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인사만 나누고 온 정선 몰운대

종종 어느 곳의 지명은
반사적으로 어떤 또다른 이름을 떠올리게 만들곤 한다.
가령 목포라는 지명은 내겐 유달산이란 산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들고,
부산이란 지명이 나오면 태종대란 이름이 냉큼 따라붙는다.
다들 그곳의 유명한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들이다.
하지만 내겐 지명이 시인이 알려준 곳들과 묶일 때가 종종 있다.
가령 양평이란 지명은 언제나 내겐 사나사와 묶인다.
시인 조용미가 시속에서 일러주었던 절이다.
그런 점에선 정선도 예외가 아니다.
정선이란 지명은 언제나 내겐 몰운대란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연상의 고리는 거의 반사작용에 가깝다.
정선하면 몰운대를 떠올리게 된 것은
내겐 시인 황동규의 시 속에 그곳이 등장했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이다.
번개 모임에서 만난 명화공주님이 정선 출신의 처자라고 했을 때,
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의 몰운대를 반사적으로 입에 올렸다.
그러자 그럼 언제 몰운대로 사진찍으러 한번 가지 않을래요라는 말이 곧바로 이어졌고,
나는 그거 아주 좋지요라는 말로 그 말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한두 번 더 몰운대란 지명을 주고 받다가
결국은 9월 3일의 오후 시간에 명화공주님의 차에 동승하여
정선의 몰운대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Photo by Kim Dong Won

차는 일단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하늘의 구름이 아주 좋았다.
이상하게 어디로 떠나는 날이면
눈앞의 모든 구름이 그곳으로 먼저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오늘은 저 구름이 떠 있는 곳이
모두 정선 하늘인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앞의 차량 작업중이시란다.
오, 대범하신 걸.
벌건 대낮에 대놓고 작업 걸면서 고속도로를 가시다니.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차가 차에 작업걸면
차들은 작업거는 차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그 옆으로 비켜간다.
작업중인 차량은 나중에 보면
차들은 하나도 꼬드기지 못하고
열심히 길바닥에 작업걸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여주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문막을 향해 가고 있는 중.
지금은 영동고속도로이다.
구름이 문양을 바꾸었다.
저 쪽은 정선 방향은 아닌데…
동네가 다르면 구름도 다른 건가.

Photo by Kim Dong Won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제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제천의 외곽도로를 타고 영월로 가는 중이다.
쑤욱 내려갔다 올라가는 롤러코스터 도로.
저 멀리 구름이 기다리고,
좀더 가까이로는 과속 차량 찍으려는 카메라가 기다린다.
아씨, 왜 여기서 사진찍고 난리야.
풍경좋은데도 많은데 매일 씽씽 달리는 차들만 찍는다니까.
취미도 이상해.
그러지 말고 오늘 같은 날은
바뀌는 구름이나 몇분 마다 한장씩 찍어서 올리셔.

Photo by Kim Dong Won

거대한 트럭 두 대가 앞을 막는다.
역시 트럭은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다소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우리가 아니지.
명화공주님이 “운동화와 슬리퍼”라고 놀려먹었다.
트럭 두 대, 졸지에 운동화와 슬리퍼 끌면서 길을 가는 신세가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제천을 벗어나 영월 방향으로 들어섰다.
빨리가서 좋긴 한데 옛길은 아니다.
꼬불꼬불 산허리를 감았다 풀어놓았다 하면서 가는 옛길은
영월을 한참 지난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몰운대로 가는 길은 여러가지.
우리는 영월을 지난 뒤 정선의 남면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제 몰운대에 거의 다 왔다.
저 구름이 서울에서 출발하며 보았던 그 구름이 맞겠지.
길가의 교통표지판에선 나팔 하나가
조용히 환영 나팔 불어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몰운대에 도착했다.
일단 명화공주님 세워놓고 이곳에 왔다는 증거 하나 남겼다.

