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은 오래 가다 보면 덜컥 겁이 납니다.
나무들이 시야를 막아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갈 때가 있거든요.
그런 길이 오래 계속되면 내가 길을 잃은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밀려 듭니다.
능선을 따라 걷게 되면 시야가 트이니까 그런 일은 없지만
나무들이 촘촘하게 서 있는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시야를 열어가는 숲길은
좀 오래 계속된다 싶으면 이 길이 맞나 싶어집니다.
상왕봉에서 북대사로 가는 갈림길을 찾아 내려오는 길도 다소 길었습니다.
1월 15일의 오대산길은 상왕봉에서 내려와 드디어 갈림길을 찾아내고
상원사로 터덜터덜 내려가는 걸음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숲을 빠져나와 큰 길을 만나는 순간,
약간 불안해하던 마음이 굳었던 긴장을 내려놓습니다.
길가에선 표지판이 거리를 안내해 줍니다.
북대사가 그리 멀지 않군요.
그렇지만 상원사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10리가 넘습니다.
내면 분소까지는 13km.
언젠가 눈소식이 들리면 아침 일찍 서둘러 홍천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내면으로 간 뒤, 명개리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저곳에서부터 상원사까지 한번 걷고 싶습니다.
18km 정도 되겠군요.
45리 정도되는 거리입니다.
아무래도 아침 10시 정도에 명개리까지 가야
상원사까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고는 싶은데 버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그게 좀 걱정이 되는 군요.
원래 산에 갔다 내려오면
바지 밑단이 흙으로 지저분해 지는데
이번에는 흙은 한번도 밟질 못했습니다.
정강이까지 찼던 눈만 바지에 묻어 있습니다.
왜 털지 않았냐구요.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바지 밑단은 눈이 녹으면서 얼어붙어 딱딱하더군요.
바지의 눈은 버스를 탄 뒤에야 녹았습니다.
올라갈 때는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서
적멸보궁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내려오는 길에선 상원사의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눈에 들어옵니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길가의 눈비탈에 하얀 선이 죽죽 그어져 있습니다.
눈이 돌돌말려 작은 눈덩이가 되면서
비탈을 타고 내려가면서 생긴 자국입니다.
눈이 오면 우리만 눈밭에서 썰매를 타는 줄 알았는데
눈도 몸을 돌돌 말아 눈비탈을 굴러 내려가며 눈온 세상을 즐깁니다.
눈이 오니 산의 배색이 달라지면서 눈길을 끕니다.
흰색과 갈색, 그리고 나무 줄기의 검은색이 어울려
좋은 배색을 이룬 느낌입니다.
사진으로 잘라내서 그림으로 삼아봅니다.
산중의 하루는 짧습니다.
네 시인데 해는 벌써 산마루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해지만 붉지 않고 하얗습니다.
가끔 산에서 저녁해를 배웅하고 싶어
늦게까지 버티다 내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오대산에서 그렇게 하려면
하루 이곳에서 자거나 차를 갖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비로봉에서 서녘으로 보내는 저녁해는 특별할 듯 합니다.
언젠가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풀 여럿이 눈밭에 모여 있습니다.
강아지풀은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녀야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게 아닌가?
강아지풀이 쓸데 없는 소리한다고 눈흘깁니다.
‘니 이름값이나 제대로 해!’
알았어. 그냥 한번 해본 소린데 뭘 그래.
꼬리나 한번 흔들어주셔.
그럼 이름값 한 걸로 칠테니.
때마침 옅은 바람이 지나가고,
강아지풀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아마도 북대사에 계신 스님인가 봅니다.
저녁이 저물고 있는 길을 홀로 터벅터벅 올라가십니다.
지나치면서 인사도 주고 받고, 웃음도 주고 받았습니다.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
상원사에서 잠시 더 걸어 내려가 봅니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는 20여리 정도가 됩니다.
그 길은 내내 계곡의 물을 끼고 함께 흘러 갑니다.
