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은 멀다.
아마도 남쪽에선 북쪽이 멀겠지.
어쨌거나 나는 북쪽에 살고 있어 남쪽으로는 자주 걸음을 하지 못했다.
손에 꼽아보면, 남쪽으로 간 것은
제주, 부산, 거제, 담양, 순천, 여수, 완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지명을 꼽아보면 제법 많은 것 같지만
열손가락으로 모자랄 빈번한 속초행을 생각하면
남쪽은 거의 한번씩이 고작이었으며,
그것도 많은 시간을 그곳에 머물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이나 제주, 완도에 갔을 때의 기억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그 곳을 찾고 싶다는 욕망이
언제나 변함없이 고개를 들 정도로 아주 좋았다.
아쉬운 것은 그때 그 여행을 사진에 담아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밤열차를 타고 내려간 순천은
하루 종일 순천만을 쏘다니며
아직 새벽이 동트기 전의 어둠부터 그날 저녁의 지는 해까지
온전히 하루를 모두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오늘은 그 하루 가운데서 해가 완연히 떠오르고 난 뒤,
밀려났던 바닷물이 다시 밀려든 순천만의 낮시간과
태양이 꼬리를 끌며 하루를 마감하던 저녁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뻘의 물길이 비틀거리며 바다로 간다.
해가 잠깐 그 길로 몸을 눕혔다.
그 순간 길의 중심이 잡혔다.
우리는 모두 비틀거리다가도 해가 뜨면 중심을 잡는다.
뻘의 물길은 바다로 가지만
멀리선 바닷물이 뻘로 밀려든다.
그러나 밀려오는 것은 바닷물만이 아니다.
매일 이곳에선 하루를 여는 아침 햇볕이 우리 앞으로 파도처럼 밀려든다.
아마도 그물이지 않을까 싶다.
바람은 잡을 수 없지만
그러나 물이 밀려들면 이곳의 그물은
바람을 쫓아 물결을 따라온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이곳의 그물에게 있어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사실은 물고기가 쫓아온 바람의 꿈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바람은 잡을 수 없어도
바람의 꿈은 잡을 수 있다.
오늘도 그물은 뻘밭에서 바람의 꿈을 꿈꾼다.
어부가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는 그러므로
그냥 생선이 아니라 바람의 꿈이다.
녀석은 배째라고 나왔다
하늘에선 빛이 내려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선 섬과 산이 솟아올랐다.
턱밑으론 서서히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내려오고 솟아오르고 밀려들며 순천만이 가득찬다.
바닷물이 그물의 허리쯤을 채웠을 때,
갑자기 그때부터 그물이 바닷물을 뭍으로
훠이훠이 몰아가고 있었다.
뻘밭에 물이 차면 밭은 바다가 된다.
바다가 물러나면 우리는 다시 잠깐 밭을 돌려받는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순천만의 뻘은 매일 바다가 이곳의 사람들에게 주는 밭이다.
바다가 다시 온 것은 그러므로 오늘도 어김없이 또 그 밭을 주기 위해서이다.
갈대숲 사이로 물의 길이 있고,
그 물의 길은 철새들의 길이기도 하다.
새들에게 물의 길은 풍요의 길이다.
그 길에서 새들은 고픈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그러나 새들에겐 그 길을 버리고 가야하는 또다른 길이 있다.
그건 바로 하늘의 길이다.
우리에겐 종종 그렇게 행복하고 맛난 포만의 길을 버리고 가야하는 또다른 길이 있다.
아무리 맛난 것이 유혹을 해도
새가 하늘의 길을 버릴 순 없다.
하늘의 길은 새의 운명이다.
누구나 그런 운명적인 길이 있다.
황새가 그 운명의 길을 가고 있다.
황새가 날아간 그 하늘의 길을 계속 따라가면
어떤 세상이 있는 것일까.
화려하고 빛나는 세상?
글쎄.
종종 그 화려하고 빛나는 세상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아침이나 저녁과 같이
바로 우리 곁의 오늘일 때가 있다.
