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동행하는 가장 느린 보행의 세상 — 김주대의 시 「그곳에 대하여」

시인 김주대의 시 「그곳에 대하여」를 읽어본다.

거북이처럼 둥그런 등 업고
낮은 산들 기어가는 곳
가난한 며느리가
더 가난한 시어머니의 아픈 마지막을
함께 살며
엉금엉금 손잡고 다니는 곳
—김주대, 「그곳에 대하여」 전문

시는 산을 말하고 그 다음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말한다. 시의 순서로 보면 산이 먼저고, 그 다음에 며느리,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시어머니이다. 시어머니는 가난하고 아프시다. 나는 그 가난을 현재 시점으로 보지 않고 그 세대가 감당해야 했던 한 시절의 가난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안고 있는 가난은 사실은 과거의 가난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우리보다 훨씬 가난하던 시절을 건너 우리를 키우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시어머니는 그래서 며느리보다 더 가난하다. 아니 세상 모든 어머니는 그래서 우리보다 더 가난하다. 가난하고 아프신 어머니는 걸음이 느리다.
며느리는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며느리 세대이다. 그 세대는 어머니보다는 조금 풍족하게 살았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래도 어머니 세대보다는 풍족했다. 아울러 그 세대는 시어머니보다 젊다. 젊으니 걸음도 빠를 것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빨리 걷지 않는다. 며느리는 걸음을 시어머니에 맞춘다. 그리하여 원래 속도의 차이는 걸음을 둘로 나누는 법이나 속도를 맞추면 시어머니의 걸음은 동시에 며느리의 걸음이 되면서 걸음은 둘로 나뉘지 않고 “엉금엉금 손잡고” 걷는 하나의 걸음이 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산이 이 걸음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은 먼저 그 높이를 ‘거북이등’의 높이로 낮추고 산의 형상을 둥글게 웅크려 나이든 어머니와 비슷하게 모습을 맞춘다. 그리고 걸음의 속도는 ‘기어가는’ 속도로 아주 크게 낮춘다. 기어가면 사실 속도를 잘 감지할 수가 없다. 걷고 있는데도 산의 속도감을 느낄 수 없는 이유이다. 산이 높이를 낮추고 속도를 거의 버리다 시피한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걸음에 속도를 맞춘 탓이다. 그러니 이 시는 산과 며느리, 시어머니의 순서로 흐르고 있지만 사실 시 속에선 시어머니, 며느리, 산의 순서로 걸음이 거꾸로 물들고 있다.
산이 걸음의 속도를 버리다 시피하며 둘의 걸음에 속도를 맞춘 것은 그것이 자연의 이름으로 값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연마저 인간에게 물들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속도를 경쟁하는 시대이지만 때로 가장 느린 속도에 걸음을 맞추며 속도를 버릴 때 비로소 ‘그곳’에 인간이 자리한다. 천천히 함께 걷는 것만으로 때로 산마저 높이를 버리고 그 걸음에 동행하는 사람사는 세상이 이루어진다.
(2025년 8월 3일)
(인용한 김주대의 시 「그곳에 대하여」는 페이스북에서 읽어볼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gimjudae.2025/posts/pfbid02QQDNaJgspQDgid3YUjMsNtZ3rh5p2sM3eCyiKBidNrS3iHGCEbmYps3T9Tcznx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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