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나눔의 집 마당에
시와 그림을 함께 담은 시화가 걸렸습니다.
그림은 대부분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시화는 시들과 할머니들의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시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의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건 시와 할머니의 삶이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유월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창작21작가회에서 나눔의 집을 찾아 마련한 문학축전의 자리였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선 지영희 시인의 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가
돌아가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못다 핀 꽃>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시는 “열 일곱 살 때/빨간치마 연두 저고리 회장달아/입는 꿈을 꾸는 처녀”였던 할머니의 옛시절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군화 발에 짓이겨”지던 시절을 함께 앓습니다.
시들은 할머니들의 삶을 담고 때로는 일본에 분노하고,
또 때로는 할머니들의 삶을 외면했던 우리들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었습니다.
행사는 조촐했지만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실있는 행사입니다.
근래에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미의회의 소위원회에서 통과되어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두면서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두고
이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인듯 기뻐했습니다.
축사를 하러 나온 민영 시인의 손에 들린 원고가 눈에 띕니다.
원고지에 한자한자 새긴 요즘은 보기 드문 원고입니다.
노시인은 자신도 일제 시대를 살았지만
80년대에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한 소설을 통해 비로소 이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할머니 문제를 모르고 지나쳤던 것을 미안해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에 한자한자 새겨갖고 나온 그 마음이 소중해 보였습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이기도 한 오세영 시인은
“우리는 모두 여자에게서 태어납니다”란 말로 축사의 첫머리를 떼었습니다.
시인은 우리를 세상에 내놓은 그 여자가 어머니이고,
바로 그 우리의 어머니를 짓밟았다는 점에서
일제의 만행은 용서할 수 없는 가장 흉포한 만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행사에 함께 하고 있던 이옥선 할머니의 발입니다.
온통 파스 투성이입니다.
나이들면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지만
할머니의 고통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질 않습니다.
할머니의 발과 다리에 엉겨붙은 파스는
마치 누군가 밟고 지나간 자리처럼 보입니다.
자꾸만 일제의 군화발이 그 자리에 겹쳐지곤 합니다.
나눔의 집을 찾는 것은
시를 들려드리려는 것보다
사실은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의 얘기를 듣기 위함입니다.
박옥선 할머니가 열여덟에 만주에서 시작된 위안부의 삶을 얘기합니다.
원래는 문학축전 행사였는데
이날 나눔의 집을 찾아준 외국인들이 있어
갑자기 행사가 합동 공연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인인 죠수아가 있었습니다.
죠수아는 미국의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오래 전부터 나눔의 집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그는 한국 음악에 관심이 많고,
할머니들의 삶을 음악에 담고 싶어합니다.
낯이 익어 그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할머니들이
노래 한마디하라고 하자
그는 황해도 민요인 서도소리 한대목을 뽑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이 날은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단체로 찾아왔습니다.
문학축전의 행사 사이에 잠깐의 시간을 할애받아
할머니들께 노래도 들려드리고, 또 인도춤도 선물했습니다.
완전 수동 자막입니다.
원어민 교사들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을 마지막 순서로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노랫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 아리랑의 가사를 영어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다 함께 불렀습니다.
다시 시인들과 할머니들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시인은 일본이 할머니들의 가슴에 못을 박아
못이 되어버린 할머니를 노래합니다.
아픈 노래이지만 노래할 때마다
그건 할머니의 삶에서 아픔을 퍼내어
그 삶을 함께 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옥선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주고 함께 해주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눔의 집은 경기도 퇴촌의 원당리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을에 집들이 여러 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적한 편입니다.
적막이 감싸고 돌면 마치 버려진 곳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입니다.
역시 사람사는 곳은 좀 떠들썩해야 제맛인 듯 싶습니다.
4 thoughts on “시, 할머니의 삶을 담다 – 창작21작가회 나눔의 집 문학축전”
기쁜 소식들을 속속 접하면서 느낀건 일본정부도 곧 할머니들께
정식으로 사죄하지 않을까싶어요.
할머니의 미소가 참 보기좋네요.
실제로 미국에서 사죄 결의안을 낸 의원도 일본계이니까요. 일본 사람들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아요.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렇고… 희망을 가져 봐야죠.
저 목소리도 크고 박수도 우렁차게 잘 치는데~
꼭 한번 찾아가보고싶어요.
행사가 곧잘 있다기보단,
늘 동원님이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시는거겠죠?
저도 자주는 못가요.
사는게 만만찮다 보니.
시간되면 사람들이 한번쯤 들러보는게 좋을 것 같고…
요즘은 특히 언론을 타면서 외국인들이 부쩍 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