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그녀가 시간에서 풀려난 시간입니다.
그녀는 종종 시간에 묶여 있습니다.
아침을 준비하고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아침 시간은 그녀를 묶고 있는 시간입니다.
물론 아침 시간은 좀 억울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녀를 묶어놓은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 아침 시간은 그녀가 그 시간에 묶여있다는 느낌이 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시간은 그녀를 슬쩍 풀어놓습니다.
시간이 그녀를 풀어놓자 그녀는 책을 한권 들고는 마당으로 나갑니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에선 시간에서 풀려난 자유의 느낌이 완연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러고 보면 자유의 호흡입니다.
나는 책을 읽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녀는 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게는 그녀가 선명하고,
그녀에겐 책속의 글자들이 선명합니다.
그녀는 책을 읽고,
나는 오늘 그녀를 읽습니다.
나도 잠시 일에서 풀려나 자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역시 둘다 자유로울 때가 가장 좋습니다.
머리맡에선 넝쿨장미의 잎사귀들이
강한 햇볕을 그 초록빛 푸른 망으로 적당히 걸러줍니다.
그늘은 잿빛 같지만 알고 보면 푸른 색입니다.
그녀가 푸른 그늘 아래서 책을 봅니다.
한손으로 책장을 지긋이 누르고
다른 한손으론 자신의 볼을 받칩니다.
책장은 성질이 급해 다음 장으로 자꾸만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손으로 지긋이 눌러주어야 합니다.
다른 손으로 볼을 받치는 건,
책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부려야 할 멋입니다.
그 멋이 책을 읽는 시간의 자유에 어울립니다.
두 손으로 반듯이 책을 잡고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는 모습은
아무래도 너무 경직되어 보입니다.
그녀는 그런 자세보다 손가락 하나로 볼을 받쳐주는
자유로운 느낌의 멋을 더 사랑합니다.
우리 집 강아지, 대니 녀석이 심심합니다.
녀석은 말티즈종인데, 털만 깎으면 치와와로 변신을 합니다.
녀석이 그녀에게 가서 ‘놀아줘, 잉’하고 매달립니다.
그러면 그녀가 손을 내줍니다.
녀석은 그녀의 손을 핥는게 놀이입니다.
녀석의 놀이는 함께 즐기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같이 책 읽을래?”
역시 대니를 떼어놓는데는
녀석에게 무리가 많은 제안을 내놓는게 최고입니다.
그녀는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심성이 착한 그녀는
마당에서 혼자 놀아야 하는 대니가 좀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심심한 대니를 달래면서
책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건 다리를 쭉뻗고 그곳에 대니를 올려놓는 방법입니다.
어때, 내 다리 편하지? 다리는 과학이야.
과학이 된 편안한 다리를 대니에게 내주고
그녀는 계속 책의 자유를 누립니다.
하지만 대니는 좀 자세가 어정쩡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잠시후 다시 대니를 마당으로 내려놓았습니다.
대니에겐 역시 편하기로 치면 마당이 으뜸가는 과학입니다.
책은 가끔 그녀의 얼굴에 미소를 그려줍니다.
그럼 나도 웃습니다.
그녀가 책에서 어떤 미소를 본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묻지않고 그냥 조용히 웃고 지나갑니다.
책을 볼 때는 역시 다리를 적당히 꼬아야 제 맛입니다.
그것 역시 그렇게 다리를 꼬는게 자유에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느낌을 즐기는 건 그러고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리를 슬쩍 꼬는 것만으로도 그 느낌이 나니까요.
난 사실 그런 의미에서 힘이 바짝 들어간 차렷 자세를 제일 싫어합니다.
책 앞에선 역시 적당히 풀어진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럼 책을 읽는다기 보다 책과 함께 어울리고 뒹구는 양상이 됩니다.
그렇게 책은 함께 어울려 노는게 좋습니다.
그녀의 샌달도 그녀가 책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샌달이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 시간에 그녀의 무게를 덜어내고
마당 한가운데서 한참 동안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도 자유롭고, 또 샌달도 자유롭습니다.
그녀가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 속으로 좀 깊이 빠져들었나 봅니다.
책을 잡은 자세가 그런 느낌을 풍깁니다.
책은 여전히 그녀의 손에 들려있지만
이제 그녀는 책속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녀가 책속으로 들어가 있을 때쯤
나는 사실 그녀 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가끔 그녀가 시간의 굴레에서 풀려났을 때,
한참 동안 그냥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듯 싶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마치 책 속으로 빠져들 듯,
그녀 속으로 들어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 속으로 들어가면
그녀의 속은 한편으론 슬프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슬픔과 안타까움도 그녀의 속에선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25 thoughts on “그녀의 책읽는 시간”
아 ㅡ 아름답네요..
이런 날도 있어야죠, 뭐.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시선이예요.
글의 일부분을 쪼금 가지고 가서 써 먹어두 될까요?
출처는 밝히고요….^^
그럼요.
근데 제가 샌달이라고 쓴 건 슬리퍼라고 하네요.
둘을 잘 구별을 못해서…
그 부분도 쓰시게 되면 고쳐서 쓰세요.
아하~ 저 녀석이 대니이군요.
