나 학원 어디에서나 하루도 신문 지상을 거르고 지나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폭력은 만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시인들이 그 시대만큼 폭력, 그것도 독재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에 대하여 폭넓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80년의 5월에 서게 된다. 시인이 기록하고 증언하는 그 폭력의 현장은 이러하다.
대검이 와서
그의 가슴을 찌르자 뒤에서는
개머리판이 와서 그의 뒤통수를 깠어요
으윽─ 한낮의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군화발이 와서 그의 턱을 걷어찼어요
─김남주, 「학살 5」 부분
이 살륙의 현장을 전쟁터로 오인하지 마시라. 이곳은 적군과 아군으로 편이 갈린 군인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겨냥할 수밖에 없는 전선이 아니라 국경으로부터 멀리 남쪽으로 위치한 “낯익은 도시,”(임동확, 「끝간 데 없이 타오르던 꽃의 능선을」) 바로 광주였다. 때문에 희생자는 전쟁터의 아군이나 적군이 아니었다. 그 학살의 희생자들은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아들”, “우리들의 귀여운 딸”(김준태,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들이었다.
여기 시인이 남긴 그날의 희생자들 명단이 있다.
네째 날, 깃발을 든 어린 중학생아
너는 무엇을 그리며 눈물겨운 入城戰에서 죽어 갔느냐
헌혈을 하러가다 어느 길모퉁이 예쁜 꽃표적으로
피었다 져버린 하얀 교복의 여고생 누이야
─임동확,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부분
처음부터 우리는 폭도가 아니었다. 아무리 구슬리고 강요해도 너와 나는 동정을 지닌 신랑 신부였구나. 리어커꾼, 구두닦이, 철공소 공원, 보험 아줌마, 노점상이었으며……먹빛 교복의 고등학생이었구나. 오, 어떤 협잡과 박해가 더 계속된다 해도 모두들 순한 피를 가진 이 나라 착하디 착한 백성들이었구나. 그대여.
─임동확,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의 편지 Ⅱ」 부분
바로 그 희생자들의 무고함으로 인하여 학살의 폭력성은 더더욱 야만적이며, 이 도시에서 자행된 폭력의 야만성은 다음과 같은 증언에서 극에 달한다.
야 이년아,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뭐야
만삭의 여인은 영문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봤다
이 쌍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머스마가? 기집아가?
( ……………… )
그럼 내가 알려주지, 하며
악마는 대검으로 뱃속의 태아를 꺼내 갔다
그때 골목에 숨어 있던 목격자가 혼잣말로
「제발, 멀리 달아나세요」 외쳤지만
끝내 그 여인은 도망가지 못했고
대답 대신 핏덩이의 울음만 들려왔다
─임동확, 「대지로부터 저주받아야 할 자들」 부분
그렇게 무고한 희생자를 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때 수리떼가 죽은 고기를 탐하”고 “맹수들이 피맛을 즐기며 날뛰던”(임동확, 「봄 밤의 꿈」)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김준태,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 광주는 ‘짐승의 시간’(임동확, 「너희들의 조사와 애도를 거부한다」)이 지배하던 곳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의 그 학살극에 대하여 김남주는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김남주, 「학살 2」)을 것이라 새겨놓고 있다. 그곳의 참상은 목격자가 얘기를 전하면서도 그 장소를 비켜가고 그 시간을 비켜간 사람들에게 그 얘기가 믿길 것인지 의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재삼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다
누구도 그 전부를 혼자서는 증언하기 힘들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곳에 없었던 국외자들이
쉽게 상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고 했다
─임동확, 「한 목격자는 이렇게 그 날을 증언했다」 부분
그러나 김남주의 짧은 한마디는 사람들의 의구심를 단칼에 잘라버리면서 그 목격자의 전언을 사실로 담보한다.
당신은 묻겠는가 이게 사실이냐고
─김남주, 「학살 3」 부분
그렇게 처참한 학살극이 이 땅에서 벌어졌지만 “고립무원의 도시”(임동확, 「이제 그들은 무엇이 되어」)에서 벌어진 그 학살극의 진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은하계 멀리 자리한 혹성의 사태”(임동확, 「저물 무렵」)로 묻혀 버리고, 80년대는 폭력의 시대가 된다. 그때 우리가 살았던 나라를 김남주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일어나
오가는 행인들을 때려 눕히고
빨갱이다! 폭도들이다! 좌경용공이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나라
꼭두 새벽이면 고함소리의 장본인이
세상 모든 잠을 설쳐놓고 텔레비젼에 나타나
내가 왕이다! 내가 왕이다!
