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사람들이 살기엔 편할지 몰라도
자연이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곳입니다.
뿌리 내릴 땅을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사람들이 떠나고 발길이 뜸해지자
우리가 밟고 다녔던 길을 모두 풀로 뒤덮어
그곳이 원래 자신의 자리였음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내 고향을 생각하면
잠시만 틈을 비워도 시골은 어디나 자연의 자리입니다.
서울은 그 반대죠.
아스팔트와 콘트리트가 뒤덮은 서울에선
자연의 자리가 흔치 않습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닙니다.
2층 베란다의 화분과 아래층의 작은 화단이
옹색하게나마 마련되어 있는 자연의 자리랄까요.
그곳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부분 낯이 익습니다.
거의 몇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죠.
올해는 2층 화분에서 봉숭아가 무성했고,
고추와 토마토도 한계절을 살았습니다.
올해는 아래층의 화단에 꽃을 몇가지 심었지만 거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전부터 있었던 비비추만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 그래도 배나무 아래 자리한 달맞이꽃은 아직 잘살고 있습니다.
띄엄띄엄 계속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햇볕이 잘드는 자리를 골라준 덕택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2층 화분 하나에 낯모르는 꽃이 하나 피었습니다.
토마토 두 알을 따 먹었던 그 화분에서
토마토를 거두고 난 뒤,
어느 날 그 꽃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어머니가 심은 꽃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모르는 꽃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바람에 실려온 꽃인가 보다고 했습니다.
오호, 지나가다 들린 우리 집의 방문객인 셈입니다.
꽃은 하얀 색이었지만
그 노란 꽃술이 더욱 눈길을 끌어
저에겐 자꾸 노란 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꽃의 자리는
모두 작은 열매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심하게 비가 오던 날,
그 가는 허리로 열매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었던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눕히고 말았는데
비가 그치자 예전에 토마토가 의지했던 가는 철사 지주를 붙잡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열매는 가까이 들여다보면 고깔모자를 쓰고 바람과 놀고 있곤 합니다.
이 이름모를 방문객을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나비 한마리가 놀러와 고추잎에 앉습니다.
그러고 보니 매년봄 나비의 방문도
이 집의 즐거움 중 하나였던게 기억납니다.
그래도 나비는 많이 낯이 익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말씀대로 바람에 실려 날아가다
저희 집에서 걸음을 쉬었겠지요.
몇년 동안 함께 산 친숙한 얼굴들이 있긴 하지만
이 낯모르는 방문객이 주는 즐거움은 그와는 좀 남다릅니다.
그래서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됩니다.
열매는 까맣게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을 보면
내년 이맘 때쯤,
이 뜻밖의 방문객이 우리 집 화분에서 또 얼굴을 내밀며
“나 아주 여기서 눌러 앉았수”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낯모르는 방문객이 아예 식구가 된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까지 이 방문객의 이름이나 챙겨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골살 때 작고 하찮았던 것들이
서울살면서 크고 소중해지고 있습니다.
크고 소중한 것이 지천인 그곳으로 내려갔다 오고 싶습니다.
*ohngsle님 덕분에 곧바로 이름을 알게 되었네요.
“까마중”이 정식 명칭이랍니다.
가마중, 까마종이, 깜뚜라지라고 불리고,
어떤 사람은 눈알을 닮았다고 해서 “땡깔”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군요.
15 thoughts on “이름 모를 꽃의 방문”
아, 귀여워요! 땡깔 ㅋㅋ
앙증맞은 저 모습, 지켜보는 내내 행복했겠습니다.
눈여겨 본 동원님네 식구분들의 눈썰미가 좋습니다요.
못보던 꽃이라 신기했죠.
토마토는 알고 있는 것인데도 신기했구요.
