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소리산엔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8월 15일에 경기도 단월에 있는 소리산에 올랐습니다.
소리산은 한자로는 小理山(소리산)이라고 적습니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면
작은 이치(理致) 정도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소리산을 오르면 큰 깨달음은 없어도
작은 깨달음 정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산의 이름은
음악 소리, 바람 소리의 그 소리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산을 오르는 길의 숲에선 매미의 울음 소리가 유난히 귀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소리산은 여름철에 매미 소리 가득한 산이려니 하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내게 있어 소리산은
여름철엔 매미가 맴맴 울어 그 뜻을 채워주고 있는 산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택한 등산로의 입구입니다.
대부분의 산이 그렇듯이 소리산도 오르는 입구가 한두 곳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 소리산 유원지쪽으로 있는 한가한 등산로 하나를 임의로 골라
그곳으로 발길을 들여놓았습니다.
소리산을 동서남북으로 갈라놓고 보면
북동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구가 있는 아래쪽에는 아스팔트로 길을 내놓았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도 보이질 않고 내려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는 아닌가 봅니다.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산은 소리산과 마주하고 있는 작은 산입니다.
아마도 소리산에 오르면 저 산이 내려다 보일 것 같습니다.
나는 입구의 이 길을 이제 저 끝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야 하는 셈입니다.
역시 여름은 푸른 생명의 계절입니다.
어디나 풀들이 지천이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잠시 오르니 이제 흙길이 나타납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빗물이 훑고 가면서 길이 한쪽으로 깊게 파여있습니다.
원래 비는 나무 뿌리로 스미면서 땅속을 제 품으로 삼아
몇 방울은 나무와 풀에게 내주고
또 몇 방울은 땅속으로 길을 찾으면서 천천히 산을 내려갑니다.
하지만 등산로가 나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내준 뒤로
빗방울은 파고들 품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마도 빗방울은 머물 품을 잃어버린 그 상실감으로
땅을 깊게 파먹으며 산길을 내려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실감이란 무엇으로든 채우지 않으면 달래기 어려운 것이니까요.
그리하여 흙을 깊게 파내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물은
내가 천천히 오르고 있는 이 길을 아주 급하게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
제 즐거움으로 삼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빗방울의 품을 빼앗아 길로 삼을 수밖에 없는
내 걸음이 조금 미안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길을 내준 빗방울에게 고마웠습니다.
아마도 산에선 머물 품을 잃었지만
바다의 너른 품에 가선 다른 만족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위안을 삼아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을 오르는 길에는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이름을 챙겨갖고 가면 더 반가울텐데
꽃들이 하도 많아 그러긴 어렵습니다.
그냥 흰꽃으로 해두고 잠시 눈을 맞추었다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갈잎의 한쪽을 누군가 크게 파먹었습니다.
지금 잎에 앉아있는 녀석이 파먹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잎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곤충을 보니
저 녀석에게도 저 자리가 가파른 벼랑끝일까 잠시 궁금해집니다.
우리라면 아마 너무 가파라서 약간 오금이 저릴만한 자리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등산로 길가의 벌통입니다.
다행이 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달콤한 유혹이 저 자리에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나무에서 내려온 거미줄 끝에
무엇인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들여다보니 무슨 문자가 새겨져 있는 듯도 합니다.
영어의 N자 하나는 확실히 보였지만 설마 누가 써놓은 것은 아닐테지요.
크기가 깨알만 했으니까요.
짐작컨데 거미의 알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짐작만 할 뿐 확실한 대답은 찾질 못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많이 올라왔나 봅니다.
나무 사이로 저만치 산 아래쪽의 길이 보입니다.
하지만 길에선 내가 전혀 보이지 않을 겁니다.
여름의 산은 잎들이 너무 무성해 그 속으로 들면
듬성듬성 그 속을 가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숲길을 가는 나는 초록에 묻혀서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메뚜기를 여러 마리 보았습니다.
무슨 산중턱에 메뚜기가 있나 싶습니다.
논에 농약을 치니까 아예 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인지
아니면 산메뚜기가 원래 있었는데 내가 몰랐는지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버섯이 제 철을 만난 것 같습니다.
올라가면서 수없이 버섯을 만났거든요.
그것도 가지가지 모양의 버섯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근래에 비가 잦았던 탓인지 습한 기운이 손끝에 묻어납니다.
아무래도 버섯이 자라기 좋은 시기인 듯 싶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거 절대로 누가 실례해 놓은 것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버섯의 일종입니다.
생각을 바꾸니 잘 부푼 빵 같기도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전혀 없어
중간에 셀프 샷 한장 찍으며 잠시 놀다가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또 버섯입니다.
이번 버섯은 아예 꽃을 피웠습니다.
꽃만 피운게 아니라 입에 나뭇가지 하나 물고 분위기까지 잡습니다.
하지만 장미를 물어야 폼이 날텐데
나무를 입에 물고 있으니
이 느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이 상당히 가파라졌습니다.
어떻게 아주 험한 길을 고른 것 같습니다.
가파른 구간을 겨우 올라와 숨 돌리면서
아래로 내려보고 사진 한 장 찍어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에서 위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실은 아래쪽입니다.
사진보는데 힘들까봐
올려다보는 사진보다 내려다보는 사진으로 선물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눈앞의 돌에 30이란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혹시 정상까지 30m 남았다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괜한 기대를 품어 봅니다.
역시 괜한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거의 다 오긴 다 온 것이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지난 해(2007년 6월)에 소리산에 산불이 났었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아픈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이 산 전체로 번지진 않았던가 봅니다.
밑둥이 시커먼 나무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지만
다시 삶을 추스르고 푸른 잎을 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나무 사이로 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작은 산이라는데 그래도 올라온 높이가 아득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달개비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닭의장풀이라 부르더군요.
물론 나에겐 여전히 달개비였지요.
닭벼슬처럼 생겼다고 이름을 그리 얻었다는데
나는 앞의 달을 취해 이렇게 묻습니다.
“달개비야,
날 어두워지면 너가 달빛 되어 길을 밝혀 줄래?”
바람이 흔들 때마다 달개비가 그러고마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직 정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상보다는 좀 못미친 곳의 경관이 더 시원합니다.
하늘의 비구름이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한줄금 쏟아부을 것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정상에 왔습니다.
소리산 정상의 표지석은
산의 높이가 479m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리산 정상에선 동쪽으로 본 모습입니다.
저 멀리 마을이 보입니다.
산은 멀리 동쪽으로 뻗어가고 있는데
비구름을 산으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요건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마을이 꼬불꼬불 길을 내며 산의 안쪽으로 들어가
그 품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예전에는 찻길도 없던 경기도의 오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리산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내려오다 수리바위란 곳에 올라서면 아래쪽으로 이 풍경이 보입니다.
저 길은 단월을 지나 이곳으로 들어올 때
타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바라보이는 계곡의 주차장 옆으로 계곡물을 건너
산으로 들어오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내가 내려가려고 하는 길입니다.
올라온 곳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수리바위에서 넓게 내려다보면
산자락을 휘돌며 계곡을 따라 함께 흘러가는
찻길이 전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슴농장도 보이더군요.
빗줄기가 굵어져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놓고
방수포로 싼 뒤 중간중간에 필요할 때만 사진을 찍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리산 소금강 쪽으로 내려오면
계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미 소리 대신 이제는 계곡의 물소리가
소리산이 가진 소리의 의미를 시원하게 채워줍니다.
하지만 항상 물이 이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비올 때 계곡에 들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지요.