하늘의 빛이 오늘따라 부채살처럼 우리의 지상으로 넓고 환하게 번졌다.
해를 따라 하늘의 길을 간 황새도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랴.
나는 황새가 나는 하늘의 길을 올려보며
하늘의 저편을 궁금해 했지만
황새는 그 길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로 이어져 있음을 잘알고 있다.
저녁해도 길의 종착역이 이곳임을 잘알고 있다.
매번 이곳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만 보아도 그 점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길은 가는 듯 하면서
사실은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런 점에서 섬은 길의 시작이자 끝이다.
매일 물이 그곳에서 길을 시작하여 바다로 나가고,
또 한편으로 물의 길이 그곳으로 모여든다.
섬은 하루 종일 제 자리를 지키며 길을 나서는 법이 없으나
섬에서 길이 잉태되고,
섬에서 길이 거두어진다.
태양이 하루를 마무리하며
손끝을 길게 뻗었다.
나는 태양을 따라 길을 가려했으나
태양의 손끝은 오늘의 나를 가리키며
내가 가야할 길은 내게로 되돌려 주었다.
나는 그 손끝에서 가던 발길을 멈추었다.
그래 난 태양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 테다.
항상 내가 있는 오늘의 이 자리에서
내 길을 갈 테다.
태양이 길게 꼬리를 끌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3 thoughts on “순천만 풍경 세번째”
맘 어수선 했는데요…일몰이 너무 곱네요
저도 떠날때 저라 고울수만 있다면…
늘어지려는 맘 추스리고 갑니다
주말 잘 지내세요^^
역시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멀리 떠나야 하는 듯.
이번 주말에 많은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여의치 않네요.
저도 김동원님처럼 행복해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사진 너무 잘 구경하고 갑니다. (_ _)
찾아주신 거 고마워요.
이번 토, 일요일날 여주서 사진찍고, 다음 주 주중에 어디 멀리 떠나볼 생각이라서 좋은 사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말에 눈오면 백담사 쪽에서 설악산 넘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예술이 따로 없네요. 너무 멋져요.
그중 첫번째 사진은 꺄악~! 너무 맘에 들어요. 물반사로 사진안에 들어온 해라니… 물길느낌도 좋고…
한번쯤 작업할때 꼬옥 써보고 싶어지네요. 어울리는 멋진카피와 함께…
다른사진들도 감동이예요. 날고 있는 새사진과 글도 너무 좋아요. ^0^
오늘 내일 원고 마감하고 사진 찍으러 가고 싶어요.
어쨌거나 토요일, 일요일은 여주쯤으로 사진찍으러 갈 계획이예요.
날씨도 풀려서 사진찍기 딱 좋을거 같네요.
멋진 사진 기대할께요~
이틀 동안 찍을 거니까 좋은 사진 나올거 같아요.
아마도 엄청나게 찍겠죠.
가끔 카메라를 무슨 비디오 캠코더로 오인하고 찍는다는 생각이 다들어요.
어쨌거나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주말에 이틀 동안 사진찍으려던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네요.
계획대로 씌어지는 글은 글이 아니라고 하더니만 역시…
어쩌겠어요, 이게 내 일이니…
안타깝네요~ 후움…
힘드네요.
어쨌거나 지금 탈고해서 넘겼어요.
허수경이 좋아하고, 시도 좋은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시집 전체에 대해 무엇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늘 부담이 되네요.
끝냈으니 이제 속편하게 다른 글이나 한편 쓰던가 해야겠어요.
우와~~너무도 아름다운 사진들이네요.
저렇게 촬영하려면 무지 오랜시간 밖에서 있어야겠죠?
시간마다 빛이 다르니 사진의 느낌도 저마다 다르고.
음..정말 대단하세요.^^
마라토너는 달릴 때 행복하고, 등산가는 산을 오를 때 행복하고, 아마도, 나는 절룩거릴 정도로 다리가 아파도 풍경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가 행복한 거 같아요. 이 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걸으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