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계곡이 몇 곳 있습니다.
춘천의 청평사 계곡, 서울의 수락산 계곡,
그리고 소백산의 천동계곡이 그런 곳입니다.
모두 물가에 앉아서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냈던 곳입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산 가운데서도 내려오다 계곡으로 마무리를 하는 산이 좋습니다.
양평의 소리산에 갔다가 물이 좋은 그런 계곡을 만났습니다.
산을 내려오다 계곡을 만났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산을 내려오다 계곡을 만나면
그 순간 알게 됩니다.
물이 참 맑고 듣기 편안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을.
급경사를 내려가는 계곡의 물소리는
물이 경사가 완만한 개울을 따라 우르르 떼지어 몰려 내려갈 때와는
소리의 느낌이 좀 다릅니다.
개울의 목소리가 좀 퍼진 느낌이라면
계곡은 소리를 예쁜 그릇에 가지런히 담아서 내놓은 정갈한 느낌이랄까요.
비단결 같은 목소리란 말은
아마도 고운 목소리를
비단결의 고운 감촉에 빗대어 말한 것이었겠지만
실제로 물은 계곡을 내려갈 때면 하얀 실을 빚어냅니다.
계곡의 물은 가파른 높이의 바위를 뛰어내릴 때마다
투명한 자신의 속에서 흰빛의 가는 실을 뽑아
그 실을 밧줄삼아 아래로 걸치고
바위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때마다 우리 눈엔
계곡에 비단같은 작은 폭포들이 걸립니다.
계곡이 물에서 뽑는 실타래는
좀 중구난방이긴 합니다.
어떤 때는 실타래를 잘 뭉쳐 굵은 줄기로 바위에 걸쳐놓고
또 어떤 때는 다발을 좌우로 갈라
바위 하나를 둥글게 묶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다발을 가르는가 싶지만
곧이어 다시 하나로 모읍니다.
뭉쳐놓았던 물의 실타래를
두 갈래로 나누니
마치 바위에 걸어준 목걸이 같기도 하군요.
목을 감싸는 진한 포옹의 감촉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고 내려갈 바위의 높이가
깊다 싶으면 실타래를 길게 뽑아 듭니다.
또 끊어질 듯 이으면서
하얀 실타래를 층층으로 여기저기 짧게짧게 걸쳐놓기도 합니다.
계곡을 내려가는 물은 그렇게
그 투명 속에서 흰빛 실을 뽑아내
그 실로 투명 비단을 짜고,
그 비단을 작은 웅덩이에 잠시 펴놓습니다.
투명 비단이 된 그 물속에 발을 담그면
비단이 발을 휘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그럼 산을 내려온 피로도 함께 풀려나갑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그러고 보면 실을 뽑을 때 부르는 계곡의 노래일지도 모릅니다.
실의 노래인 셈이지요.
푸른 녹음이 우거진 여름날,
비가 내려 한층 물이 불어난 소리산에선
계곡이 그렇게 투명한 물속에서 흰 실을 뽑으며
빗방울을 뚝뚝 떨구고 있는 나뭇잎의 초록빛을 그 속에 녹여
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주제로한 또다른 글들
물의 노래로 엮은 사랑 연서 – 소백산 천동계곡에서
물의 노래
15 thoughts on “실의 노래 – 경기도 양평의 소리산 계곡에서”
너무잘 보고갑니다. 사진이 정말 아름답네요~~ 감사합니다. 눈을 통해 가슴으로 행복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계곡은 낮은데 있어서 사진찍을 때는 큰고생은 없더라구요.
실의 노래… 참 좋습니다, 이 말의 느낌.
소리산.. 뜻은 모르지만 참 청아한 이름이에요.
자꾸 되뇌게 되네요. 소리산, 소리산..
여름이 꺾이긴 했나봐요.
물을 보니 서늘하네요. 지난주만 해도 시원했는데 말이죠.
정말 세월 무서운 것 같습니다.
여름이 갈까 싶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네요.
하늘의 색이 가을빛이 역력해요.
