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20여년을 자랐지만
정작 영월의 고씨굴과 청령포를 가본 것은 서울로 올라온 뒤였다.
언제라도 가볼 수 있는 곳은 자꾸만 뒤로 밀어두고
이상하게 먼 곳으로만 눈을 돌리게 된다.
매년 가을, 천호동의 한강변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구리의 한강변에
코스모스를 지천으로 뿌려놓고 축제를 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몇번의 가을을 지나치면서도 그곳에 들르지 못했다.
추석 다음 날인 9월 15일,
아는 사람이 그곳에서 사진찍고 있다며 얼굴이나 보자고 해서
드디어 처음으로 그곳에 들렀다.
하늘이 푸른 오후 시간에 그곳에서 코스모스와 놀다가 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분명한 가을색이었고,
땅을 내려다보니 분명 코스모스가 가을이 왔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리쬐는 햇볕의 따가움은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하늘의 가을과 땅에 펼쳐놓은 코스모스의 가을 사이에
여름이 안간힘으로 끼어 있었다.
바람이 가끔 그 여름을 슬쩍슬쩍 밀어내 주었다.
그래도 덮긴 더웠다.
더우면 꽃밭의 꽃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듯 보인다.
꽃밭에서 백일홍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코스모스 보러 왔는데 다른 꽃들도 많다.
코스모스 축제는 일주일 뒤부터 시작된다고 들었다.
다른 꽃들은 코스모스의 가을 축제를 축하하러 온 셈이다.
무덥거나 말거나
그래도 코스모스를 보는 순간, 가을 분위기 물씬난다.
옅은 바람에도 끊임없이 몸을 흔들며 들뜬 몸짓으로 사람들을 반겨준다.
바로 옆의 한강으로 나가보니 바람이 잔물결을 타고
끊임없이 강을 건너 코스모스 밭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코스모스 하나가 하늘에 대고 기도 중이다.
코스모스는 이렇게 많은데 내 짝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저에게도 짝을 찾아 주세요.
그 코스모스, 짝을 얻었다.
색깔마저 잘맞는 좋은 짝이었다.
아, 나도 짝을 얻고 싶다.
나도 짝좀 주면 안되나요.
분홍 코스모스도 짝을 얻었다.
그런데 색을 보니 짝짝으로 짝을 얻었다.
하도 많다보니 일일이 색깔 맞춰 짝을 엮어주기가 쉽지 않다.
그냥 대충 맞춰서 살어.
인간세상에선 동성동본으로 짝맞추면 살기 더 힘들어.
너네도 짝을 얻었구나?
유난히 들러붙은 코스모스 커플 앞에서 내가 물었다.
우리는 그냥 짝 정도가 아니예요.
우리는 짝을 넘어 거의 그림자를 얻었다고 봐야해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살면 짝이 되지만
우리처럼 둘의 거리가 아주 가까우면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가 되죠.
실제로 바람이 흔들어도
그림자 사이의 둘은 거의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개는 짝으로 살지만
가끔 우리도 그림자처럼 들러붙고 싶다.
거미 녀석이 장난질쳤다.
코스모스로 하는 종이접기 놀이이다.
토끼를 접은게 아닌가 싶다.
같이 간 그녀는 가위를 접었다고 했다.
그럼 옆의 코스모스와 가위바위보 놀이하면 항상 이기겠네.
코스모스는 보밖에 못내니 말이야.
하지만 아직 주먹을 움켜쥔 꽃몽오리 만나면
꽃잎을 펼 때까지는 백전백패할거다.
어릴 때 코스모스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었다.
코스모스가 싫었던 것은
한여름에 꼭 학생들을 동원해서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학교 주변으로 상당히 먼거리까지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있었다.
땡볕에 코스모스를 심는 일은 힘든 편이었다.
그냥 코스모스만 심었다면 그다지 싫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까운 개울에서 물을 길어다 한바가지씩 주는게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길을 따라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함께 걸으며 놀던 추억은 아주 좋았다.
양옆으로 코스모스가 심어진 길을 걸으면
마치 코스모스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줄을 지어 심어놓으면
코스모스가 나란히 줄을 서서 어디론가 몰려가는 느낌이 난다.
종종 코스모스 꽃을 따서 다리 위에서 개울로 날리며 놀기도 했었다.
코스모스는 빙그르르 돌면서
김연아도 결코 흉내못낼 절대지존의 회전연기를 선보였다.
개울에 떨어진 코스모스는 물결을 타고 떠내려갔고,
우리는 한참 동안 흘러가는 코스모스에 시선을 맞추고 있곤 했다.
얘네들은 독수리 오형제인가.
왜 다섯이 나란히 모여있는거지.
꽃잎이 모두 여덟 개군.
좋겠네.
꽃잎 하나에 순결을 담고,
꽃잎 둘에 평화를 담고,
꽃잎 셋에 사랑을 담고…
최소한 소중한 것 여덟은 꽃잎에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게다가 흰색이라 깔끔하기도 하고.
마이크로 렌즈를 코스모스 속으로 들이밀다 깜짝 놀랐다.
코스모스의 품안에 별이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엔 코스모스 보러가는 사람들에게
꼭 돋보기를 하나 가져가라고 권해야 겠다.
하늘의 별은 천문대 망원경으로 가까이 가고,
코스모스 품안의 별은 돋보기로 가까이 간다.
별의 하늘은 항상 캄캄하지만
코스모스의 별이 뜨는 하늘은 코스모스의 꽃잎이어서
들여다볼 때마다 색을 달리한다.