Photo by Kim Dong Won

바로 위에서 보았던 그 작은 폭포가
사실은 이렇게 초록의 숲에 푸르게 쌓여있습니다.
물이 아니라 초록이 쏟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날이 좋았다면 이런 사진은 얻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길게 노출을 줘야 하기 때문에
폭포가 너무 하얗게 뭉개져 버리거든요.
비가 오면 산을 오르고 내리는 데는 불편해도
사진은 좋은 사진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고보면 카메라를 둘러맨 나는 궂은 날씨를 불평할 것은 아닌 셈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거의 다 내려오면
어느 계곡이나 하나쯤 다 갖추고 있는
그 흔한 선녀탕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이번에도 선녀는 없더군요.
대신 바로 아래서 고기 구어 드시고 계신
아줌마, 아저씨만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올라갈 때는 차로 바로 옆의 아스팔트 등산로로 걸음을 떼었는데
내려올 때는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마무리 길을 장식해 줍니다.
비가 올거나 말거나 신났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은 그녀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일찍 집을 나선 관계로 사람들이 다 모이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
홀로 산행에 나섰다가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뒤 물놀이좀 하고 다함께 모여 저녁먹었습니다.
그녀의 오라버니 중 한 분이 올해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해
가족들의 모임을 이곳에서 마련했습니다.
내가 홍보안해주면 안될 것 같아서
식당 이름 밝혀놓습니다.
소리산 쉼터입니다.