Photo by Kim Dong Won

근처에만 가도 아찔한데,
몰운대 절벽 끝에 앉아서 사진 한 장 찍으신다.
오, 대담하신 걸.

Photo by Kim Dong Won

황동규의 시속에 등장하는
벼락맞고 죽은 척 하고 있는 나무가 바로 이 나무 아닐까 싶다.
절벽 가장자리로는 항상 1m 정도를 남겨놓고도
발끝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녀가
어쩐 일로 나무 아래쪽으로까지 내려갔다.
나무 밑에 가셨으면 나무의 턱밑 수염을 찍으셔야지
왜 날 찍고 있으신거야.

Photo by Kim Dong Won

오후 늦게 떠난 길이라 마음이 좀 바빴다.
얼마있지 않아 들어갔던 입구로 다시 나왔다.
우리를 싣고 온 길이
여전히 몰운대까지 올라왔다 산을 돌아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주차비도 전혀 받지 않는 너른 주차장에
차들이 간간히 들고 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높이를 버리고 좀전에 내려다보던
몰운대의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올려다보니 아득하다.
아래쪽에선 몰운대를 휘감고 지나가는 물소리가 아주 좋았다.
냇가에 수영금지라고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여기선 왜 수영을 못하게 해.”
내가 답했다.
“헤엄치고 놀라는 얘기지.”
나중에 알았는데 정선의 상수도 물이 바로 이 물이어서 그렇단다.
물에서 놀려면 좀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갔더니
몰운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몰운대도 좋았지만 구름이 더 좋은 날이었다.
서울서 출발할 때 그 구름이 모두 정선의 구름이었으니
출발할 때는 구름의 앞쪽을 보고 있었고
지금은 구름의 뒤통수 보고 있는 중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온통 바위뿐인데
그 바위 위에 소나무가 빽빽하다.
하긴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의 단단한 머리통 위에서도 머리털이 아주 잘도 자라니 말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몰운대에서 명화공주님 댁으로 가다가
소금강이라 불리는 화암계곡에서 차를 멈추었다.
명화공주님의 예쁜 미소 하나 남겼다.
이번에 신세많이 졌어요.

Photo by Kim Dong Won

명화공주님과 그녀, 우리가 타고 간 차.
오, 둘 다 멋진 걸.
분위기도 비슷하시고.

Photo by Kim Dong Won

명화공주님 아버님.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이 아버님의 잘생긴 모습에 반했을 것이란 사실을.

Photo by Kim Dong Won

융숭한 저녁을 대접받았다.
특이하게도 만두가 세 가지 였다.
그 날 먹은 세가지 만두 중의 하나이다.
정선의 명화공주님 댁 만두라고밖에는 달리 명명할 수 없는 만두였다.
이와 함께 나물이 든 만두가 있었다.
잠시 경상도에서 살 때 그 나물 만두를 내놓았더니
그곳 사람들은 만두를 잘 몰라서 그런지
그것은 “나물 보따리”라 불렀다고 했다.
나도 나물 만두는 생전 처음 먹어보았다.
물론 내 젓가락은 쉬지 않고 자꾸만 나물 만두로 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초면의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두 그릇을 비운 뒤,
남은 또 한 그릇을 곁눈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물만두.
그렇지만 나머지 한 그릇을 또 해치울 수는 없어서
그냥 자리를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염치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올라오는 길에 미련이 남기는 했다.
그냥 염치불구하고 먹을 걸 그랬나.
아무래도 몰운대보다 그 만두맛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다.
영월을 빠져나가는 터널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영월로 나오기 전에 잠시 화암 약수터에 들렀다.
그 약수는 아주 진한 사이다맛이었다.
나는 그런 약수는 생전 처음 마셔 보았다.
약수라는 말에 걸맞는 약수란게 그런 것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이번에 정선가서 참 여러가지를 처음 알게 된 셈이다.
아쉬운 것은 오후에 내려간 길이라
여유롭게 사진찍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
몰운대와 몰운대로부터 정선까지 이어지는 화암계곡의 길은
화암, 그러니까 그림 바위란 말 그대로
바위로 그려놓은 그림들의 연속이었다.
언제 그 그림보러 일찍 내려가서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다 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몰운대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몰운대와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고 올라온 셈이다.
다음에는 그곳에 가서 오랜 시간 머물며
바위로 그려놓은 그곳의 그림에 오래오래 눈맞출 생각이다.

