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토요일날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영월서 네 명이 올라오고,
인천에서 두 명이 합류했으며,
서울에서 보탠 인원은 두 명이었다.
그리고 서산에서도 한 명이 시간을 내주었다.
모두 아홉 명이었다.
한 명은 일이 바빠 끝내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이렇게 서울의 우리집 근처에서 모인게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이다.
나는 그다지 사람만나는 것을 즐기는 편이 못된다.
그래서 먼저 나서서 사람만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생각을 떠올리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이번에 만난 고향 친구들이다.
나는 이 모임이 왜 종종 내 마음을 끄는 것일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내게 있어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은 원초적 만남이다.
대개의 만남은 현재형인데
이 만남은 만나면 항상 과거형이 된다.
우리들은 모두 강원도 영월의 문곡리에서 태어나
그곳의 개울에서 발가벗고 함께 놀며 자랐다.
나에게 있어 살아오면서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그 어떤 만남도 순서로 따져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서지 못한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은 원초적 만남이다.
이 원초적 만남의 이상한 점은
모두가 현재형으로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있는데도
만나기만 하면
그 시절의 원초적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점은 이번에 만났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임은 저녁 7시에 시작되었으며
대충 모임을 마무리하여
친구들을 근처의 여관에 들여보내고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의 시간은 밤 1시30분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때까지 나는 시간을 되돌려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가끔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 있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집 근처에 있는 <마루>라는 식당에서 만났다.
겉으로 보기엔 술먹고 얘기나누는 여느 모임과 달라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이 모임은 세상의 그 어느 모임과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아주 독특한 모임이다.
이 모임은 원초적 만남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어서
이 모임의 당사자들만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는 지방말을 가리켜 사투리라고 하여
각 지방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음을 알고 있다.
20여년을 시골에서 함께 자라며 성장하게 되면
그들은 사투리에서 또 나아가
또다시 그들만의 언어를 갖게 된다.
원초적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들은 바로 그 우리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건 우리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면서 가지게 되었던
우리들만의 원초적 언어이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사투리를,
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누리는
그 말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듯이
우리들도 우리들의 언어를 쓰면서 누리는
우리들만의 독특한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말을 할 때 나의 원초적 언어를 쓰는 만남,
아울러 그 원초적 언어가 자유롭게 소통되는 유일한 만남,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만남에 끌리는 이유이며,
이 만남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최동열.
영월에서 살고 있다.
고향에선 장터거리라 불리는 곳에서 살았었다.
이름만으로 보면 그곳이 장터가 있던 자리로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 시골에 장터가 있을리가 없다.
전해들은 얘기에 따르면
우리 고향 문곡리가 북면의 중심지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에 그곳에 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북면의 중심지가 고향으로부터 5리 정도 떨어진
마차로 이전하고 난 뒤의 세대이다.
김영재.
유일하게 고향 문곡에서 살고 있는 친구이다.
우리들 중 가장 효심이 깊다.
엄기탁.
영월에서 살고 있다.
내가 가끔 불현듯 마음이 동하여
사진찍으러 고향에 내려갈 때면
그의 차에 동승하여 신세를 지곤 한다.
이기훈.
충남 태안에서 살고 있다.
나는 대학 들어가기 전에
뚝섬에 있던 그의 자취방에서
두 달이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권영준.
인천에서 살고 있다.
나보다 생일이 하루 빠르다.
엄도열.
영월에서 살고 있다.
나보다 생일이 하루 늦다.
그때 우리 고향에선 4일 동안
네 집에서 아들 넷이 계속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네 명 중 한 명은 이사를 가고 셋이 고향 친구가 되었다.
엄도열.
서울에서 산다.
그의 바로 위 누이 순이가 나와 동창이다.
엄경호.
인천에서 산다.
그의 누이가 금순이이며,
나와 동창이다.
순이와 금순이,
그 정겨운 이름들을 모두 한번 다시 보고 싶다.
11 thoughts on “고향 친구들”
정말 우연히 입장 했습니다. 지금 아침 06:00경 어젯밤 당직을 하고 아침에 우연히 네이버에 엄도열이라고 검색을 하니 본 란이 나오네요
이런 내 사진까지 진작좀 알려 주시지 …
모쪼록 돈을 잘 버시고 계시는지
좋은 글과 오랜 전에 본 듯한 얼굴들을 보니 마음은 벌써 개간이에 가있네요
울병뜰 사시는분, 장터거리 사시는 분, 음달말 사시는분, 쟁개미 등 모두 있네요
모두들 잘있겠지요. 왜 작년 연말에 찍은 사진은 올리는 않나요
노래방에서의 비화
죽을 분 몇분 계신 줄 아는데
좀 올리시지요(나는 안됩니다.)
고향 벗들을 위한 수고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까이 살면서도 어머님에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두 내외께서 잘 보필하시면서 항상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엄도열
아니, 이런 누옥을 방문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잘 있지요.
아드님 서울대 합격했다는 소식 기탁이에게서 들었어요. 축하, 축하.
컴퓨터를 말아먹어서 새로 까는 바람에 예전처럼 사진 올리는 건 한참 걸릴 듯 합니다.
항상 건강하길 빌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 고향은 치악산이 있는 원주입니다. 서산에서 직장생활을 10여 년을 했고요, 집은 인천입니다. 우연치고는 겹치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어라연은 친구 외가댁이 있어 84년도 여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아서 빨가벗고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네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꾸미지 않아 좋습니다. 글과 사진을 보니 참 좋습니다.
치악산에는 눈오는 날 한번 간 적이 있었죠.
고향 친구들은 1년에 한번 정도 만나요.
보통 고향으로 내려갔었는데 요즘은 고향에서 모여 서울로 올라와요.
여기에 절반, 고향에 절반이 살고 있거든요.
탁이다 !
지금 블로그에 들어왔네-
친구들 모습이 위의 사진처럼 찍힌거이 사실인가–
혹시 요즘 유행한다는 뽀(?)샵 아닌가
쇠주 한잔에 홍안백발은 아니더라도 그 모습들이
너무 자유스럽고 편안하구만-
하옇든 고맙다-
통통이께서 주시는 따뜻한 차한잔이 약간 아쉽기는 해도-
올 한해도 어머니를 비롯해 가내 모두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게나–다음에 또^^^^^—
뽀샵 처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네.
조금 한가해지면 사진을 뽑아서 보내줄께.
어느 날 예고없이 생각이 고개를 들면 고향에 한번 갈테니
그때 다시 얼굴이나 보자꾸나.
희긋희긋 사이로 보이는 우정이 참 좋아 보입니다.
갑자기 TV 프로그램이 생각나네요.
“친구야” 하고 손을 내밀 때 “반갑다 친구야”로 껴안는 모습과 뒷풀이 모습…
마치 저희 모임을 보신 듯한 실감나는 말씀이네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커피 한 잔도 대접못해서 미안해요.
다음엔 시간 조절 잘 해서 맛있는 차 드릴게요.
사진으로 보니 예전과 다를바없이 모두 멋있네요^^
모두 건강하시기를…
————
고향을 지키고 있는 당신 친구들을 보니 정말 든든하오.
부럽소^^
통통이는 내 집사람이다.
친구들은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