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에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아트밸리에 갔었습니다.
아트밸리라고 하니 계곡 속에 예술이 가득 차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공사중이고, 정식 개장이 한참 남아있는 곳이라
예술은 없고 그냥 계곡만 있었습니다.
원래는 돌을 캐던 채석장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돌을 캐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그 날 아트밸리에서 유난히 제 눈을 끌어당긴 것은
그곳의 진달래였습니다.
대개의 진달래는 흙이 넉넉히 덮인
산비탈에 자리를 잡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에 충분한 때문인지
종종 진달래들은 그런 곳에서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곤 합니다.
무리지어 있으면 더더욱 눈길을 끕니다.
그 눈길 끝에선 분홍빛이 고운 진달래꽃이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진달래가
뿌리내릴 흙이 넉넉한 곳에서만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진달래 중엔
뿌리를 들이밀기엔 너무 단단해 보이는
바위를 엿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때의 진달래는 조금 무모해 보입니다.
여리기 이를데 없는 진달래꽃을 보고 나면
더더욱 그 여린 꽃으로 바위를 두드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흙으로 덮인 부드러운 산비탈에서 적당히 자리를 찾은 뒤,
햇볕의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피어할 꽃이 진달래처럼 보입니다.
바위를 마주하고 나면
더더욱 진달래는 그곳에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질 않습니다.
바위는 바늘끝도 들이밀기 어려워보이는
단단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달래꽃과 같은 여린 생명이 기대기엔
너무 가혹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바위 틈새를
자신의 자리로 삼는 진달래가 있습니다.
아마 바위로 걸음을 떼었을 때
수많은 다른 진달래들이 말렸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말린 그 자리를
바위의 진달래는 기어코 자신의 자리로 삼습니다.
삶은 각박하겠지만
그러나 그곳의 진달래도 똑같이 꽃을 피웁니다.
속을 파면 그저 바위밖에 나오지 않을 듯한 바위 틈새에
진달래는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봄마다 꽃을 피웁니다.
바위 위의 진달래가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기면
우리의 시선엔 다른 느낌이 묻어납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겪었을 삶의 힘겨움에 대한 짐작 때문일 것입니다.
군락지에서 피면 그냥 꽃으로 보이는데
바위 위에서 꽃을 피우면
우리는 꽃에서 삶까지 동시에 보게 됩니다.
원래 바위에는 바위 밖에 더 무엇이 있을까 싶습니다.
바위를 잘라내다만 흔적을 엿보면
그 속도 여전히 단단한 바위입니다.
사람이라면 겉은 그래도 속은 따뜻하다니 하여
속을 달리 기대해볼 여지가 있을텐데
바위는 겉이나 속이나 모두 바위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바위를 잘라내고 남은 가파른 자리에서
진달래가 삶의 자리를 찾아낸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겉이나 속이나 모두 바위인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삶의 둥지가 될 여지가 있나 봅니다.
깎아지른 바위의 한가운데,
발디딜틈도 찾기 어려운 그 틈새에서 진달래는
비비고 살아갈 삶의 둥지를 찾아내고 봄마다 꽃을 피웁니다.
그렇게 가끔 이끼나 기생하던 바위가
진달래가 가꾸는 꽃의 자리가 되곤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진달래의 꽃으로 덥혀진
생명의 온기가 바위에 흐르기 시작합니다.
좀 둘러보다 보면 그 품이 제법 넓어진
바위도 눈에 띕니다.
그 사이로 뿌리를 내릴 흙이 왠만큼 넉넉하게 쌓였는지
그 곳에 자리잡은 진달래는
제법 가지를 무성하게 뻗고 꽃도 풍성하게 가꾸어 냈습니다.
그 진달래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진달래가 바위의 품을 파고든 것이 아니라
바위가 품을 열어놓은 것이란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진달래 가운데 바위를 사랑한 진달래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어려운 길도 마다않고 걸음을 내딛게 만듭니다.
그 진달래의 사랑이
바늘끝도 들이밀기 어려운 바위로 하여금
안간힘으로 틈을 벌려 진달래의 자리를 마련하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진달래는 대개는 그냥 꽃으로 우리의 시선을 채우지만
때로는 삶의 다른 이름으로 꽃을 피우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바위에게 다가가
바위로 하여금 안간힘으로 틈을 벌려
진달래꽃을 맞아들이게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함께 사는 생활만 있는가 하면
각박한 현실을 넘어서는 의지의 삶이 있기도 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품고 어려운 길도 마다않고 함께 가며
깊은 사랑으로 잉태되는 삶도 있습니다.
살펴보면 자연이나 인간 세상이나 참 비슷한 듯 합니다.
8 thoughts on “절벽과 진달래 – 경기도 포천의 아트밸리에서”
전 진달래꽃보면 막 흥분할 정도로 좋아해요…^^
이른 봄 푸석푸석한 산을 핑크빛으로 물들여주는 진달래 참 예쁩니다. ^^
진달래를 좋아하시는 구나.
강화에 있는 산들이 진달래가 아주 흐드러지게 피더군요. 어디를 가나… 봄에 남자친구랑 한번 가보세요. 기분내기 좋답니다.
가을에 보는 진달래…
금강산 바위 틈에 피어 났던 바위채송화가 생각이 나네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채송화…
이념을 떠나서 남과 북이라는 장벽을 넘어 채송화는 우리네 것과 같았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꽃들은 더욱 제 빛깔을 곱게 물들이는 것 같습니다.
고마운 꽃들…
산을 깎아 돌을 캐다보니
원래 산 위에 있던 진달래가 절벽을 타고 씨앗을 내려
바위 위에 핀 진달래가 많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겐 그게 우리와 비슷한 삶과 사랑의 모습으로 보이긴 했지만요.
오다가 근처의 채석장을 여러 곳 보았는데
진달래 필 때쯤 한번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진달래 색이 참 고와요, 바위의 색과함께 어우러지니 정말 절경입니다.
바위위에 꽃이 피거나 나무가 자라는 것을보면 신기합니다, 도데체 씨앗이 어떻게;;
포천에는 이곳말고도 채석장이 아주 많은데
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절벽의 진달래를 주제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진달래가 번지 점프를 하다 그리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ㅋ
감동입니다.. 🙂
바위위에 난 진달래는 난생 처음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기생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을
이스트맨님의 글속에 담겨지면 꽃에게도 삶과 사랑이란 단어가 적합해지네요.
근데 궁금한 것은, 진달래 씨도 날아다니는 건가요?
민들레 처럼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기에 피어났을까요?
저토록 여린 친구가.. 말이에요.
참 자연은 신비합니다. 🙂
저도 처음이었어요.
온통 바위로 된 곳이었는데 평평한 곳의 진달래도 많았지만
이 날은 바위의 진달래만 쫓아다녔죠.
진달래가 씨앗이 있다고 하네요.
9월 중순, 그러니까 요즘 시기에 채취를 한다고 해요.
한번 눈여겨 봐야 겠어요.
날아다닐 것 같지는 않은데
절벽 위에서 뛰어내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