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와 비슷한 모양의 꽃을 가진 나무가 있다.
이름은 생강나무이다.
나무 곁을 지나다 생강나무라 일러주었더니
그녀가 “생강이 열리는 건 아니겠지”하고 되물었던 나무이다.
이름만 생강나무이지 생강이 열리진 않는다.
그럼 나무의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한다.
가지를 꺾는 고통을 내주고 얻은 이름이라니…
어쨌거나 나무의 이름은 꽃과 잎을 모두 비켜가고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가져간 것은 꽃과 잎이었다.
그 꽃과 잎으로 사랑 연서를 엮는다.
올봄, 남한산성에서 북쪽으로 흘러나온 하남의 객산을 오르다
자주 생강나무를 마주했습니다.
노란 꽃이 아주 예쁜 나무입니다.
봄의 숲속에서
생강나무는 꽃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나뭇가지를 장식한 꽃들은
그 노란빛으로 제 눈길을 거두어가곤 했죠.
처음엔 산수유와 혼동을 했었는데
이제는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해내는 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했고
그건 예쁜 노란 꽃을 가진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꽃은 금방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여느 해 같았으면 꽃이 지고 난 생강나무는
범람하는 초록에 휩쓸려 잊혀지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올해 난 지고 있는 꽃들을 더듬으며 가지를 유심히 살피곤 했죠.
그렇게 살펴보니 꽃이 시들 때쯤 생강나무 가지에선
잎의 몽우리가 완연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몽우리 잡힌 생강나무의 잎을 보며
자꾸 그 모습을 익히려고 했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잊혀질 그 망각이 아쉬워
잎으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였어요.
그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꽃이 지고 잎이 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시들면서 새롭게 펼쳐든 잎과 스치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시드는 꽃으로 생강나무를 구별해내고
그 가지끝에서 피어난 잎을 유심히 보았죠.
꽃이 지고난 뒤에도
생강나무를 한해내내 기억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지는 꽃의 도움을 얻어
생강나무를 구별해내고
그 가지끝에서 잎과 눈맞추고 있던 내게
어느 생강나무 잎이 사랑해라고 속삭였죠.
오호, 생강나무의 잎은
사랑해라는 속삭임이었어요.
사실 유심히 살펴보면 많은 잎들이 사랑해라는 속삭임이지만
생강나무의 잎도 그랬어요.
사랑해라는 속삭임으로 새겨진 그 잎은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찌나 열심히 잎을 관찰했는지
이제 난 한번 살펴보면
잎만으로도 생강나무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잎들로 생강나무를 구별하기보다
그 속의 사랑해라는 속삭임에 더 눈길을 주고 있었죠.
사랑해라는 그 속삭임은
들어도 들어도 달콤한 것이었어요.
난 올해 드디어 생강나무를 잎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뿐만이 아니예요.
잎을 눈여겨 보다 사랑해라는 속삭임까지 얻었죠.
어떤 잎들은 사랑해 사랑해 라고 두 번이나 속삭여 주었죠.
난 올해 생강나무 잎의 그 달콤한 속삭임에 취해 버렸어요.
그럼 이제 생강나무는 내게 영영 잊혀지질 않을 나무가 된 것인가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생강나무는 꽃으로 내게 왔어요.
꽃은 예뻐보였죠.
나는 꽃이 예뻐서 예뻐보인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요.
아마도 내가 그 꽃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뻐보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꽃은 졌어요.
사랑이 지는게 두려웠던 나는
꽃이 진 자리를 사랑해라는 잎의 속삭임으로 메꿨죠.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가을이 되면 잎도 질 거예요.
그럼 사랑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가 그대를 사랑할 때 그대는 예뻤죠.
나는 예쁜 그대에게 사랑해라고 속삭였어요.
달콤하던 시절이었죠.
그 달콤하던 시절은 가버렸어요.
사랑이 가버린 건가요.
어릴 적,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요.
나는 그 살구나무를 꽃이나 잎으로 구별한 적이 없어요.
또 열매를 보고서야 그게 살구나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구요.
봄에 꽃을 피웠을 땐 정말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예뻤지만
내가 꽃으로 그 살구나무를 알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어요.
내가 항상 그 살구나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살구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나는 그 자리의 나무로 그 살구나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살구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로 살구나무와 알고 지냈어요.
그 자리에 가면 항상 그 곳에 서 있던 나무, 그게 바로 살구나무였죠.
나무였으니 더더욱 그 자리의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몇해전 내려갔더니 살구나무는 없더군요.
아마 새로 집을 지으면서 베어버린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였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옛날의 살구나무를 마음 속에 그리다 왔어요.
이제는 없어진 살구나무가 여전히 내 마음 속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어느 하루 생강나무의 꽃과 잎을 쫓아다니며 보낸
올해의 봄날이 가고 있어요.
다음에 산에 가면 생강나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자리를 기억해 두려고 해요.
어릴 적 살구나무를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예쁜 꽃으로 채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또 사랑해라는 속삭임으로 메꿔놓는 것도 아닌 것 같구요.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내 마음 속에 마련해놓는 그 사람의 자리 같아요.
당신에게 알려드리고 싶군요.
내 마음 속 사랑의 자리엔 항상 당신이 있어요.
6 thoughts on “생강나무의 꽃과 잎”
헉…산수유랑 꽃이 너무 똑같아요.
근데 잎이 다르군요?
산수유잎은 부들부들한 매끈한 잎이잖아요.
근데 생강나무의 잎은 보송보송하네요?^^
그래도 꽃만 피었을땐 구별이 힘들듯.^^
꽃도 사실은 달라요.
두 꽃을 잘 보면 구별이 된답니다.
그냥 가장 편한 구별법은 산에서 만나면 생강나무라고 생각하면 되실듯.
산수유는 마을의 인가 근처에만 있는 듯 싶어요.
생강나무의 꽃은 알고 있었지만 잎은 처음 눈여겨 보게 됩니다.
사랑 모양으로 조용히 사랑해라, 라고 말해주는 듯…
동원님 아니었으면 평생 생강나무의 잎을 알 수 있었을까요…
참 감사해요. 잊고 지나가는 것, 스치듯 사라지는 것, 생강나무 잎사귀
하나에 사랑을 담아서 오늘도 걸어가렵니다.
언젠가 생강나무 잎사귀 하나 그리우면 가져가도 되겠지요…
찾아봤더니 가을에 노란색으로 물든 생강나무잎은 봄날의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올 가을에는 물든 생강나무잎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잎 하나 가져가시는 건 물론 되지요.
생강나무 모습을 처음 본답니다…
살구꽃이 피는 집~김용택님의 ‘그 여자네 집’이란 시가 생각 나네요…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동원님의 생강나무와의 하루에 사랑스런 날에 같이 해보니..감동이네요^^
생강나무의 꽃이 지면서 나무를 구별하려 잎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러면서 산을 오르다 보니 내가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고향의 살구나무가 떠오르더군요. 딱 한그루였어요. 동네 어귀의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던 집의 마당에 서 있었죠. 고향에서 기억에 남는 나무가 몇그루 있는데… 지금은 잘라내고 없어서 내려가면 아쉽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