우와~ 정말 예쁘게 피었어요. 🙂
저희집엔 생명체가 자라기 힘들어서… 일전에 도마 말린다고 아무 것도 없는 화분 위에 올려두었더니만 며칠 지나고 보니 왠 버섯이 자라고 있더라고요. 😀
2층 화분에서 키우던 봉숭아의 씨가 아래층으로 떨어지면서 우리집 대문 기둥 아래쪽의 틈에서도 싹을 틔웠더라구요. forest님이 참 저럴 때보면 생명이 경이롭기 이를데 없다고 하더군요.
저도 어렸을때 저 열매 먹어본적있어요.
맛은 달큰하면서도 풀냄새나는.^^
그래도 심심할 때 따먹었는데.
우연히 날아와 저렇게 열매까지 맺은거보면 참 신기하셨겠어요.^^
전 요즘 돌아다니다가 분꽃의 색이 참 여러가지란걸 발견했어요.
어느 집은 아주 화려한 체리핑크, 어느 집 것은 예쁜 노랑, 또 어느 집 것은 핑크랑 흰색이 섞인..^^
씨를 받아서 엄마 갖다드려야지 생각했답니다.
친정 앞마당에 뿌리면 예쁠 것같아요.^^
아주 많이 신기했어요.
처음에 forest님은 어머니가 심은 인삼이 아닐까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언제 어머니께서 인삼씨앗을 얻어온 적이 있는 거 같다며 말예요. 저는 인삼도 모르고 하니 그런가 했었죠.
이렇게 다들 아시니 마치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느낌도 들어요.
아~ 어렸을 때 많이 봤던 열매예요.
사진을 보면서 저게 혹시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었던가? 했는데,
맞아요! 먹었었어요.
잊혀질 듯 말 듯한 어린시절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설레네요.^^
저는 강원도 살았는데도 이번에 처음 봤어요.
이제 확실하게 낯을 익히고 맛까지 익힐 수 있게 되었네요.
까마중이네요.^^
어려서 고구마밭에 흔했는데 할머니가 뽑지 않고 두었다가
까맣게 익었을때 따서 주시곤 했어요.
드셔는 보셨나요? 약간 토마토맛이 난답니다.^^
앗, 그럼 먹을 수 있는 거예요?
토마토 두 알 따먹은 자리에서 난 건데… 또 먹을 수 있는게 그 자리로 찾아왔네요.
지금도 있는데 내일은 한번 따먹어 봐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알려주셔서.
어제 댓글달고 찾아보니 약간의 독성이 있다고 하네요.
전혀 그런건 모르고 먹었는데, 아마 몇알정도는 괜찮을거예요.
저 아래 인삼이 아닐까 했다는 말씀에 한참 웃다가 갑니다.^^
한움큼씩 먹었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뭘.
저도 완전 시골 출신인데 왜 이걸 본 기억이 없을까요.
밭일은 돕지 않으시고 강으로 놀러만 다니셨나 봅니다.ㅋㅋ
강보다 산을 더 좋아했어요.
애들이 보통은 시골 아이들도 산에 혼자 가는 건 무서워했는데 저는 혼자 뒷산에 올라가서 하루 종일 놀다가 오기도 했고, 앞산도 그 너머가 궁금해서 혼자 하염없이 가봤던 적도 있어요.
뒷산에는 산에 올라가야 보이는 분지형의 움푹한 밭이 하나 있었는데 겨울에 눈이 오면 눈이 죄다 그곳으로 몰려서 허리까지 푹푹 빠지곤 했었죠.
또 비올 때만 물이 폭포처럼 내려오는 곳이 한곳 있었는데 그 물이 어디서 내려오나 궁금해서 산꼭대기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죠. 바위의 구멍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헷갈려요.
그때를 생각하니 아련해 지네요.
저 살던 곳은 눈이 워낙 많이 와서
초등학교 1학년 쯤에는 허리까지 온적도 있었어요.
덕분에 겨울방학이 일주일 연기되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니 꿈이었나 싶기도 하네요.
행복하고 따뜻한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