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의 숲속산새마을(고양2리)이란 곳에서
숲을 거닐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밤송이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밤송이는 속이 텅빈 가슴을 보란 듯 열어놓고
따뜻한 봄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밤송이는 바삭바삭한 낙엽들 위에 코를 박고 엎어져 있었습니다.
엎어진 밤송이의 등에선 무성한 가시만 보였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그 등에 업히고 싶어 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밤송이의 사랑이었다면
밤송이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가시로 덮인 따가운 등을 갖고 태어난 밤송이에게
그 사랑은 밤송이가 줄 수 없는 사랑이었을 테니까요.
줄 수 없는 사랑만큼 슬픈 것도 없습니다.
밤송이에게 사랑은 항상 안아주는 사랑입니다.
안아줄 때 밤송이의 품은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흔히들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한편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 사랑의 현실은
항상 주고 싶은 욕망보다
받고 싶은 욕망이 훨씬 더 큰,
현저한 불균형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사랑이 전혀 양적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주는 자는 언제나 주기만 해야 하고,
받는 자는 언제나 받으려고만 하고,
그러다 주는 자가 주던 사랑에서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하중을 느끼고,
받는 자가 받는 기쁨이 아니라 덜찬 사랑에 불만을 쌓아가고,
결국 그 하중과 불만이 선을 넘기면 그것이 싸움이 되고,
또 그 싸움이 심해지면 헤어지고 하는 것이
우리들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밤송이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고 나니
내가 아무리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사랑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겠지요.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밤송이의 등을 요구하지 않고
밤송이의 품안에서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그녀의 품안에 들고 싶습니다.
설마 그녀가 가슴에 가시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녀의 가슴을 버리고
그녀의 등에 기대어 잠들겠습니다.
10 thoughts on “밤송이 사랑”
aki님과 주고 받은 대화는 용서할 수 있는데
나의 비리^^를 폭로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블로그도 언론이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
댓글 보고 너무 웃겼어요.^^
통통이님이 보시면 가만 안있으실텐데.^^
전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날 남편 핸폰에
“오빠~ 크리스 마스 잘 보내시고 시간내서
꼭 놀러와요” 어쩌구 보낸 메세지때문에 그해
크리스마스는 암흑이었답니다.
뭐 말로는 노래방 여자 도우미한테 명함을 주었다는데
아니 관심이 있으니까 명함을 주었을거 아니냐,아무 생각없는데 주겠냐면서 무지 따졌던 기억이..^^
보통 술집 여자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응하는 경우가 없는데
그날 그 여자애는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V자를 그려주더라구요.
참, 신기한 애다 싶었죠.
그 여자애 사진을 그녀와 같이 보았는 걸요.
찍을 때는 몰랐는데
찍고 나서 보니까 “눈이 너무 슬프더라” 했더니
그런데 가더라도 “말조심해서 그런 여자애들에게 상처주지마”라고 하던걸요.
그리고 그녀에게도 술만먹으면 전화를 거는 남자 녀석이 있는 데요, 뭘.
나도 아는 녀석이죠.
어떤 때는 그 녀석 전화가 오면 저한테 바꾸어 주기도 하죠.
그럼 그 녀석이 무척 당황합니다.
우린 그럼 전화 끊은 뒤에 낄낄대고 웃고…
사랑에 대해 얘기할 때, 떠오르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오늘따라 무척 부럽네요.
위에 엘리타쥬님이 쓰신 것처럼 봄이라서 그런가봐요. 흐르륵~
저는 떠오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그게 좀…
사랑의 마음은 너무 넓어서 한 사람만 담아둔다는 것은 영 그런 것 같고.
지난 번에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애도 가끔 떠오르는 걸요.
ㅋㅋㅋ
저도 사실 그럴 때가 있긴해요.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 상상력!!
상상 속에선 누구나 내 연인이 될 수 있어요~
연인이 없으면 글도 쓰여지지 않아요~
사실 나의 그녀는 실제로는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요~
이해와 포용, 그리고 관심과 배려가 진정한 사랑을 만들어 가는 거겠죠?
저도 어서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할텐데 솔로는 외롭습니다. ^-^
이 잔인한 봄날, 멋진 날씨~ 흑흑
인터넷 덕분에 좋은 사람 만날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원이란 시인의 <야후의 강물에 천개의 달이 뜬다>라는 시집도 있잖아요.
예전에는 달 하나가 천개의 강에 비추지만
지금은 달을 하나 검색하면 천개의 달이 검색 결과에 나타나잖아요.
그러니 엘리타쥬님의 그 님이 모니터 화면의 어디엔가 무슨무슨 이름의 블로그로 떠있을지도…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천 명이나…
좌우당간 올해는 꼭 인연의 기회가 생기길 빌어마지 않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