정말 말티즈처럼 보이지 않는… -_-
바닥에 장미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마당에 장미잎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forest님이 열심히 찍더군요.
아마 구경할 수 있을 듯.
앗! 그 책이 타샤 투더의 ‘타샤의 정원’인가요?
몇 달전에 동원님 블로그를 책으로 낼까 싶어서
참고삼아 사본 책인데..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난 그냥 블로그가 좋아요.
저녁마다 한번씩 얼굴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사진도 마음대로 집어 넣을 수 있고.
우리는 그냥 블로그 시대를 즐겨요.
(책은 따로 원고쓰고 있는데 뭘 그래.)
그래도 승재씨 마음은 항상 고마워.
책을 읽는다는 건 그러고 보면 자유의 호흡,
그리고 다리는 과학, 흣흣.
술술 읽히고, 괜희 턱 괴고 다시 읽었어요.
편안한 그녀님과의 행복한 시간들 벗어놓은 신발마냥 편안히 보았어요.
어디 멀리 남해나 동해로 놀러가서, 특히 섬에 가서, 요렇게 책이나 읽고 사진이나 찍으며 며칠 놀다오면 더 좋을 텐데 말예요. 그런 곳은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삶의 잠언으로 가득차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 하나만 건져도 여행 온 값어치를 다 건져갖고 간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오,
요건 몰랐어요. 책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멋을 부려야 되는 것
(한손으로 볼을 받치는- 당장 실행을 할께요)
다른 것은 거의 비슷해요. 글과 사진 둘다 참 좋아요.
특히 맨 위 사진은 꼭 명화의 한 장면 같아요.
요리저리 한참 보게 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엎드려 읽는 모습도 괜찮고, 턱을 괴고 있는 모습도 괜찮고, 첵으로 얼굴 덮고 자는 모습도 괜찮고…
꽃신님도 좋은 하루되시길.
초록빛 푸른망 참 평안해 보이네요.
이 사진과 글 넘 맘에 들어요.
책에 빠진 그녀, 그 모습에 빠진 그 남자…ㅎㅎ
저두 마당대신 베란다에서 책 읽을까봐요.
강아지 어루만지고 손 핥게 하고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이거 참 부럽습니다.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그럴 날이 빨리 왔으면..
거기다 저 책…. 저, 이 사람 책 보며 너무 행복했거든요.
물어보니 저 책이 hayne님이 선물해준 책이라고 하네요.
어디선 난 책인가 했거든요.
보통은 갖고 있는 걸 서로 잘 아는데 저건 무슨 책이지 했거든요.
제가 그 책을 벌써 후루룩 다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후루룩 읽기는 아깝더라구요.
비록 나는 작은 마당에서 읽고 있지만
머리 속은 타샤의 정원을 그리면서 꼭꼭 씹어서 읽고 있지요.
더구나 그림과 사진이 너무 좋아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구요…
책 선물, 감사합니다.
기대했던(?) 사진 이상입니다..^^
저도 짬짬이 읽으려고 들고다니는 책이 있는데
이번에는 영 속도가… 거의 한달은 들고다닌것 같아요..
아이들 방해도 한몫하구요..^^;;
두분 모두 너무 부럽습니다..
젊었을 때는 누구나 다 여유가 없는 거 같아요.
한 3년 동안 서울을 떠나질 못했던 적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죠.
아이들이 중학교쯤 들어가야 이제 슬슬 두 사람 시간이 나는 것 같아요.
책을 보는 시선과 책에 빠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둘 다 아름답습니다.
이 사진들은 포레스트님의 열무비빔밥에 대한 반격인가요?
아니면, 해저 2만리의 아량을 확인시켜주심 인가요?^^
그거 보기 전에 이건 미리 쓰여져 있었죠.
아무래도 대반격을 준비해야 할 듯.
잠깐 비오더니 오늘은 또 쨍하네요.
아량을 베푸시와요~~~^^
다들 좋아할 것 같은데
한번 망가지슈.
포레스트님 책읽는 모습 참 편안해보여요. 지적이시구.
전 요즘 통 못읽고 있어요.
좀 읽으려면 왜그리 졸리는지..
그럴땐 만화가 최고다 싶어 명성황후 만화를 읽는데 좀 낫긴해요.
지나치게 풍자한게 흠이지만.
책을 읽고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해 보이더라구요.
전에 그 모습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날 카드가 고장이 나서 찍은 사진이 다 날라가 버리는 바람에 결국 이번에 다시 찍었어요.
오늘은 좀 선선한게 또 좋네요.
제가 조금 지적이긴 해요.^^
지자가 지방을 뜻하는 거긴 하지만 말이예요.ㅜ.ㅜ
날 좋으면 돗자리 들고 올림픽공원에 가고 싶어요.
그곳에 자리깔고 누워 책읽을만한 곳 많거든요.
한강변은 차소리가 너무 심해서 책읽기에는 적당하질 않더라구요.
그냥 자전거타고 인라인 타는건 좋지만요.
언젠가 여름휴가때 바닷가에서 책에 빠진 여자를 보았어요.
그 시끄러운 가운데 책에 집중할수있다니 놀랍더군요.^^
옆 텐트 사람들은 간이 의자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더라구요.
참 기분좋은 휴가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