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포옹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무들도 사랑을 한다.
오, 내 말을 오해마시라.
나무들이 맺는 꽃이나 과일이
사랑의 결실이니 뭐니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나무들이 아주 농도 짙은 애정행각을 벌인다는 얘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28일 유명산에서

마주보고 있다보면 손잡고 싶어지고
손잡고 나면 뽀뽀하고 싶어진다.
나무라고 다르랴.
오래 전, 유명산을 오르다 이 나무를 본 나는
이 나무를 쪽쪽이 나무라 이름붙였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입을 맞추었으므로.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2월 10일 계룡산에서

뜨거운 포옹도 사랑의 필수이다.
나는 이 나무는 부등 나무라 이름붙였다.
부등켜 안고 있어서.
처음에 포옹 나무라 할까 했지만
그러다 발음이 조금만 된소리로 흐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빗나간다.
두 나무, 이름으로 묶어 뜨겁게 붙여주고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 자락에서

하지만 인생살이란게
항상 가까이 있다고 손잡을 수 있는게 아니며
손잡았다고 부등켜 안고 뽀뽀하며 같이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척에 서로를 둔 이 두 나무는
서로 겹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떨어져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 자락에서

그 두 나무의 사이는 이 만큼이다.
걸음걸이로 세 걸음 정도.
몸을 기울여 보지만
둘은 서로를 맞잡지 못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7일 남한산성 마천동 자락에서

그러나 사랑하면 서로에게 갈 수 있다.
햇볕이 둘의 그림자를 등산로에 눕히는 저녁 시간,
매일 둘은 서로의 그림자로 서로에 서로를 포개며 서로 만난다.
어둠이 들면 이제 둘은 그림자를 그 어둠 속에 묻어
완전히 하나가 되리라.
마천동에서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사람들,
부디 이 등산로를 갈 때,
밤엔 손전등을 조심하시라.
한낮 내내 마주보며 서로에게 목말랐을 두 나무가
그 어둠 속에 그림자로 하나되어 사랑하고 있나니
그 둘의 사랑에 손전등이 방해되지 않도록
잠시 그 길에선 손전등을 끄고 발걸음을 죽여 길을 찾으시라.
마천동에서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숲속엔 서로의 사랑에 목마르다
그림자로 만나 하나되는 두 나무의 사랑이 있다.

8 thoughts on “그림자 포옹

  1. 부등나무라 …..
    너무 재밋고 어울리는 나무이름이네요.
    어디서 저런 묘한 나무형상을 포착하셧는지….^^

    1. 더 진한 포즈의 나무들도 많던 걸요.
      보통은 그냥 찍지 않고 지나치기만 하는데… 어떤 때는 찍어갖고 오죠.
      저 곳은 계룡산이었어요.
      갑사에서 조금 올라가다 만났어요.

    1. 나무는 정말 우리에게 주는 게 많은 거 같아요.
      그늘주고, 과일도 주고, 잎도 주고, 기대면 어깨도 돼주고, 사랑도 보여주고…^^

  2. 나무들의 사랑을 보면서 이외수님의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 이외수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