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나무의 기억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2월 2일 서울 천호동의 우성아파트 단지에서

산수유로 유명한 곳이 몇 곳 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는 지리산 자락의 구례가 있다. 오래 전 여행길에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2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막 채색을 시작한 3월 중순의 봄이 엷게 칠해져 있었다. 가까이로는 양평과 이천에도 산수유 마을이 있다. 채색이 진할 때 가서 한층 깊어진 노란 봄을 볼 수 있었다. 양평과 이천은 가까워서 당일 일정으로 갔다 오곤 했다.
흔한 나무여서 서울에서도 자주 접한다.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에도 몇 그루 있고 방이동의 올림픽공원에는 아주 많다. 어린이대공원의 식물원에는 분재 중에 산수유 나무가 있어 바깥의 나무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꽃을 보여준다. 봄꽃에 대한 갈증이 심할 때 내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동네에서도 자주 만난다.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산수유 나무가 많다. 천호동의 우성아파트에는 산수유와 개나리가 함께 있어 농도를 달리하면서 노란 봄을 이어서 연다. 개나리의 노란 봄이 더 농도가 진하다.
산수유의 봄은 노랗게 열린다.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꽃이다. 가장 먼저라고 했지만 올해의 경우에 산수유가 꽃으로 알린 그 이른 봄은 3월 중순쯤이었다. 가을의 열매는 붉다. 서울은 열매를 따지 않는다. 버려둔 열매를 직박구리가 따먹는 것을 몇 번 봤다. 서울에선 열매가 새들의 겨울 양식이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털어낸 겨울에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산수유 나무의 붉은 열매를 만나곤 한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스쳤던 오래 전의 인연이 생각나고 알고 있는 서울의 산수유 나무들도 그 장소가 떠오른다. 봄꽃도 생각나고 새의 먹이로 추운 겨울에 배를 채워주고 있었던 순간도 그 열매가 환기시키는 기억 중의 하나가 된다. 열매는 열매를 넘어 산수유 나무에 대해 내가 가진 많은 기억의 거처가 된다. 산수유 나무 한 그루에 무수한 기억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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