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바다 – 6월 19일 오이도 갯벌에서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 한 분이 갯벌을 나오고 계셨습니다.
잡은 조개를 양은 대야에 담아 끌면서 나옵니다.
멀리서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갯벌은 그 색깔만으로 보면 한낮에도 어둡기만 합니다.
할머니의 걸음은 느리고, 힘겹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할머니의 삶도 그 조도는 어둡게만 보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나, 둘, 셋, 넷…
할머니의 발걸음을 손가락에 꼽아가며 세어봅니다.
세어보면 열 손가락에 담을 수 있을 만큼
할머니는 자주 발걸음을 접습니다.
그렇지만 오다가 서서 돌아보면 그렇게 자주 쉬었는데도
오늘 조개를 캐던 곳은 이제 저만치 아득히 밀려나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를 졸졸 따라붙던 갯벌의 길이
길게 꼬리를 끌며 빛납니다.
갯벌은 온통 어두운 잿빛이어서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이지만
할머니의 길은 그 위에서 마치 빛의 수로처럼 확연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가 또 한번 걸음을 멈추고 쉽니다.
이번에는 멀리 이곳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바다쪽을 바라봅니다.
바다가 나가면 할머니가 갯벌로 나가고
바다가 들어오면 할머니는 갯벌에서 나옵니다.
갯벌은 한번은 바다를 맞고,
또 한번은 할머니를 맞습니다.
갯벌에겐 할머니도 바다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갯벌의 가장자리에 거의 다 왔습니다.
할머니가 마지막 힘을 모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이번에도 할머니의 걸음은
열 손가락을 넘기지 못합니다.
할머니가 또 걸음을 멈추고 쉽니다.
할머니가 할머니의 삶에 묶여있는 느낌이 듭니다.
삶이 할머니의 손을 묶고 뻘안에 가두었다는 느낌이 마구 밀려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 잠시간의 착각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할머니가 끌고 갑니다.
물결을 가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삶을 끌고 갑니다.
할머니의 삶은 다소곳이 할머니를 따라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할머니는 조개를 망사 주머니에 넣고 물에 헹구어 줍니다.
물은 탁해 보이지만 이리저리 몇번 흔들어주면
뻘의 흙이 말끔히 씻겨져 나갑니다.
우리 눈은 갯벌의 물에서 혼탁을 보는데
할머니는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물속에 맑음이 있다는 것을.
시력은 분명 내가 더 좋을진데
할머니의 눈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가 조개를 헹구며 물을 흔들어놓자
그 물결을 타고 햇볕이 반짝반짝 부서집니다.
햇볕이 부서지는 그 한가운데
할머니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는 오늘 망사 주머니로 두 자루의 조개를 캐었습니다.
할머니가 허리춤에 찬 것은 이들 조개를 넣고 등에 짊어지고 갈 베낭입니다.
아마도 할머니에겐 좀 무거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유모차 하나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 할머니는 그걸 유모차라 부르지 않고 구르마라 부릅니다.
그걸 어떻게 부르건 할머니의 유모차엔 그러니까 아이가 타는게 아니라
할머니가 캐온 조개들이 타고갑니다.
그렇지만 유모차가 있는 방파제까지는 베낭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삶은 평생 어리광입니다.
할머니의 등을 빌려 방파제를 올라가니까요.
그렇지만 할머니는 매일 아무 말없이 그 어리광을 받아주며 베낭을 지고 방파제를 오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도시에서 온 낯선 젊은 사람 하나가 “그거 들어드릴까요”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러면 고맙지요”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은 호미 하나 들고 방파제를 올랐습니다.
기분이 좋으셨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할머니가 뻘에서 캐온 모시조개입니다.
조개 중에선 가장 흔한 조개가 모시조개라고 하더군요.
전체적으로 까맣고 가장자리 부분은 하얗습니다.
마치 어둠과 그 끝에 밝아오는 아침의 밝음을 그 껍질에 담고 사는 조개 같습니다.
바로 할머니가 캐온 조개입니다.
잿빛의 갯벌 속에서 빛나던 할머니가 걸어가던 삶의 길,
묶인 듯 했지만 어느새 삶을 끌고 가던 할머니의 삶을
그 모시조개가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시조개 속에서 할머니의 삶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7 thoughts on “할머니의 바다 – 6월 19일 오이도 갯벌에서

    1. 참 어머님 농사밭 고추화분에 물주는거 잊지 않았겠지.
      물 줘야 해. 오늘 너무 더웠어^^

      잘 자~ 낼 만나~
      보구 시퍼~~~^^

      이제는 혼자 어디 가는게 좀 이상한 것 같어.
      늘 같이 다녀서 그런가… 오늘도 보구 싶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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