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보면서도
어느 가지가 어느 나무의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이리도 뒤엉켰는지요.
여름에 오면 풍경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뒤엉킨 가지에서 이파리가 얼굴을 내밀면
이제 하늘이 파랗게 채워주던 그 사이사이로
초록빛 세상이 일렁이기 시작하겠지요.
아마 그때면 눈은 좀 어지럽지 않을 듯합니다.
잎들이 사이를 메우면서 초록빛으로 칠해주면
뒤엉킨 가지의 어지러움은 많이 가려질 테니까요.
가끔 뒤엉킨 인연으로 마음이 많이 어지럽고,
그 속박으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서로 만나 엮인 인연으로
좋은 일도 많았고, 또 즐거운 추억도 많았는데,
사이가 좀 삐걱거린다 싶으면
그 인연으로 키워낸 초록빛 나뭇잎보다
어지럽게 얽히고 꼬여버린 나뭇가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여름,
초록이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오대산에 올라
겨울에 내 눈을 그렇게 어지럽혔던
그 자리의 나무들 앞에 다시 서보고 싶습니다.
그럼 인연으로 뒤엉킨 어지럽던 그 자리에서
그 인연이 키워내고 그려낸 초록빛 푸른 삶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그 그림같은 푸른 삶을 마주하고 있으면
한여름에 산을 올라오며 땀을 쏟고 난 뒤의 그 후덥지근한 산행길이
한순간에 시원하게 식혀질까요.
겨울에 산에 와
가지 사이를 모두 비운 나무들 앞에 서서
여름을 생각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습니다.
4 thoughts on “얽히고 설킨 나뭇가지 앞에서”
오대산을 보자니 요즘 읽는 책에 있는 김삿갓의 시가 생각나네요~
“천황씨가 돌아가셨나 인황씨가 돌아갔나
만수청산이 모두 흰상복을 입었도다
내일 만약 해님이 조상하러 온다면
집집 추녀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겠지”
추녀마다 열린 고드름이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이렇게 표현하다니요~캬~~
이름은 시인이름인디 전 시를 못짓는당께요~ㅎㅎ^^::
아쉬워라~
햐, 그럼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게 상복입은 거였어요.
부주라도 하고 왔어야 하는 건가…
나무 밑둥을 살짝 꼬집으면 아프다며 가지를 파르르 떨며 눈이 떨어지는 걸 보면
어느 가지가 어느 나무의 것인지 알 수 없을까요?
이것도 인연인데…라는 아날로그 작업멘트가 생각납니다.
그 방법이 좋긴 하겠는데… 나무가 여자 수종이면 희롱죄로 걸리지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