넉살 좋게 웃어 제끼는 나라
─김남주, 「대단한 나라」 부분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인격이 수모를 당하”는 “굴욕의 상처” (김남주, 「비녀꽂이」)속에 80년대를 살아가야 했다. 독재 정권의 폭력은 그 시대 내내 계속된다. 김태동은 그 죽임의 시대를 이렇게 기록한다.
태양이 뜨고 꽃 피고 새 우는 날
이 땅 어느 후미진 곳 백주 대낮에 백골단이 쇠파이프로 한 학생의 머리를 마구 두들겨패 피를 뿌렸습니다
흰 병원차에 실려 흰 병원차에 실려 실려가는 주검
태양이 뜨고 꽃 피고 새 우는 날
어쩌면 우리도 피치 못할 세월을 살고 있으니
미친 백골단과 권력들은 또 어디론가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싣고 떠나고
죽이려 가는가
─김태동, 「시절 시절」 전문
시인들이 전하고 기록하는 80년대는 그렇게 “침묵의 저 깊은 곳까지 간섭하고 지배하려 들었던 독재 권력과/구금과 체포, 고문과 분신의 기억”(임동확, 「여인들에게(抄)」)으로 점철된 폭력의 시대였다.
3
“짐승처럼 비굴하게 굴어야” 겨우 삶의 길을 ‘허락'(임동확, 「내릴 곳이 아닌 곳에」)받을 수 있었던 그 시대에, 박정희에서 시작되어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그 암울한 군부 독재 시대에 그러나 시는 폭력의 현장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 시대의 폭력에 대응한다.
김남주는 그 폭력의 시대 앞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에게 있어 그 시대 앞에 침묵한다는 것은, “한낮에 대낮에” “무고한 시민을 마구잡이로 죽인 자가/왕관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라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종의 삶이며, 그 굴종 속에 희망은 없다.
굴욕으로 흐르는 침묵이여, 침묵의 거리여
굴욕으로 도대체 무슨 희망을 가져야 하나.
─김남주, 「희망에 대하여 1」 부분
그는 “그날의 실종을 남몰래 기억하고 노래하”(임동확,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지 않는다. 그가 광주의 오월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죽음을 말하는 순간, 그 죽음은 기억과 결부되어도 우리의 머리 속으로 응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깥으로 울려나가는 선언이 된다.
노래해 주마 당신들의 죽음을
시인인 내가 기억해 주마
─김남주, 「달」 부분
사람들은 아들이 걷는 고난의 길에 가슴아파할 어머니를 들어 종종 자신이 가야할 길의 행보를 꺾고 말지만 김남주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전언의 형식을 빌어 오히려 폭력의 정권에 대한 싸움을 예비한다.
어머니 이제 내 책꽂이에서
꽃을 노래한 시집이 있거들랑 치워주세요
그 자리에 바위산과 투쟁을 노래한 전사의 시가 들어찰 것입니다.
─김남주, 「40이란 숫자는」 부분
그의 싸움 속에는 풀잎의 서정이 들어찰 자리가 없다. 전선으로 나서는 그는 풀잎의 서정을 한켠으로 밀어낸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중략)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중략)
팔이며 다리가 피 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중략)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부분
그 길에 화해나 용서는 없다.
화해가 아니고 용서가 아니고
갚으라고 원수는 저기 저렇게 있나니
─김남주, 「달」 부분
그의 길은 그렇게 폭력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길에서 흔들림이 없다. 독재 정권은 혹독한 고문으로 그의 길을 흔들고 회유하려 한다. 그 고문 앞에서 그의 “비명소리로 세상은 조용했고/단냄새로” 그의 “목청은 뜨거웠”(김남주, 「비녀꽂이」)지만 그 흉포한 힘도 그의 길을 꺾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감옥은 “전사의 휴식처”(김남주, 「권력의 담」)에 불과해진다. 그의 시는 이제 “전투에의 나팔소리”가 되며, “압제자의 가슴에 꽂히는 창”(김남주, 「시인이여」)이 된다.
