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강원도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 눈소식은 하루로 끝나질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날씨 예보는 고성과 강릉, 태백 쪽으로
많은 눈이 계속되고 있다고 알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1월 15일 화요일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서 눈이 왔을 때 가장 교통이 편했던 곳,
바로 진부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3년만에 다시 오대산의 적멸보궁에 올랐습니다.
진부 시외버스 터미널.
여기서 상원사가는 시내버스를 바꿔 탑니다.
3년전엔 이곳에 9시 30분에 도착해 9시 40분 버스를 탔던 기억입니다.
이번에는 8시 30분에 도착해 8시 40분 버스를 탔습니다.
무려 1시간여를 벌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글자가 군데군데 벗겨져 나간 것도 그대로입니다.
종종 이렇게 바뀌지 않는,
그러면서도 세월에 닳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두번째 와 봤다고
사람들이 모두 가는 등산로를 버리고 상원사로 올라가
절의 한 옆으로 숨겨져 있는 호젓한 길을 찾아갑니다.
그 길에서 그때 만났던 종을 다시 만납니다.
그 날은 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고,
바람이 연신 종을 흔들며 딸랑딸랑 소리를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 종을 보니 반갑기만 합니다.
오늘은 바람도 없고, 종은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3년전 그때의 종소리가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딸랑딸랑 울리고 있었습니다.
3년만에 다시 오니 나만 들을 수 있는 종소리도 있군요.
가끔 찾았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도 참 좋은 일 같습니다.
3년전의 종소리를 그곳에 고스란히 묵혀두었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적멸보궁에 다 왔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
사실 이곳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서
아무리 눈이 오는 날에도 산을 오르는 길에서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길과 하늘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는데
이번에는 길의 눈도 치워져 있었고,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푸른 빛으로 그득했습니다.
적멸보궁이 저기 보이는 군요.
그때는 아이젠도 없이 이곳까지 올라왔었죠.
이번에도 여기까지는 아이젠 없이 그냥 올라왔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이라 그런지
눈도 마구 밟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적멸보궁입니다.
3년전엔 앞이 안보일 정도의 눈발이
퍼붓다 잠시 긋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눈발 속에 서 있다가 눈이 잠시 그을 때 사진을 찍곤 했었습니다.
오늘은 눈대신 화창한 햇볕이 지천입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모두 손을 모으고 적멸보궁을 서너 바퀴 돌던데
오늘은 부처님 전에 몸을 숙여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3년전의 적멸보궁은 제겐 아주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준비없이 떠나는 여행은 여전해서
그때도 먹을 것 하나 챙기지 않고 터덜터덜 그냥 이곳까지 올랐던 기억입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쯤 몹시 배가 고팠었죠.
그때 적멸보궁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수수팥떡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요.
내심 그때의 그 수수밭떡을 기대했지만
오늘은 그 자리에서 따뜻한 차와 달콤한 사탕이 저를 반겨줍니다.
사탕 두 알, 입안에 물었습니다.
김이 오르고 있던 그때의 수수밭떡만은 못하지만
그건 또 모를 일 같습니다.
그때보다 두 시간은 일찍 올라온 것 같으니까요.
그때는 상원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마 그때와 같은 시간에 맞추었다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수수팥떡을 다시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3년전 수수팥떡의 기억에 더하여
오늘은 달콤한 사탕의 기억을 보태갖고 갑니다.
적멸보궁의 지붕엔 용들이 삽니다.
아무래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다 이곳 적멸보궁의 지붕에 내려앉은 뒤
아예 이곳에 눌러앉은 것 같습니다.
하긴 이만한 높이면 굳이 하늘로 날아오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3년전엔 내려갈 때 애를 좀 먹었습니다.
아이젠을 챙겨왔다고 생각해서 내려갈 때는 차고 내려가야지 했는데
올라와보니 카메라 가방 속의 어디에서도 아이젠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갔죠.
오늘은 누군가 길의 눈을 말끔히 치워놓았습니다.
3년전 오대산을 찾았을 땐,
딱 적멸보궁까지만 걸음을 하고 다시 상원사로 내려갔습니다.
오대산 비로봉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안내표지판이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의 바로 아래쪽에서 나를 유혹했지만
눈이 덮인 그 방향으로는 사람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 흔적도 없는 그 순백의 길에
내 발자국으로 길을 내며 산으로 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죠.
결국 산아래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져놓은 눈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 오대산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오르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3년만에 다시 찾았던 적멸보궁이 보입니다.
눈으론 보기엔 지척이지만 이것만 해도 숨을 헉헉대며
상당히 많이 올라온 높이입니다.
그참 이상하죠.
나는 속세에 살고 있는데,
꼭 이곳에 오면 부처님은 나를 보고 속세를 버리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건 아마도 속세의 내가 수많은 욕심으로 뭉쳐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욕심은 쉽게 버려지질 않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공력은 참으로 대단하죠.
그래도 이곳에 오면 속세의 나를 비우라는
부처님의 그 얘기를 들을 자리가 생기니까요.
잠시 적멸보궁을 내려다보며 두 손 모아 합장했습니다.
6 thoughts on “3년만에 다시 찾은 오대산 적멸보궁”
눈구경 많이하고 오셨네요.
언제든 떠날 수 있음
행복입니다 ㅎ
프리랜서가 그게 가장 좋은 점이죠.
일없을 땐 그래도 시간은 남는다는 거.
그 영화가 생각 나네요. 제목이 ‘스모그’ 였던가 그런데요.
늘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던 얘기. 아~ 갑자기 영화 스토리가 다른 스토리랑 막 헷갈려서 생각이 나네. 암튼 그런 영화가 있었죠.
‘걷기의 미학’ 에 대한 논문은 동원님께서 쓰셔야 겠어요.^^
집에 와서 살펴보니 비슷한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보는 각도는 별로 변하질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보다 사진을 찍는 기술은 늘었더군요.
그때는 측광을 제대로 못해 빛을 고르게 분배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빛을 그때보다는 잘 분배해가며 찍었더군요.
좋은 길을 하나 봐 두었는데 눈소식이 있으면 다시 한번 가서 걸어볼까 생각중이예요.
홍천의 내면 명개리란 곳인데 버스타고 그곳까지 가면 고개를 넘고 넘어 진부로 걸어갈 수 있더군요.
언젠가 한번 찾아갔다가 출입이 통제되어 허탕친 곳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비로봉 정상에서 그 길을 확인했죠.
눈이 오면 걸어가기에 쉬운 길은 아닐 것 같아요.
좋은사진과 글 잘봤습니다.
여행을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또 부럽네요~
세상에 여행처럼 좋은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번에도 한 여덟 시간 정도는 걸은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니 그때 다리가 좀 뻐근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