18 thoughts on “눈인사만 나누고 온 정선 몰운대

  1. 경치는 눈에 익은 강원도풍인데 가는 길은 강원도풍이 아니네요.
    꼬불꼬불한 길을 돌다보면 몇 번 어지럽고 해야 강원도 같은데 말입니다.
    만두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중 하나인데 군침이 넘어갑니다.

    1. 영월까지의 길은 정선의 강원랜드 때문에 거의 도시길이 다 되어 버렸어요. 그렇지만 마지막에 간 길은 강원도 길이더군요. 몰운대부터 정선까지의 길인데… 그건 분명한 강원도 길이었어요. 요즘은 강원도 가도 강원도 길을 보기가 쉽지가 않아요.

  2. 말로만 듣다가 직접 사진으로 보니 멋지네요~
    나중에 혼자 가보고 싶네요^^

    암튼 세랑 블로구 타고 다녀갑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 감사드려요^^

  3. 아, 인터넷 느린 곳에서 많은 사진은 고역입니다.
    궁금한데 보지는 못하고 엑박은 뜨고… ㅠ_ㅠ

    오늘부로 늦게 출국한 짐은 모두 벗어던졌습니다.
    학점관련해서 수강신청에 엄청 애먹었거든요;;
    어리버리모드도 이제 탈피해야지요~ 오늘 밤엔 맘껏쉬고
    내일부터 본분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

    사진이 몇 장 보이긴한데…역시, 그립습니다.
    아무리 신기하고 멋지다고해도- 한국이 좋습니다.

    저도 영덕 하면 해맞이공원, 풍력발전소밖에 안떠올라요~
    아- 옆사람과 다시 가보고싶군요. 그 새벽의 일출이란..!

    소식 전하고 슬쩍 가봅니다~~~

  4. 운전하는 중 열씸히 찍으시더니 스토리전개가 멋지네요~
    잼있게 만담을 주고 받으시는 두 분 덕분에 제가 더 즐거웠답니다.
    강원도 정선 츠자가 가을이라 그런지 싱숭생숭해서 이 나이에 가출이라도 할 참이였는데 방황하는 여심과 함께 여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담에 그림바위에 가신다하면 미리 집에 전화해둘께요. 만두 세그릇 꼭 드세요~ ㅎㅎ
    저녁에 세랑네서 또 뵙겠네요..뒷풀이해얍죠!!!! ㅋㅋ

    1. 나두 모처럼 강원도 바람 쐬니 엉덩이가 들썩들썩 합니다요~
      고마웠어요.
      그리고 꼭 어머님께 전해주세요.
      만두국 정말 맛있었다구요.
      한그릇 남겨 놓은거 눈에 계속 아른거릴거예요. 울 털보~^^

    1. 아마 어디서도 먹을 수가 없고
      오직 명화공주님 댁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만두가 아닐까 싶어요.
      이제 한번 얼굴을 내밀었으니
      다음에 가면 그냥 체면을 뭉개고 먹을라구요.
      워낙 맛있어서요.

  5. 와- 좋으셨겠다.
    흰구름이 끝내주는데요~ ㅋㅋ
    정선, 날잡아서 가고픈 장소.
    몰운대와 함께 맛과 멋 기행
    오랜만에 여행다녀온 사진
    이야기가 풍성하네요.

    1. 정선은 제 고향하고 가깝기는 한데
      교통이 너무 험해서 잘 가질 못했어요.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요.
      지금까지 두번 정도 갔던 기억이예요.
      이번에 간 화암은 한폭의 그림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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