우리는 그의 그 직접적이고도 치열한 싸움이 “저들을 역사의 법정으로 소환해”내고 “저 피의 권력을 단죄하”(임동확, 「우린 이겨왔다」)는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여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기 그와는 다른 운명의 시인이 있다. 임동확은 “부어오른 편도선과/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선을 벗어”(임동확, 「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남으로써 그 환란의 순간으로부터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에겐 “<살아 있음>이 결코 축복이 아니”(임동확, 「아무도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었다. “산 자에게 남은 전리품은 쓰디쓴 환멸의 잔해뿐이었”(임동확,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으며, “동료의 죽음과 울부짖음을 외면했다”(임동확, 「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는 죄의식이 그 이후로 내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한 죄의식은 김준태에게선 더욱 깊다.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罪人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부분
이들을 감싸고 있는 죄의식은 그들이 죽은 자의 목소리에 등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계속 시인들의 귓전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전언을 너는 듣고 있느냐 너희 몸 속에 내가 살고 있다
밀어내어도 밀어내어도 내가 거기 더듬거리며 살고 있다
─김태동, 「인연의 나뭇가지를 잡고」 부분
“단지 살아 남았다는 것이 죄스런 시간이”(임동확, 「부치지 않은 편지」) 되면서 광주 이후의 시대는 사람들의 삶을 가두는 거대한 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은 “눈뜨면 사방이 가로막힌 단색의 철창”(임동확, 「벽시」)이 되며, 삶은 “풀리지 않는 유배의 시간”(임동확,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의 편지 Ⅱ」)이 된다. 그것은 “정면으로 맞서지도 그렇다고 비껴갈 수도 없는”(임동확, 「담장 밖으로 피어난 흰 목련」)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묶이고 갇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적 맴돌이는 많은 시간이 흘러 그 문제에 대한 현실적 매듭이 어느 정도 지어진 다음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벌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임동확, 「희미한 시간 너머로 우거진」) 딴청을 피우고 있는 세상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그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세월인지라/모든 게 물 속의 잉크가 풀리듯/무엇이든 자꾸 묽어가”(임동확, 「방어할 수 없는 부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인은 “그간 흘린 피와 땀방울이 마르기도 전에” 오늘의 세월이 “이쯤 해서 피 비린 과거사들을 그만 망각하고/적당히 물러나 박수나 치라”고 하는 순간, “대리인을 통해, 서푼 어치 선물 꾸러미의 수취인란에/사인이나 하라는” 시대에 대하여 “죽음보다 못한 수치”(임동확, 「선물」)를 느낀다. 그 순간 다시금 “해묵은 분노가 증오의 낫날로 세워지”(임동확, 「끝간 데 없이 타오르던 꽃의 능선을」)고 시인은 오늘의 현실에 저주를 안기게 된다.
(전략) 성한 눈을 뜬 채
제 형제의 살육을 목격하고
제 뱃속의 아이마저 빼앗긴 부당한 시대를
잊으라, 잊으라 강요하는 세월이여
그대 사는 땅에 화 있으라
그대 사는 날까지 저주있으라
─임동확, 「눈밭을 걸어가는 오이디푸스왕」 부분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삶이란 “몸부림칠수록 조여드는 밧줄이거나 늪”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생의 자궁”이다. “결국 빠져 나간다 해도, 모두들 그 안에 갇혀 있는 우주”(임동확, 「마포종점 5」)이다. 그의 삶은 “거의 빠져 벗어났다고 믿었지만, 뒤돌아보면 어김없이 그 주위를 다시 맴돌고 있”(임동확, 「꿈길밖에 길이 없어」)는 갇힌 삶이다. 세상은 바뀐 것일까.
4
바뀌었으면서도 바뀌지 않은 세상이다. 나는 김남주가 선택한 그 적극적 저항의 길이 결국 그 바뀌지 않은 세상을 바꾸는 시의 힘에 의해 완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꾼 것이 김남주의 길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하지만 그는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에 대하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나지 않”(김남주, 「전사 2」)는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그의 길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다. 시인이 폭력과 맞서는 제일선에 서 있을 때, 그러한 태도가 아니고선 그 길을 지탱할 수 없다.