계곡엔 눈이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하지만 서서 귀를 모으니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한창 겨울이지만 봄을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조금 걸어내려가다
올라오는 버스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쉬면서
버스가 내려오길 기다렸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세워주는 게 시골 버스의 매력입니다.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주머니에 여유가 좀 있었으면
근처의 시장에 들러 한잔하고 싶었지만
차시간도 여유가 없고 하여 그냥 터미널 매점에서 음료로 목만 축였습니다.
서울과 달리 터미널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입니다.
표파는 사람도 표사는 사람에게 이 밤에 어딜 가시냐고 묻습니다.
물론 낯선 나그네인 나는
아는 이들의 그 대화를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묵묵히 버스를 기다리는 서울과 달리
사람들이 대부분 아는 사이여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고가는 진부 터미널의 풍경은
겨울밤을 덥혀주는 따뜻한 훈기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 밤의 여운이 짙게 깔려있을 때 서울을 떠났는데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아침의 그 어둠이 바깥으로 다시 찾아와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6 thoughts on “강원도 오대산 가는 길 4 – 북대사 갈림길에서 진부 터미널까지”
제가 눈 덮인 치악산을 오른 것이 아마 학력고사 끝나고 친구들과 오른 것이 마지막이였던 것 같습니다.
삼겹살 두어근 사서 스레트 위에 지져 먹고 올랐던 것 같네요.
그후론 게으름과 귀차니즘을 핑계삼아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밟아보질 못했답니다.
그래서 정말 부럽습니다.
가을에 오대산행을 했었지만 이정표가 하나도 기억이 안납니다.
아마 체력이 바닥나서 앞사람 발뒷굽치만 보고 걸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오래 전에 지리산의 성삼재에서 2시간 동안 걸어서
노고단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하늘이 노랗더군요.
우리 딸 초등학교 때였는데 딸보기 창피했어요.
딸도 끄떡없이 올랐거든요.
정말 그때는 앞사람 발꿈치만 보고 갔어요.
사진을 찍고부터는
사람들이 빨리 가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쓰고
그냥 새나 나무와 눈맞추면서 가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검단산이라고 있는데
처음엔 그 산도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요.
같이 갔던 사람들이
나중에 제가 설악산 대청봉 갔다 왔다고 하니까 믿질 않더군요.
검단산 올라갈 때 헉헉대던 모습으로 봐선 영 믿기지가 않는 거였죠.
전 빨리 산에 오르는 건 못하겠어요.
그냥 천천히 오래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오는게 좋더라구요.
카메라 장비만 한 15kg 정도 되기 때문에
빨리 걸으면 숨이 턱에 차올라요.
옆 사람과 소매물도에서 지인분께 언뜻 들었던 ‘,,,,,좋은’ 길로 가던 중
계속 가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되돌려
돌아 나왔었드랬지요.
결국 기온을 이기지 못하고 등대섬 정상에도 가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도 잘못 들어서 길도 없는 곳을
허리만한 풀들을 헤치며 소매물도 정상까지 올라갔었드랬습니다.
(그 날 땀으로만 3kg 가량이 빠졌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날이 2007년 중 가장 더웠던 날 이었지요.
,,,,,, <- 이 자리엔 '돔 낚시 하기에' 라는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옆사람은 다시는 안간다고 진저리를 치긴했지만, 그래도 저에겐 굉장히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
저는 강원도에서 자라서 산이 무서운 건 어렸을 때 종종 경험을 했었죠.
며칠전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나무가 빡빡한 숲은 한낮에도 빛의 20퍼센트 정도밖에 통과하질 못한다고 하더군요.
한낮에 들어가도 어두컴컴할 수밖에요.
그러니 길을 잃기가 쉬워요.
사실은 아주 조심해야 해요.
제가 갔던 오대산도 그 다음날 사람이 조난당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어릴 때 몇번 숲속에서 헤맸던 경험 때문에 저는 큰 무리는 안하고 산을 가요.
근데 사진은 이상하게 큰 고생을 하며 없는 길을 헤쳐갔을 때 좋은 사진이 얻어지더군요.
산은 정말 썰렁하네요~
터미널 풍경이 따듯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개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