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 가면 그냥 그곳의 나무만 보고 와도
산을 오르는데 들인 발품은 모두 뽑을 수 있습니다.
가본 곳 중에서 나무가 좋았던 곳으로는 설악산과 태백산이 있습니다.
지리산도 고사목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아직 지리산은 다녀오질 못했습니다.
1월 15일, 오대산에 갔을 때,
눈길을 헤치고 가야 하는 길이라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갈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상왕봉으로 가는 길에 마주한 주목들은
그 길을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숲은 살아서 숨을 쉰다고 들었습니다.
숲의 호흡은 나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숨을 쉴 때 나무는 사람과는 정반대죠.
사람들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데 반하여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놓습니다.
얽히고 설킨 가지들 사이로 곧게 서 있는 나무가
마치 우리들의 척추처럼 보입니다.
옆으로 뻗은 촘촘한 나뭇가지들은 갈빗뼈입니다.
나무는 뼈가 그대로 다 내비치는 투명한 몸과
그 뼈 뒤로 투명한 허파를 가졌습니다.
나무는 그 투명한 허파로 숨을 쉽니다.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갈빗뼈라고 했는데
그 말은 잠시 바꾸어야 겠습니다.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는 나무의 날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날개를 하나 옆으로 뻗으면서 위로 수직상승합니다.
날개는 점점 자라나고, 그러면 나무는 또다른 가지를 뻗어 날개로 삼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계속 날개를 뻗으면서 위로 날아오릅니다.
나무는 무수한 날개를 펼치면서,
그렇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날개의 높이만큼 하늘로 비상합니다.
나무의 날개, 그 날갯죽지를 한번 엿보실래요.
나무는 대개 아래쪽 날개를 가장 길게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뭇가지를 날개로 본 것도 고쳐야할 듯 합니다.
나무는 종종 나뭇가지를 목삼아 길게 뺍니다.
저기가 어딜까 나만 궁금한 줄 알았는데
나무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아니면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산 아래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무 곁을 지나쳐 갔지만
나무는 여전히 산 아래쪽이 궁금합니다.
나무가 목을 뻗고 있다는 얘기도 다시 고쳐야 할 듯 합니다.
이번 주목은 가지를 부채살처럼 펼쳐선
내 머리 위로 우산을 들어주었습니다.
틈이 워낙 많아 비오고 눈올 때
사이사이로 새는 빗방울과 눈이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대충은 눈과 비를 피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여름 햇볕이 강할 땐,
빛하나 만큼은 저 촘촘한 망으로 잘 걸러
아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그때 이곳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주목이 펼쳐든 커다란 양산 밑에서 한참 쉬었다 가야 겠습니다.
야호,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습니다.
롤러코스터야 아무리 비틀며 어지럽게 돌아간다고 해도 그저 한 길이지만
나무는 가다가 길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마치 불꽃놀이 하듯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날아가선 펑하고 황홀하게 폭발합니다.
아마 봄엔 화려한 초록빛 폭발까지 함께 선보일 것입니다.
으아아아아.
나무들이 팔을 뻗어 알통이 나오도록 잔뜩 힘을 주곤
으아아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조용하고 우렁찬 함성은 난생 처음입니다.
나무 사이는 여름엔 나뭇잎의 놀이터입니다.
나뭇잎은 가지 사이를 푸르게 채우고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을 흔들며 놉니다.
나무 사이는 겨울엔 하늘의 놀이터입니다.
하늘은 그 사이를 푸르게 채우고
가끔 구름을 불러들여 가지에 걸쳐놓고 놉니다.
나뭇가지는 겨울엔 또 눈의 놀이터입니다.
눈은 여기저기 가지 위에 흰 몸을 걸치고
나무타기를 하면서 놉니다.
오대산을 가다보면
곳곳에 낙뢰를 조심하라는 주의안내판이 눈에 띕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이 자작나무는 하늘로 뻗어나간 번개의 변종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번개가 형제인줄 알고 이곳을 찾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고보니 나무들은 거의 모두 하늘로 뻗어나간 번개를 닮긴 했습니다.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는 그 점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하니
매일 번개에 맞던 나무가 성질이 나서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번쩍 번개 한번 때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찌릿하고 놀랐을까요?
에헤라디여!!
나무 둘이 아주 흥에 겨웠습니다.
야, 뭐가 그렇게 신났어?
‘우린 만날 이렇게 살어.
눈이 오면 더더욱 그래.’
아무래도 꽃필 때는 또 꽃피는 시절이라고 저럴 것 같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엮어 하늘에 그물을 쳐둡니다.
운좋으면 구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아무 수확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무가 꼭 위로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옆으로 자라는 나무도 있습니다.
위로 자라는 나무들이 눈을 모두 털어낸 다음에도
옆으로 자라는 나무는 한동안 눈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하긴 겨울 한철의 그 재미에 옆으로 자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뭇가지가 나무의 몸이라면 잎은 나무의 옷입니다.
겨울이 오면 나무들이 모두 맨몸이 되지만
침엽의 나무들은 옷을 벗지 않고 겨울을 나는 행운을 누립니다.
그리고 눈이 오면 그 위에 흰외투 한벌 더 얻게 됩니다.
잎이 없는 맨몸의 나무들이 모두 눈을 털어낸 산에서
잎을 가진 침엽수가 눈외투를 그대로 걸치고 서 있습니다.
침엽수잎으로 촘촘히 짠 진녹색 외투보다는 훨 나은 것 같습니다.
겨울의 침엽수는 눈이 왔을 때 잠깐씩 눈외투를 꺼내입습니다.
6 thoughts on “오대산의 나무들”
네번째 사진 정말 멋지네요.
달력에 들어갈 사진으로 쓰면 좋을 듯…
직접 가서 보는 것 보다야 못하지만
눈요기라도 된다니 다행이예요.
오대산 한번 갔다왔더니 계속 오대산을 어슬렁거리게 되네요.
사람은 겨울이 되면 옷을 껴입는데 나무는 오히려 겨울이 되면 다 벗네요.
한겨울에 기를 모으고 있다 봄이 되면 폭발하려고 하는지
아님 욕심이 없어 적어도 한 계절은 무소유의 벌거숭이로 돌아가는 건지요.
침엽수는 욕심쟁이 같지만 다들 yes 할 때 no 라고 하는 것 같아 나름 매력 있습니다.
대신 또 사람들은 여름되면 훌러덩 벗어치우잖아요.
전 겨울이나 여름이나 좌우지간 벗은게 좋네요.
마지막 나무는 ‘어험! 어디~ 사람들 오가는 길에서 옷을 다 벗고 있나. 이런…이런….일천한 것들 같으니라고’ 하면서 옷깃을 다시 여매는 어느 양반 같네요. ㅎㅎㅎ
그나마 눈이 와서 덮히니 주변과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렇게 재밌게 쓰신대요?
요즘은 룸펜이 따로 없어요.
하루죈종일 빈둥빈둥 지낸다는…
좋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