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자유, 그 첫날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7월 20일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역 근처에서

지하철과 전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중의 기차 요금도 크게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동네의 지하철역으로 나가 첫차를 타고 가장 멀리 떠났다 왔다. 우리 동네서 수도권 전철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1호선의 신창역이란 곳이었다. 가는 데만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모두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환경에 의해 그 자유가 크게 제약이 된다고 말한다. 가령 우리는 누구나 제한없이 지하철을 타고 어디나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돈이 없으면 그 자유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진정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면 지하철을 누구나 요금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영어는 그런 측면에서 단어의 함의가 우리말보다 더 자유에 가깝다. free는 자유이기도 하지만 무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free라는 단어는 내게 무료여야 비로소 자유란 말로 읽힌다. 그것을 뻔히 아는 내가 그 자유가 왔는데 그것을 묵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창역에서 내려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온양온천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양온천역의 다음이 신창역이니 두 역 사이를 걸은 셈이다. 두 역 사이의 동네를 길을 휘어가며 걸은 시간은 네 시간이 조금 넘었다. 새벽 5시 35분에 첫차를 타고 나간 걸음이 집에 돌아왔을 때 시간은 오후 네 시까지 흘러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아이폰의 건강앱은 오늘 내가 1만6천790보를 걸었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것을 만났다. 복숭아와 배, 호두, 대추, 감이 동네의 여기저기서 익어가고 있었다. 다른 과일은 먹으려면 아직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복숭아는 그 색으로 먹어도 될만큼 많이 익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일이었지만 봄에 왔으면 꽃들을 만났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내가 이곳에선 한번도 보지 못한 도화와 이화의 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신정호라는 유원지로 가는 동안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열차를 봤다. 열차는 벼가 가꾼 초록이 차창밖에 가득한 길을 달려 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 초록이 내게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색으로 보였다. 레드 카펫은 감히 꿈꿀 수도 없는 대대적인 색의 환영이다. 그렇게 엄청난 초록을 차창밖에 깔아 환영을 해주는 곳이 몇이나 되겠나 싶었다. 내게는 그 초록이 자유가 가져다준 선물 같았다.
자유란 근본적으로 보자면 돌아다니는 데 있지 않고 풍경이 건네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시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우리는 일단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너무도 익숙하여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의 싹을 틔워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가져 보기엔 토양이 너무도 척박하다. 무엇인가 풍경이 다를 때 생각은 그 낯섬을 마치 기름진 토양이라도 되는 듯 여기면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각의 싹을 내민다. 익숙할수록 억압은 교묘해서 일상의 풍경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려고 할 때 그 입을 막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화단의 배롱나무꽃이 일찍 나간 오늘의 먼길은 잘 다녀왔냐고 물었다. 논에 가득한 초록이 환영해주고 분홍빛 꽃이 돌아온 걸음을 반겨준 날이었다.

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