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 나무가 몇그루 있다.
그 중 은행나무는 제법 키가 커서
그늘이 바깥 골목을 덮고,
그 옆의 감나무도 올해 부쩍 자라
역시 담너머까지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한번은 보니 누군가 그 그늘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었다.
그다지 시원하진 않아도
누구나 그 그늘에서 잠깐씩 쉬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우리 집 나무가 그 그늘로
그들의 어깨를 부드럽게 도닥여준다.
난 일하다가 가끔 마당에 나가
그 초록빛으로 눈을 식히곤 한다.
나뭇잎은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짓무른 눈에 초록빛 수액으로 차오른다.
그럼 눈이 시원해진다.
마당에 서면
두 나무의 무성한 잎 사이로
바로 옆의 아파트가 보인다.
층마다 에어컨이 빠짐없이 달려있다.
틀어놓고 있으면 아주 시원하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저네만 시원하다.
자연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챙겨주는데
문명은 저네만 챙긴다.
이상한 건 나도 집에 에어컨이 있긴 한데
그거 틀고 있으면 시원해서 좋긴 하지만
그 시원한 바람은 그냥 시원한 거, 그거 뿐이다.
사실 난 옛날 사람들 말 중에 이해못했던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게 여름날 시골 동네의 한가운데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부채로 바람 쐬고 있으면 그것처럼 시원하게 없다는 말이었다.
난 항상 그말에 갸웃갸웃 했었다.
시원하기로 따지면 선풍기가 더 시원할 듯하고,
그렇게 따져나가면 무엇이 에어컨 바람을 이길까 싶었다.
하지만 이젠 좀 알 것 같다.
선풍기와 에어컨의 바람은 그냥 시원할 뿐이다.
때로 시원함은 그만 못하지만 우리의 몸을 채워주고,
또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는 바람이 있다.
아마도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부채로 부치는 바람이 그럴 것이다.
아니 바람이 없어도 좋다.
나무 아래 서 있으면 나는 종종 내가
나뭇잎의 초록빛으로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 혼자 독차지한 그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나를 채워주질 못하는데
사람들 모두가 함께 나누고 지나갔을 나무는
그 아래 있으면 여름내 그 초록으로 나를 채워준다.
우리 집 마당에 그 나무가 세 그루나 있다.
8 thoughts on “나무와 에어컨”
느티나무 평상에 누워 있으면 매미 소리도 운치가 있는데
창문 틀어 막고 에어컨을 켜 놓고 누워 있으면 매미 소리가 소음처럼 들리더군요.
매미는 나무 많은 곳에서 울어야지 에어컨 많은 곳에서 울면 공공의 적이 되나 봅니다.
요즘은 에어컨 틀고 있으면 전기세도 무섭고…
어느 해 정말 엄청 더웠던 적이 있었는데 아직 그때만큼 덥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주 더운 날에 ‘이건 단지 날씨가 더운 게 아니야’ 싶을 때가 있거든요.
더운 날씨와 함께 에어콘이 뿜어대는 열기가 실내의 사람들이 시원한 것에 비례해서 밖의 공기를 뎁히고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날 ‘이러다가 너무 뜨거워서 폭파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자연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공평하게 챙겨주는데 문명은 저네만 챙긴다’에 완전공감 한 표요.
아무리 더워도 그 동네는 한걸음 나가면 한강이고,
또 한걸음 가면 산인데요, 뭘.
나무 세 그루에 비길게 못되죠.
저도 어릴 때는 그런 동네 살았었는데… ㅜㅜ
초록으로 채워주는 나무 세 그루가 있는 집,
그 집에 사는 사람…
생각만으로도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초록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빛깔 같습니다.
나무 세 그루 있는 집이라고 하니
너무 낭만적으로 들려요.
지나는 사람들이 그 초록빛, 많이 눈에 담아갔으면 좋겠네요.
동남아쪽에서 삽질할 때,
현지 직원과 함께 한달동안 거쳐를 구하러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거처를 구할때에는 집이 놓여있는 위치나
집의 구조나 상태를 물어보게 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궁금해하는 집의 구조를
부동산 중개인들은 하나도 모르고 있어서,
항상 그 집으로 찾아가 하나하나를 직접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달이 걸렸습니다.
같이 다니던 현지인 직원과 중개인이
항상 이야기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물어봤더니,
“나무와 바람”이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제가 궁금해 하던 놓여진 위치나 집의 구조가 아니라,
야자수가 있느냐, 망고나무가 있느냐,
있으다면 몇그루나 있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집을 지나가는 바람길이 있으나 없느냐.
흙을 내어주고, 나무를 내어주고, 바람을 내어주면서
그 허전함을 매꾸기 위해 다른 것들만 찾고 있습니다.
흙을, 나무를, 바람을 되 찾아 오면 되는데,
지레 겁먹고 포기하면서, 대신할 것들만 애써 찾고 있습니다.
나무를 세 그루나 가진 갑부,
동원님네가 부럽네요.
두분 모두 행복한 주말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로 놀러갔을 때, 바닷가의 집에서 잔 건, 그 집 자체가 좋아서라 아니라 밤새 들리는 파도소리 때문이었으니까요. 남해 갔을 때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밤새 풀벌레 소리가 들리던 어느 민박집의 밤이었어요. 가끔 소중한 게 집밖에 있죠.
박대리님의 주말, 행복으로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