그러나 전사가 아닌 자들에게 그 길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죽음은 그런 식으로는 무마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죽임의 시대에 대한 원초적 울부짖음이다.
아 아 이제 더 이상 죽이지 말자 이것이 아니다 이것이 아니야
─김태동, 「푸른 개와 놀았다」 부분
김태동은 “죽이지 마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지 말자”고 흐느끼고 있다. “죽이지 마라”라고 말할 때 그 말은 학살자를 향하면서 그 학살의 책임에 관한한 우리들이 발을 뺄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러나 “죽이지 말자”는 흐느낌은 우리들 모두를 그 학살극의 일원으로 묶어 버리면서 어느 누구도 그 학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만든다. 때문에 “죽이지 말자”는 이 흐느낌은, 그리고 그에 뒤이은 “이것이 아니”라는 그 시대에 대한 부정은 나약하게 이를 데 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흐느낌과 부정이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의 몫을 남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진폭은 전체적인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강도도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 흐느낌만으로 현실을 움직일 순 없지만 그러나 그 흐느낌은 살아있는 모든 자들을 시대의 당사자로 끌어들임으로써 바뀌지 않은 세상을 근원적으로 뒤바꿀 시발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들 모두가 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등을 돌리고 외면할 때, 김태동은 시대의 당사자가 되어 그 짐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의 흐느낌은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의 몫이란 어떤 것일까. 시인은 알고 있다. 80년대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는 길은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눈을 뜨라
제발 눈을 떠다오
그리고 완성해 다오
아, 다시 천만 번 용서하며
척추를 내리찍는 박달나무 몽둥이
개머리판에 딸기처럼 으깨어진 얼굴을 씻고
단 한 번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서다오
─임동확, 「라자로」 부분
우리는 모두가 그것이 물리적 차원에서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 불가능성은 시인을 80년대라는 시대의 벽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 불가능성으로 인하여 벽을 넘어서도 또 벽이고, 벽을 무너뜨려도 또 벽이다. 하지만 “익명의 섬에 갇”(임동확, 「이제 그들은 무엇이 되어」)혔던 시인은 어느날 실마리를 잡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벽을 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벽을 문삼아” 오랜 “삶의 기억”을 “한꺼번에 토”(임동확, 「벽을 문으로」)해 내려한다. 그 반전의 실마리는 “몇 차례 장마비가 쓸고 간” 뒤, 물길을 “잘못 거슬러 온 물고기들”이 “상류의 물냄새를/그리워하”며 죽음으로 떠오른 “절망의 개천”에서 얻어진다.
저 하류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가
여전히 죽음으로 삶을 항거할 수 있을 만한
역설의 생태계가 남아 있음을 증거하는
속수무책의 세월 속에서,
─임동확, 「희망의 근거」 부분
그동안 시인이 죽음에서 본 것은 죽음이었다. 그것은 시인을 헤어날 수 없는 두터운 벽 속에 가둔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죽음에서 삶을 본다. 그 순간, 이제 더이상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물고기의 죽음이 죽음으로 항거할 수 있는 생태계가 남아있음의 증거가 되는 순간, 그 죽음은 삶의 근거로 뒤바뀐다. 이런 인식에 실리면 벽은 충분히 문이 될 수 있다.
그 죽음을 좀더 구체적이고 역동적 삶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김준태이다. 그에게 있어 광주는 밭이다. 밭은 생명을 가꾸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폭력은 녹슬어 사라진다.
밭고랑에─
씨앗을 던지면 싹이 트지만
총칼을 던지면 녹슬어버린다.
─김준태, 「서시」 전문
아울러 그 밭은 영원의 공간이어서 “밭은/아무리 갈아엎어도/밭이다.”(김준태, 「걸레와 밭」). 그러나 그 밭에서 폭력이 녹슬고, 그리하여 생명이 자라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는 “옛이나/오늘이나/파랑새를/본 사람은/더러 있”으나 “그러나 파랑새가/어디에서 죽었는지/보았던 사람은/아직 하나도 없다고 한다”(김준태, 「파랑새」)는 말로 그 오랜 시간의 희망을 예비한다. 그는 “길을 찾지 못”할 때면 ‘밭으로’(김준태, 「멀리 가는 길 찾기」) 가며, 또 “오월이 오면 건망증 환자들과 눈먼 보수주의자들의 ‘망각·체념·무기력·변절의 도시락’을 벗어나, 어머니의 대지인 밭으로 밭으로 달려간다.”(김준태, 「원고청탁을 거절하며」) 그리고 이제 보라. 그가 가꾸어간 밭에서 죽음이 부활한다.