11 thoughts on “한여름의 소리산엔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1. 산에 오르는 일이 좋은 게 흙길을 걸어서인가 봅니다. 한 여름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 복사열 땜시 더 열 받는데 산길은 쉬어 갈 그늘과 계곡을 무료제공해 주니 좋은데 소리산은 소리까지 있어 금상첨화네요.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도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작은 깨달음 아닐까요?

  2. 동원님 시선을 따라 댕기다보니 다리가 많이 아픕니다. 피로가 급하게 몰려옵니다. 이렇게 짧은 순간에 해발 479m 의 소리산을 찍고 내려오니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마음을 누르고 있으니, 다음에 유량병 도지면 제대로 한번 날뛸 것 같습니다. 지금쯤 저 물은 무지 차가울텐데… 그래도 좋으니 발이라도 담궈 놓고 싶어집니다. 나무그늘에 누워 늘어지게 자보는 것도 괜찬을 것 같습니다.

    역시 간만에 온 동원님의 글터에선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사진과 글로 보내주신 소리산 여행 잘봣습니다.

    이번 한주도 행복하세요.

    1. 몰입의 달인이시군요.
      어떤 사람은 너무 낮아서 싱겁다고 두번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길을 잘못들어 한 구간은 두 번을 왕복했습니다.
      하필 올라간 길이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는 길이라 길의 흔적이 희미한 곳이 군데군데 있었어요.
      촛불과 함께 흘리는 땀, 항상 고마워요.

    1. 멀리가지 말고 가까운 천마산에 가던가 해보지요, 뭐.
      거기가는 버스가 길동에서 있더라구요.
      내려오다 계곡에서 한잔 걸치고 다시 버스타고 오면 될 듯…
      팔당의 예봉산도 길동에서 버스타고 갈 수 있으니 그곳도 괜찮을 듯 합니다.
      나중에 시간 맞춰보자구요.

  3. 단월이라함은
    양평군 단월면인듯 한데..
    양평에서 홍천쪽으로 끝자락이라
    좀 멀지요?
    시원한 계곡에서 아주 잘 쉬다 오셨겠네요.
    다음에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1. 5분 더가면 강원도라고 하더군요.
      일요일날 모여서 갔다 와도 좋을 듯 해요.
      물있는 곳이 좋더라구요.
      산새마을님 집근처의 천마산에서 한번 모여도 좋을 듯 하구요.

  4. 실제로 거의 산꼭대기에 무덤이 하나 있었어요.
    무지 소리산을 사랑한 사람이었는지
    산들의 물결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더군요.
    아주 오래 전에 가을에 한번 갔었는데
    여름에 산에 가는 것도 괜찮은 듯 싶어요.
    땀 때문에 좀 고역이긴 하지만요.

  5. 많이본 뒷모습 있네요, 보랏빛 그녀^^
    오랜만에 산을 타시니, 사진이 풍성하니 보기 즐겁네요.
    구름 자욱히 몰려오는 하늘풍경 압권!
    그리고 셀프샷 아주 자연스러우신데요 ㅋㅋ
    창원 내려가서 엄마랑 뒷산을 두어번 탔어요.
    가까이 도봉산이나 수락산도 타보야겠단 생각했지요.
    산도 쉬엄 타면서 구경하기 재미날듯싶어요. ㅎ

    1. 다음 날도 산에 올랐는데, 그때는 보랏빛 그녀도 따라 나섰어요.
      물론 정상까지 갔지요.
      수락산은 계곡에 가서 하루 놀다와도 좋을 거예요.
      바위가 많아서 사진찍으면
      아주 멋진 장면들을 많이 건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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