젊은 친구들이랑 술먹었더니 후유증이 이틀 뒤까지 미치는 것을 봐도 세월가는게 확실한 듯하고…ㅋ
하산길에 물이 있으면 참 좋더군요. 잠시 앉아 흘린 땀을 닦아내다 보면 주위를 살피다 홀라당 벗고 들어가고 싶어지더군요. 요즘은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에 오를 때 삼각대도 가지고 가시나 보네요. 보통 정성과 체력이 아니면 쉬운 일이 아닌데요. 종종 히말라야 등정기 같은 것을 보면 사진가나 카메라 감독들이 산악인보다 더 고생했겠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한마디씩 합니다.
맨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든디…
삼각대가 좀 무지막지해 보이거든요.
하도 무거워서 가벼운 걸 하나 사긴 했는데 영 불안해서 산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 묵직한 주기종의 삼각대를 갖고 갑니다.
중간에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무겁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핑계대고 천천히 가긴 합니다.
산은 삼각대를 안가져가면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안챙길 수가 없어요.
삼각대가 없으면 많은 사진을 놓치거든요.
사진 취미를 갖은한 어쩔 수가 없는 듯 합니다.
동선이 살아 있는 물의 흐름을 보고 실타래를 생각 하셨군요.
전 옛날부터 이런 사진을 볼때면 드라이 아이스를 떠올리는데~ ^^:
혹은 끓는 물? ㅋㅋ
수아님은 감각이 너무 현대적이셔요.
전 감각이 아무래도 너무 낡았나봐요.
소박한 계곡풍경을 장노출로 예쁘게 담으셨네요.
오랫만에 저녁에 뵐 수 있나요? ^^
예, 이따 봐요.
오늘 사람들 많이 모일 것 같아요.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뜨거웠던 2008년의 여름이 가고 있네요.
이틀 소리산에 있었는데 한 한달 갔다온 듯이 울궈먹습니다. ㅋㅋ
안녕하세요?
대서양의 진면목을 느끼고 온 여행이었어요…
캐나다 동쪽의 케이프브레툰은 인터넷도 되지 않지만
여행지로 유명한 곳…도로가 모노레일 같았죠
국립공원은 차로 하루를 돌아도 모자라요
몇 일 동안 비가 오는데..무거운 사진기를 닦아 가면서 찍었죠
풍경을 놓치기 아쉬웠기 때문인지..
동원님이 이런 자리에 계신다면 얼마나 멋진 사진과 글을 뽑아 내셨을까요
대서양의 안개 속으로 빨려 들 것 같은 풍광에서..하얀 물새를 보았고..
카이오리..우스꽝스런 무쓰와의 마주침…
근데 사진을 몇 천장이나 CD에 구워 놓고도 다시 올릴 줄 몰라서
소개도 못 하고 있어요..ㅋㅋ
나이아가라 사진만 겨우 올렸네요
돌아오니,한국의 산이 얼마나 예쁜지…한국여인들도 이렇게 예쁜지요..ㅎㅎ
계곡의 흐르는 물 빛을 보는 눈이..실의 노래를 듣는 귓가가 마냥 행복해요
저는 국내라도 한달에 한번 정도
여행을 나갈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사는게 점점 빠듯해서
가까운 곳도 잘 나가질 못하겠어요.
그냥 서울에서 사람들 만나 술이나 마시게 되고.
좋은 사람들이라 술자리가 좋긴 하지만요…
이상하게 멀리 나가면
더 좋은 풍경과 많은 생각을 얻어갖고 오게 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놀러오면 좋으려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뭐, 살다보면 좋은 기회가 오겠지요.
좋은 여행이었다니 소식을 전해듣는 저도 즐겁습니다.
서울의 수락산 계곡이라 하니까 정말 서울에 있는 산같어.
의정부에 있는 산 아닌가?
서울에서 가까워서 그렇지..
쟤네들은 그럼 매일 실실거리겠네.ㅋㅋ
그럼 서울 근교라고 고칠까…
의정부는 아니고 남양주에 있는 산이라고 하네.
그럼 계곡의 물은 나한테 실실 쪼개고 있던 거였나.
다시 찾아봤더니 서울 노원구, 의정부, 남양주에 걸쳐있는 산이라고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