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모두 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1월 19일 우리집에서


은행잎이 모두 졌습니다.
아는 사람 집에 가서 놀다
열두시 넘어 밤늦게 한시쯤 집에 돌아오는데
담밑에 벌써 잎들이 수북히 쌓여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음 날 일어나니
은행나무는 잎들을 모두 떨구고
가지 사이를 모두 휑하니 비워놓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올려다 보며 한마디합니다.
“아니, 추우면 옷을 더 두껍게 입어야지…
추워 죽겠는데 왜 옷을 벗고 야단이냐.”
이 집에 이사와서 은행잎이 이렇게 갑자기 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떨어진 잎들을 살펴보니
잎마다 초록빛이 반넘게 남아 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 추위는
노란빛을 칠해가던 우리집 은행나무의 가을을
순식간에 빈가지의 겨울로 넘겨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잎은 나무들의 옷이 아닌가 봅니다.
줏어들은 얘기로는 나뭇잎은
일종의 일하는 도구라고 들었습니다.
가령 내가 일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도구가 컴퓨터라고 하면
나무가 일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잎이라더군요.
그 잎에서 빛과 물을 버무려 양식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광합성이라고 한다더군요.
하지만 추우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도구를 손에서 놓고 쉬어야 합니다.
추울 때도 일하려면
잎, 그러니까 도구를 모양이 뾰족한 걸로 바꾸어야 하는 듯 합니다.
침엽수들이 바로 그런 경우죠.
추위가 닥치자 우리집 은행나무는
가을빛으로 칠해가며 서서히 줄여가던 계절의 일을 곧바로 멈추고
이제 빈가지만 곶추 세우곤 겨울 휴식에 들어섰습니다.
나무들 밑에 몸을 눕힌 은행잎이 노란색을 물들인 이불처럼 보입니다.
나무는 봄에 도구를 만들어 한철 사용하고
내년 봄엔 또 새로운 도구를 장만하여 일을 시작합니다.
그때까지는 이제 휴식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1월 19일 우리집에서

6 thoughts on “은행잎 모두 지다

  1. 이일을 어째요.
    맨위 돌들이 제 눈엔 군고구마로 보였어요.
    손이 시리니 군고구마 생각이 간절했나보네요.
    고구마는 뭐니뭐니해도 군고구마가 최고!
    손가락이 시리니 오자가 자주 발생하네요.ㅠㅠ

  2. 살며 쉼(휴식)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 쉬어야, 잘 일하고 그러니깐요.
    어느덧 겨울이네요, 동원님네에도 성큼 다가온 계절이군요~

  3. 옛날에는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걸로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채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한겨울에 꽃이 피질 않나 한여름에는 무슨 병에 걸려 낙엽이 지질 않나 나무도 무척 헷갓릴 겁니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구시렁 대질 않으니 양반이죠. 정작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 인간들이 더 구시렁구시렁 하고 있습니다.
    혹 나무들이 단체로 내년 봄에는 안식년이라고 계속 손을 놓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곤 합니다. 그저 다 잊고 새봄에 다시 활짝 피기를 바랍니다.

    1. 겨울엔 우리집 넝쿨장미를 볼 때마다 요게 내년에도 정말 꽃이 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곤 합니다. 그만큼 휑한 느낌이 강하죠. 매년 그 의구심을 보기 좋게 지워주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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