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의 꽃과 잎

산수유와 비슷한 모양의 꽃을 가진 나무가 있다.
이름은 생강나무이다.
나무 곁을 지나다 생강나무라 일러주었더니
그녀가 “생강이 열리는 건 아니겠지”하고 되물었던 나무이다.
이름만 생강나무이지 생강이 열리진 않는다.
그럼 나무의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한다.
가지를 꺾는 고통을 내주고 얻은 이름이라니…
어쨌거나 나무의 이름은 꽃과 잎을 모두 비켜가고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가져간 것은 꽃과 잎이었다.
그 꽃과 잎으로 사랑 연서를 엮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6일 하남의 객산에서

올봄, 남한산성에서 북쪽으로 흘러나온 하남의 객산을 오르다
자주 생강나무를 마주했습니다.
노란 꽃이 아주 예쁜 나무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6일 하남의 객산에서

봄의 숲속에서
생강나무는 꽃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나뭇가지를 장식한 꽃들은
그 노란빛으로 제 눈길을 거두어가곤 했죠.
처음엔 산수유와 혼동을 했었는데
이제는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해내는 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했고
그건 예쁜 노란 꽃을 가진 나무였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하지만 꽃은 금방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여느 해 같았으면 꽃이 지고 난 생강나무는
범람하는 초록에 휩쓸려 잊혀지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올해 난 지고 있는 꽃들을 더듬으며 가지를 유심히 살피곤 했죠.
그렇게 살펴보니 꽃이 시들 때쯤 생강나무 가지에선
잎의 몽우리가 완연해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나는 몽우리 잡힌 생강나무의 잎을 보며
자꾸 그 모습을 익히려고 했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잊혀질 그 망각이 아쉬워
잎으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였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꽃이 지고 잎이 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시들면서 새롭게 펼쳐든 잎과 스치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시드는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해내고
그 가지끝에서 피어난 잎을 유심히 보았죠.
꽃이 지고난 뒤에도
생강나무를 한해내내 기억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그런데 지는 꽃의 도움을 얻어
생강나무를 구별해내고
그 가지끝에서 잎과 눈맞추고 있던 내게
어느 생강나무 잎이 사랑해라고 속삭였죠.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오호, 생강나무의 잎은
사랑해라는 속삭임이었어요.
사실 유심히 살펴보면 많은 잎들이 사랑해라는 속삭임이지만
생강나무의 잎도 그랬어요.
사랑해라는 속삭임으로 새겨진 그 잎은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어찌나 열심히 잎을 관찰했는지
이제 난 한번 살펴보면
잎만으로도 생강나무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잎들로 생강나무를 구별하기보다
그 속의 사랑해라는 속삭임에 더 눈길을 주고 있었죠.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사랑해라는 그 속삭임은
들어도 들어도 달콤한 것이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난 올해 드디어 생강나무를 잎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뿐만이 아니예요.
잎을 눈여겨 보다 사랑해라는 속삭임까지 얻었죠.
어떤 잎들은 사랑해 사랑해 라고 두 번이나 속삭여 주었죠.
난 올해 생강나무 잎의 그 달콤한 속삭임에 취해 버렸어요.
그럼 이제 생강나무는 내게 영영 잊혀지질 않을 나무가 된 것인가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생강나무는 꽃으로 내게 왔어요.
꽃은 예뻐보였죠.
나는 꽃이 예뻐서 예뻐보인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요.
아마도 내가 그 꽃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뻐보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꽃은 졌어요.
사랑이 지는게 두려웠던 나는
꽃이 진 자리를 사랑해라는 잎의 속삭임으로 메꿨죠.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가을이 되면 잎도 질 거예요.
그럼 사랑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가 그대를 사랑할 때 그대는 예뻤죠.
나는 예쁜 그대에게 사랑해라고 속삭였어요.
달콤하던 시절이었죠.
그 달콤하던 시절은 가버렸어요.
사랑이 가버린 건가요.

어릴 적,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요.
나는 그 살구나무를 꽃이나 잎으로 구별한 적이 없어요.
또 열매를 보고서야 그게 살구나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구요.
봄에 꽃을 피웠을 땐 정말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예뻤지만
내가 꽃으로 그 살구나무를 알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어요.
내가 항상 그 살구나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살구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나는 그 자리의 나무로 그 살구나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살구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로 살구나무와 알고 지냈어요.
그 자리에 가면 항상 그 곳에 서 있던 나무, 그게 바로 살구나무였죠.
나무였으니 더더욱 그 자리의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몇해전 내려갔더니 살구나무는 없더군요.
아마 새로 집을 지으면서 베어버린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였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옛날의 살구나무를 마음 속에 그리다 왔어요.
이제는 없어진 살구나무가 여전히 내 마음 속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어느 하루 생강나무의 꽃과 잎을 쫓아다니며 보낸
올해의 봄날이 가고 있어요.
다음에 산에 가면 생강나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자리를 기억해 두려고 해요.
어릴 적 살구나무를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예쁜 꽃으로 채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또 사랑해라는 속삭임으로 메꿔놓는 것도 아닌 것 같구요.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내 마음 속에 마련해놓는 그 사람의 자리 같아요.
당신에게 알려드리고 싶군요.
내 마음 속 사랑의 자리엔 항상 당신이 있어요.

6 thoughts on “생강나무의 꽃과 잎

  1. 헉…산수유랑 꽃이 너무 똑같아요.
    근데 잎이 다르군요?
    산수유잎은 부들부들한 매끈한 잎이잖아요.
    근데 생강나무의 잎은 보송보송하네요?^^
    그래도 꽃만 피었을땐 구별이 힘들듯.^^

    1. 꽃도 사실은 달라요.
      두 꽃을 잘 보면 구별이 된답니다.
      그냥 가장 편한 구별법은 산에서 만나면 생강나무라고 생각하면 되실듯.
      산수유는 마을의 인가 근처에만 있는 듯 싶어요.

  2. 생강나무의 꽃은 알고 있었지만 잎은 처음 눈여겨 보게 됩니다.
    사랑 모양으로 조용히 사랑해라, 라고 말해주는 듯…
    동원님 아니었으면 평생 생강나무의 잎을 알 수 있었을까요…
    참 감사해요. 잊고 지나가는 것, 스치듯 사라지는 것, 생강나무 잎사귀
    하나에 사랑을 담아서 오늘도 걸어가렵니다.
    언젠가 생강나무 잎사귀 하나 그리우면 가져가도 되겠지요…

    1. 찾아봤더니 가을에 노란색으로 물든 생강나무잎은 봄날의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올 가을에는 물든 생강나무잎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잎 하나 가져가시는 건 물론 되지요.

  3. 생강나무 모습을 처음 본답니다…
    살구꽃이 피는 집~김용택님의 ‘그 여자네 집’이란 시가 생각 나네요…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동원님의 생강나무와의 하루에 사랑스런 날에 같이 해보니..감동이네요^^

    1. 생강나무의 꽃이 지면서 나무를 구별하려 잎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러면서 산을 오르다 보니 내가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고향의 살구나무가 떠오르더군요. 딱 한그루였어요. 동네 어귀의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던 집의 마당에 서 있었죠. 고향에서 기억에 남는 나무가 몇그루 있는데… 지금은 잘라내고 없어서 내려가면 아쉽기는 해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