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의 속도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7월 21일 강원도 강릉의 안목해변에서

요트는 바다를 달리지 않고 조용히 소리없이 미끄러진다. 동력을 갖춘 배들이 달려간 바다는 배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좌우로 갈라진 흔적을 바다에 남긴다. 배의 뒤쪽으로 길게 남는 하얀 포말이 그 흔적이다. 속도는 바다를 빨리 갈 수 있게 해주지만 대신 바다에 길게 상처 자국 같은 흔적을 남긴다. 다행스럽게도 상처는 금방 치유된다. 바다의 치유력은 놀라워서 배가 남긴 어떤 상처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요트의 뒤로는 아무 것도 남질 않는다. 요트는 돛의 품에 안긴 바람을 앞을 갈 수 있는 힘으로 삼고 바람이 밀어주는 만큼만 속도를 낸다. 애정없이 품에 안기는 어려운 법이다. 돛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애정없이 품에 안기기도 어렵다. 바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니 요트를 밀어주는 바람의 힘은 알고 보면 애정의 힘이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이어서 요트의 바다는 한여름인데도 얼음판과 같다. 썰매의 날이 지나간 얼음판에 달리 흔적이 남지 않듯이 요트가 지나가는 바다에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에게 달리라고 말하지만 세상에는 삶을 달리는 급한 속도로 채우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냥 바람이 허용한 한계 내에서 조용히 세상을 미끄러지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마치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삶처럼 요트가 바람을 안고 바다를 미끄러진다. 대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세상물정 모르고 산다며 혀를 찬다. 그런데 바다를 미끄러지는 요트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고급지다며 부러워했다.
등을 미는 바람과 함께 천천히 바닷가를 걸었다. 바람이 나를 지나쳐 앞으로 먼저 나서곤 했다. 먼저 가라 보내며 천천히 바람을 따랐다. 잠시 지상을 미끄러지는 걷는 요트였다. 말할 수 없이 고급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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