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따라 걷기

한강은 차로 건너다니며 볼 때가 많지만
종종 자전거를 타고 나가 보기도 한다.
또 때로는 한강을 지하로 지나가기도 한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5호선은
광나루역과 천호역 사이를
철교가 아니라 한강물 아래쪽으로 터널을 파 오가고 있다.
그리고 걸어서 한강에 나갈 때도 있다.
보통 걸을 때는 암사동의 한강변에서 시작하여
잠실 쯤에서 걸음을 접는다.
청담대교 바로 아래쪽으로 청담역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고,
보통은 그 통로 나가기 전에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낸 뒤,
청담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9월 3일 월요일엔 행선지를 좀 달리하여 그녀와 함께 한강변을 걸었다.
시작은 무역센터 부근에서 하고, 동작대교까지 걸어갔다.
지나친 한강다리를 세어보니 여덟 개이다.
그중 두 개, 그러니까 반포대교와 잠수교는 위아래로 포개져 있으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일곱 개를 지나친 셈이다.

구글 어스 캡쳐 화면.
표시된 선이 걸어간 부분.
Photo by Kim Dong Won

일단 집을 나서 길동까지 걸어갔다.
우리 동네의 어느 연립 화단에서 대추가 익어가고 있다.
대추나무와 관련하여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외갓집 들어가는 입구에 늘어서 있던 대추나무가 가장 기억에 선명하다.
몇해전 내려갔더니 그 나무들은 거의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시골 살 때, 내가 심었던 나무 중에
나중에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랐던 나무도 또 대추나무였다.
복숭아 나무도 심은 적이 있었는데
귀신쫓는 나무라 제사 때 조상들이 못온다고 결국 파서 없애 버렸다.
지금 사는 집의 마당에도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병이 들어 그 자리를 배나무에게 물려주고,
지금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우리 딸은 어렸을 때 대추를 아주 좋아 했었다.
내겐 나무 중에서 가장 추억이 많은 나무가 대추나무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길동 시장을 지나친 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이 아주 좋다.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과 전화선이 어지럽지만
구름과 하늘은 절대로 그 선들에 걸리는 법이 없다.
선들이 아주 가늘어 그 무엇도 걸릴 거 같지 않은데
내 시선은 자꾸만 그 선에 걸린다.
우리의 시선은 아주 민감해서 가는 선에도 자주 걸리곤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길동에서 볼일보고,
버스 타고 삼성동 가서 또 볼일보고,
그 다음에 점심먹고,
드디어 탄천쪽으로 나가 한강으로 내려갔다.
하늘이 한가득이었다.
아마도 흐린 하늘이었다면
푸른 하늘만한 충만함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도 만나고 있노라면
명랑하고 쾌활하고 씩씩한 모습 만으로도
푸른 하늘처럼 우리들 마음에 가득 차는 사람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그래서 젊음도 푸르다고 하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오호, 하늘이 다리와 다리 사이에 크게 느낌표를 찍었다.
뭔가 크게 느낀게 있었나 보다.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온통 칡이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변을 뒤덮고 있었다.
그렇지만 칙칙하지는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늘 구름은 무슨 구름이지?
생긴 걸로 봐선 새털 구름과 뭉게 구름 같다.
새털 구름이 더 잘 나를 것 같지만
하늘을 나는 건 새털 구름이나 뭉게 구름이나 비슷비슷해 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압구정 나가는 통로에서 본 스프레이 벽화.
뭉크의 <외침>을 생각나게 하지만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강건너편엔 아파트들이 떠 있고,
강에는 보트들이 떠 있다.
하늘이 좋은 날엔 모두가 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자꾸 찍지마.
찍을 때마다 자꾸 네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야.
이러다 나는 없어지고,
네 속의 나만 남는 거 아냐.
(너무 닭살 모드성 발언인가?)

Photo by Kim Dong Won

화살표는 내 쪽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녀는 화살표는 아랑곳 않고
몸을 90도로 꺾어 땅에 코를 박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찍는다.
사실 화살표는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정도는
그 길에 묶어두고 항상 한쪽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것도 아니고,
손에 카메라를 든 그녀를 화살표의 방향에 묶어두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저러다 보면 화살표의 맥이 풀리고,
그러다보면 그 존재마저도 희미해지고 말 것이다.
가끔 화살표를 무시하고 가는 재미가
화살표를 따라가는 안전함보다 더 크다.

