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녀와 딸이 함께 해준 가족 여행이었다. 여행의 계기가 된 것은 딸의 친구였다. 딸이 유학 시절 알게 된 같은 대학의 일본인 친구지만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 놀러왔을 때 우리 가족과 몇 번 함께 여행을 한 적도 있다. 그 친구에게서 올해도 타이베이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 같다며 딸에게 놀러오라는 연락이 왔고 나와 그녀, 딸 셋이 모두 가기로 했다.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여행의 시작이었다. 딸은 그동안 모은 마일리지로 비행기편을 마련했고 그녀와 나는 둘이 같은 비행기를 따로 끊었다. 딸은 타오위안공항으로 갔고 우리의 비행기는 거의 타이베이 도심에 있는 쑹산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딸이 예약한 타이베이의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천호동에서
내가 사는 집이다. 천호동에 있는 아파트이다. 여행은 사는 곳을 떠나는 것이다. 사는 곳은 익숙하다. 집은 가장 좁게는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집이 그 공간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집의 경계는 사는 동네, 사는 도시, 사는 나라로 확대되곤 한다. 내 경우엔 동네의 지하철역을 내리기만 해도, 서울의 경계로 들어서기만 해도, 김포나 인천공항에 내리기만 해도 집에 다온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집은 작은 공간이지만 그 집의 자장이 미치는 경계를 매우 넓다. 우리는 집에 익숙하고, 사는 동네에 익숙하고, 또 사는 나라에선 어디를 가나 익숙한 편이다. 여행은 그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다. 이상한 것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곧잘 우리가 너무 익숙하여 거의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했던 집과 동네, 나라에 대한 느낌을 동시에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의 가장 큰 덕목은 편안함과 아늑함이다. 여행은 때문에 익숙한 곳을 버리고 떠나지만 너무 익숙하여 느낌이 무뎌진 곳을 새롭게 환기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낯선 곳을 여행하면 익숙했던 우리의 곳을 함께 본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역에서
김포공항은 제주 갈 때 몇 번 이용했었다. 이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울산에 갔던 적도 한번 있다. 일본의 한 잡지사로부터 사진 촬영 의뢰가 들어와 남의 돈으로 탄 비행기였다. 울산에 갔다 올 때는 비행기가 관악산 너머로 날아와 내려다 보이는 서울 풍경이 좋았다. 김포공항에서 해외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김포공항역에서 내려 공항으로 가는 통로는 지날 때마다 마치 미래로 가는 통로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발권을 하고 나자 점심 시간이어서 점심 먹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는 뭘 먹으면 장이 음식을 잘 감당을 하질 못해 여행 중에는 음식을 잘 먹질 않는다. 그녀 혼자 국수 한 그릇 먹었다. 그녀만 먹었지만 나는 먹는 것만 봐도 배불렀다. 그래도 두 그릇 값을 내진 않았다. 파는 이가 한 그릇으로 두 그릇의 포만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었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우리가 비행기를 타는 곳은 37번 게이트였다. 모든 비행기 정보, 그러니까 비행기편이나 좌석, 비행시간은 다 알려주면서도 탑승구는 발권을 하고 나서야 알려주었다. 문은 마지막까지 숨겨두는 비밀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도 문을 모르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탑승구를 나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그림자가 창에 비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림자도 비행기를 함께 타려 했다. 하지만 새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면 지상에 있을 때 가졌던 그림자가 지워졌다. 허공에 그림자를 끌며 날아가는 새는 없다. 우리도 비행기를 타면 그림자를 지상에 떼어놓게 되는 것일까. 그리하여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때 우리의 그림자는 산넘고 바다 건너 우리가 가는 곳으로 쫓아온 뒤에 우리가 이국의 공항에서 내렸을 때 우리를 귀신 같이 찾아내고 다시 우리에게 찰싹 달라붙어 우리와 함께 다니게 되는 것일까. 이국땅에 내렸을 때 그림자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우이씨, 나도 비행기 태워주지.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우리에겐 김포지만 외국인에게는 Seoul, 그러니까 서울이다. 국내를 다닐 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대관령 갈 때 버스를 내리는 횡계를 자꾸 평창으로 통칭하는 것에 잘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곳이 평창군이긴 하지만 내게는 평창은 평창이고 횡계는 횡계였다. 내가 떠나는 김포를 영어는 서울로 뭉뚱그리고 있었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주의 사항 들었다. 주의 사항을 귀담아 듣지 않아도 별일이 없을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보는 김포공항이다. 관제탑이 보이고 공항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떠난다는 사실이 확연해진다. 떠나는 자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2026년 3월 21일 서울 김포에서
비행기는 뜨고 지상을 멀리 아래로 밀어낸다. 항상 내 몸을 안전하게 받쳐주었던 굳건한 지상이 아래로 밀려난다. 잠시 몸이 아뜩해진다. 발디딜 곳이 없는 허공을 몸이 감지한 것이다. 안전했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사실 잠시 발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을 가는 일이었다.

2026년 3월 21일 타이베이가는 이스타항공 비행기 속에서
높이를 얻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내가 지상에서 높이를 얻으려면 산을 오르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높이를 얻는다고 해도 산의 높이로 한정이 되었다. 우리가 구름의 높이를 얻을 수는 없다. 비행기를 타면 구름의 높이를 쉽게 얻는다. 높이를 얻으면 시선이 잽싸게 그 높이에 올라타 멀리까지 날아간다. 비행기는 어딘가를 빨리 데려다 주는 것으로 통하지만 동시에 우리 눈에 높이를 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날아오른 비행기 속에서 시선이 멀리 하늘과 맞닿은 지상의 끝에 걸렸다.
비행기가 내주는 높이를 얻으면 지상의 모든 것은 작고 낮다. 멀리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그냥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지상의 건물들도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보면 모두 작은 점에 불과하다. 잠시 우주에서 보는 지구 체험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지상에선 높고 낮음이 확연하지만 비행기는 높이를 내주면서 그 높낮이의 차이가 별거 아니니 높다고 목에 힘주지 말며 낮다고 주눅들지 말라 했다.

2026년 3월 21일 타이베이가는 이스타항공 비행기 속에서
다리가 물을 건넌다. 비행기도 물을 건널 것이나 구름이 많은 날엔 비행기가 물보다 구름을 타고 넘었다.

2026년 3월 21일 타이베이가는 이스타항공 비행기 속에서
우리의 땅은 바다와 찰싹 붙어 지내고 있다. 땅에서 보면 바다가 땅과 붙어 있다는 느낌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냥 바닷가에 가면 바다가 넓게 트여 있을 뿐이다. 비행기에서 보면 땅과 바다가 찰싹 붙어 있는 그 느낌이 확연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끔 바다에 가야 한다. 찰싹 붙어 지내는 땅과 바다의 사랑이 사람들을 사랑으로 물들인다.

2026년 3월 21일 타이베이가는 이스타항공 비행기 속에서
섬이 푸른 바다에 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면 바다는 가장 낮게 내려 앉은 푸른 하늘이기도 하다. 섬에 간다는 것은 가장 낮게 내려온 하늘의 한가운데서 하루를 보내다 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높이 올라야 하늘이 아니다. 지구에선 하늘이 가장 낮게 내려와 또다른 하늘을 이루고 우리는 그 하늘을 바다라고 불렀다.

2026년 3월 21일 타이베이가는 이스타항공 비행기 속에서
바다와 하늘이 푸른 빛을 반반씩 나누어 가졌다. 비행기는 둘이 엮어낸 푸른 세상을 동시에 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