화염방사기에 그슬려서, 대검에 하복부가 찔려서 죽었다고 하는 윤상원, 사실은 죽지 않았습니다. 망월동에 항아리처럼 묻혀 있는 그의 몸뚱이를 컴퓨터로 된 현미경과 천체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그의 몸뚱이는 온통 밥으로 가득차 있지 않겠습니까. 퍼내도 퍼내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얀 밥으로 넘실넘실 가득차 있는 윤상원의 몸뚱이! 우리는 결국 윤상원의 몸뚱이 속으로 입을 밀어넣으며, 아침 저녁으로 밥을 훑어먹고 있었습니다. 아아, 우리의 밥통이 돼버린 밑도끝도 없는 광막한 윤상원의 몸뚱이!
─김준태, 「천비(天碑)」 부분
그렇게 하여 “서울에서 광주에 내려왔다가 급기야 행방불명이 돼버린 김천중씨”가 살아나고 “복부에 M16 총탄을 맞고 쓰러진” “열아홉” 나이의 얼굴 “뽀오얀” “황호걸”이 다시 일어나 “우리에게로 걸어”온다. ‘고영자’가, ‘전재수’가, ‘조남신’이 다시 살아난다. 아니, 살아서 튄다.
아아, 그대들은 이미 우리가 되어
죽어 있구나 그대들은 이미
우리가 되어 살아 튀는구나
─김준태, 「그렇다!」 부분
현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들은 모두 죽어 땅밑에 묻혀있으며,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져 여전히 소식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죽음의 지반을 송두리채 뒤엎으며, 죽음을 삶으로 일으켜 세운 시의 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힘 앞에서 이제 세상은 바뀌어 있다.
5
딸아이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녀석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녀석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빠가 그 노래를 좋아한다는 단 한가지 이유에서이다. 녀석이 그 노래를 부를 때면, 노래는 가볍고 즐겁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 오르고….” 오호, 놀라워라. 그 노래를 부를 때 언제나 비장하고 음울했던 그 묘지가 녀석의 목소리에 얹혀지는 순간, 서러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어릴 적 내가 뛰놀던 뒷동산의 무덤들 사이로 달음박질한다. 곱게 뗏장을 덮어쓰고 엎드려 있는 그 무덤들은 나의 흥겨운 놀이터이자 잠깐의 낮잠을 즐기는 안락한 쉼터이다. 나는 놀란다. 아니, 저 노래가 저렇게 가볍고 즐거운 것일 수 있었다니.
나는 그 가벼움과 즐거움이 그 노래에 실린 역사의 무게를 덜어내준 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폭력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자신의 목숨을 내주었던 김남주는 그 무게의 절반을 혼자 짊어지고 갔다. 그리고 새천년이 열리고 두 해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김태동에게서, 임동확에게서, 그리고 김준태에게서 그들이 짊어지고 가는 시대의 짐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그 역사의 무게를 딸아이에게는 강요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냥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처럼, 거짓처럼 환상처럼 아이의 마음을 졸였다 풀어놓았다를 되풀이하는 신화처럼, 그렇게 시인들이 걸어갔던 80년대를 들려주련다. 혹, 아는가, 그들의 시에 담긴 진정성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여 그 빚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시대에 갚아줄런지.
그러니 시인들이여, 역사의 무게로 짓눌린 노래의 지반을 뒤흔들어 내 딸아이의 노래에 가벼운 즐거움의 날개를 달아준 힘의 시인들이여, 이제 자루걸레질 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또 자폐아 우인이를 위해 망명 정부를 마련하는 시인의 가슴이 현실을 뒤바꾸려는 계속되는 노력임을 긍정해 주시고, 이 시대의 가벼움을, 이 시대의 즐거움을, 그 넓은 가슴으로 용서하시라.
(『문학과사회』, 200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