Photo by Kim Dong Won

물싸리.
설명에는 나무라고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나무같지는 않고 그냥 풀같다.
고산지대 나무라는데 물가로 내려와서 고생이다.
아니, 모르지. 그게 또 호강일지도.
한강변엔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갖가지 꽃을 이름까지 안내받아 가며 만날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야, 나비다.
흔한 것도 소리지르면서 바라보면
갑자기 새롭고 볼만한 것이 된다.
야, 나비다, 것도 색이 약간 바랜 노랑나비다.

Photo by Kim Dong Won

강변으로만 가다가 동작대교에 이르러 다리 위로 올라갔다.
자전거 탄 두 사람이 달려간다.
두 사람이 자전거 핸들을 약간 한쪽으로 틀자
그만큼 길이 한쪽으로 휘어졌다.
그들이 핸들을 펴면 길이 곧장 펴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다행히 둘중 어느 누구도 핸들을 펴지 않았다.
덕분에 갑자기 길이 펴지는 당혹스런 일은 일어나질 않았다.
어디까지 가는지는 몰라도
길은 그들의 핸들을 따라 휘어지거나 펴지면서
계속 펼쳐질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멀리 남산 타워에 불이 들어온다.
한자리를 지키고 선 불빛과 달리
차와 지하철은 불빛을 끌며 달린다.
특히 불을 켜고 달리는 것들은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 카메라 앞에 서면
그때부터는 불을 더욱 길게 끌면서 달린다.

Photo by Kim Dong Won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저녁은 참 빛이 곱다.
그래서인지 짧지만 황홀하다.
하루는 길고 지루하게 흐르다 저녁 때 절정에 오른다.

Photo by Kim Dong Won

동작역 화장실 앞.
<영원의 눈동자>라는 작품.
태극기 한가운데의 태극 문양이
하늘과 땅이나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건 알고 있는데,
여기선 누군가 그걸 눈동자 속에, 그것도 영원히 담고 싶었군.
어쨌거나 동원이 눈동자는 아닌게 분명하군.
내 눈동자는 항상 이것저것 엿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담으려 하는데,
이 눈동자는 평생을 영원히 우리 나라만 담고 살려고 하고 있으니.
그래도 여기가 동작동 국립묘지가 있는 곳이니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눈동자가 딱 하나만 그래서 다행이다.
다른 눈동자 하나는 그래도 세상을 다양하게 담으라고 풀어준 모양이다.

14 thoughts on “한강따라 걷기

  1. 핑백: forestory
  2. 걷는것만으로도 힘든길인데 아름다운사진까지…,
    아름다운체력과 강인한영혼??
    가을로접어들어 날씨도좋으니 언제한번같이 걸어요.
    간만에 흔적남김니다 죄송^^

  3. 안녕하세요. 어제 인사드린 노가리입니다.
    장황하게 이것 저것 여쭤봤는데, 귀찮진 않으셨는지…
    저도 잠원동 사무실에 자전거를 갖다놓긴 했습니다.
    언제 한 번 한강변 바이크 출사를 도모해볼까요?

  4. 이 날이 한강변을 걷고 또 걸어 후에 문선양을 만난 날이련지요?
    그 날, 문선양과 통화하며 들은 바로는
    forest님은 많이 걸어 다리가 너무나도 아프다며
    ‘솔직’하게 말씀하고는 집으로 들어가시고
    동원님은 많이 걸어도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며
    자전거 타며 큰길까지 바래다주셨다구요. (ㅅㅅ)
    밤 늦게 자전거 타고 간다고 걱정하신 두분의 배려심에
    전화선을 타고 제게도 감동이 밀려왔답니다.

    1. 저희 아빠도 간밤에 상집에 가셨다가
      새벽에 돌아오셨어요. 밤을 꼴딱 세우는 무한체력! 놀랍습니다.

      그리고 저 ‘솔직’한 거 완전 좋아라해요.
      혹여 언짢아지시면 아니되시는데,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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