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나간 나무 둥치의 상처가
오늘은 눈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참 이상하죠.
잘려나간 곳은 상처일텐데
평상시 그 자리는 종종 우리가 쉬어가는 자리가 되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나무의 상처 위에서 쉽니다.
상처는 아프지만
아마도 그 상처가 누군가의 휴식이 된다는 생각에
그 생각을 위로 삼아 상처의 아픔을 견디나 봅니다.
상처가 어떻게 남에게 위로의 자리가 될 수 있을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자기 고통의 경험으로 그 고통을 넘어
남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심리학자였던 칼 융도 그랬다는 군요.
“오직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잘려나간 나무 둥치는 상처지만
그래서 그 상처를 가진 나무만이 고단한 다리의 우리에게
그 상처의 자리를 휴식으로 내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상처엔 언제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린 휴식만 취한채 나무의 상처를 잊고 지나갔는데
오늘 눈이 그 상처를 따뜻하게 덮어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엔 나무 둥치를 지나며 앉았다 일어날 때
손의 체온을 따뜻하게 얹어 잠시 고마움을 전하고 지나가야 겠습니다.
8 thoughts on “나무둥치와 눈”
아무래도 제가 댓글 달기가 조심스럽네요 ㅎ
동원님 삭제를 어케 하는지??
제가 어리버리 맹추 아낙이다보니..
영~션찮네요 모든 게…
블로그 글은 매일 볼께요.
~~^^&
녜, 알겠습니다.
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마음 편한 쪽으로 하시길.
눈 내린 오대산 다녀 오셨으면 눈 실컷 보셨겠네요? ^^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코끼리 그려진 티셔츠에
Mother Nature이라고 적혀있어요.
어제 인도옷가게 있던 사람이 읽어서 안 사실인데,
반가운 단어예요.
눈이 한 1m 정도 온걸 본 적은 있는데 그런 곳은 사실 가질 않거든요.
허리까지 푹 빠지는데 무슨 수로 가겠어요.
비록 1m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40~50cm나 쌓인 눈 속을, 그것도 한 일곱 시간을 헤매다 왔어요.
그 등산길에서 사람, 딱, 한 명 만났어요. 그것도 거의 전문에 가까운 등산인.
멋도 모르고 계속 갔다가 눈에 파묻혀 죽을 뻔 했어요.
그래도 하염없이 좋더군요.
자연은 엄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포근한 안식을 주곤하지요.
예전에 내사랑 팥쥐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 Ost곡이………
크리스챤 언더리치가 부른 마더 네이쳐 라는 곡입니다.
그 곡을 장나라가 리메이크 해서 그 드라마에서 불렀지요.
동원님 글을 보면서 이 노래가 생각나서 합체 크로쓰 만들어
글 보면서 그 원곡 들음서…….
ㅎㅎㅎ
아주 그럴싸 해요.
워낙 음악쪽이나 영화쪽으로….좋아하다보니 놓치기 싫은 저만의
노하우?? 죠
그래요.
자연이 눈물을 흘리면 절대 안되겠죠.
그만큼 우리도 상처를 받을테니까~~
고흥 유자차가 집에 있는데…
이 아침 따뜻한 유자차 두 잔 설로 배달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구요^^*
감사합니다.
오대산 가서 눈구덩이를 헤매다 지금 막 들어왔는데
유자차가 추위를 따뜻하게 녹여줄 것 같습니다.
좋은 예시입니다.
상처 입어봤던 자가 상처 입은 자를 금방 알아보는 법이지요.
불에 데이면 아프다는 걸 알 듯, 남을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것부터 사진의 나무까지-
정말 더할나위 없이 희생적인 모습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Mother Nature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 합니다.
자연으로 걸음할 때마다 삶의 잠언을 들려주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주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