코스모스의 별은 분홍 하늘에 뜨기도 하고,
또 흰하늘에 뜨기도 하며, 짙은 적색의 하늘에 뜨기도 한다.
가을 하늘이 높아지는 건,
아마 가을이 어디쯤 오나 하늘이 길게 목을 빼기 때문일거다.
그렇게 하늘이 목을 길게 빼면 그 품이 넓어지고
가을은 하늘의 품이 넉넉하게 넓어졌을 때 비로소 그 품에 안긴다.
그와 달리 여름은 좁은 품에서 부등켜안고 뒹구는 계절이다.
여름이 뜨겁고 끈적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을 하늘과 함께 코스모스도 목을 길게 빼고
가을이 어디쯤 오나 궁금해한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여름에 심었던 길가의 코스모스가 있어
매번 가을이 길을 잃지 않고
우리 곁에 올 수 있었던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가을은 코스모스를 보고
그 옆이 자신이 설 자리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코스모스는 옆자리를 가을의 몫으로 비워놓고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코스모스 꽃밭의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코스모스가 가을의 몫으로 마련해놓은 옆자리를 냉큼 꾀차고 사진들 찍고 있었다.
사람들도 코스모스의 옆에서 가을이 되고 싶은가 보다.
22 thoughts on “코스모스랑 놀기 – 구리의 한강시민공원에서”
어머니가 백일홍을 참 좋아하셨는데….
저번에 세미원갔을때 몇송이 있길래 찍어왔는데 여기는 알록달록 무리로 있네요~
들어가는 입구 쯤에 있던 걸요.
반겨주기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백일홍이 먼저 반겨주었어요. ^^
노란꽃은 백일홍이 아니고 금송화랍니다, 히힛~
아, 백일홍 아래 있는 거 말이죠.
백일홍만 알고 그건 모르겠더군요.
감사. ^^
11번째 코스모스 들판 사진은 모네의 그림 색감이나 분위기가 떠오르네요. 🙂
다음에 갔을 때는 그림 속을 걷는 느낌으로 걸어봐야 겠어요.
백일홍, 너무 이뻐요.
코스모스가 주제인줄 알지만…
코스모스 사랑이야기도 재밌고요.
젤 마지막 사진은 특수렌즈같은걸루 찍으시나요? 그냥은 안잡힐거 같은데..
코스모스 속의 별사진 말씀이시죠?
사실 별은 눈으론 잘 안보여요.
너무 작아서요.
그래서 마이크로 렌즈로 찍어요.
현미경 렌즈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그걸로 들여다 봐도 사실 별이 곧바로 보이질 않아요.
초점을 잘 맞추면 그 순간 별이 반짝하고 떠오르죠.
렌즈를 갔다대다가 깜짝 놀랐어요.
별이 나타났다 사라졌거든요.
그때부터 별을 찍겠다고 코스모스 속으로 집어넣듯 렌즈를 들이밀었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더군요.
바람 때문에 꽃이 흔들리니까 초점 잡기가 쉽지가 않았거든요.
꽃속을 마이크로 렌즈로 들여다보면 종종 또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요.
그게 아니라 맨마지막의 시원한 코스모스 밭과 하늘 사진 말씀하신 것도 같고…
그 사진은 10mm 렌즈라는 광각 렌즈로 찍어요.
말은 10mm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12mm 정도인거 같아요.
저렇게 넓은 풍경을 다 잡으려면 그 렌즈밖에는 못하죠.
그거보다 더 넓게 찍을 수 있는 어안렌즈라고 있는데 비싸서 아직 못샀어요. 고건 10.5mm. 사고 싶은 렌즈 가운데 하나이긴 하죠.
꽃속의 별은 성능좋은 줌렌즈이겠거니 했는데 마이크로라구요 @.@ 그것도 순간에 나타난거라니 정말 특별한 사진이구요.
하긴 저기 실물크기 코스모스에도 별은 안보이니 눈으론 못보겠군 생각하긴 했어요.
제가 말한건 마지막 코스모스밭.
어느책에서 어안렌즈로 찍은걸 봤는데 그건 좀 너무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이 사진은 넓게 잡혔는데 참 자연스러워서 어안렌즈말고 딴게 있나 싶었죠.
어안보다 광각이 더 좋은데요^^
어안은 아무래도 상이 많이 왜곡이 되요.
근데 요즘은 그걸 자연스럽게 펴주는 소프트웨어가 있어요.
원래 광각도 많이 왜곡이 발생하는데
왜곡이 최소에 그치는 각도가 있어요.
그래서 그 최소의 왜곡 각도를 잡고 찍으면 그런데로 볼만해 진답니다.
워낙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요즘은 자연스럽게 펼 수가 있더라구요.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어요.
예전에는 삐딱하게 찍으면 반듯하게 잘라서 사용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더라구요.
그냥 사진에다 기준선을 그어주면 알아서 똑바로 세워주더군요.
DSLR 카메라는 모두 RAW라는 포맷이 있는데 이번에 그거 사용했더니 여간 편리한게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는데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별 편리한 방법이 다 나오는 거 같아요.
물론 위의 사진은 그다지 왜곡이 심하질 않아 그냥 사용했지만요.
특수렌즈에 컴터까지 사용하면 넘 미안하거 아닐까요? 헤헤
동원님은 컴터로 살짝 펴주는건 안하실거죠?
그럼 신비감이 떨어지거든요~
모든게 다 그림의 떡인 똑딱이 주인의 심술멘트였슴다.
다른 무엇보다 “딱 한 사람” 그게 젤로 중요하죠.
하지만 전 두루두루 예쁘게 보기로 했어요. ㅋ
그래도 꽃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여자 앞에서는 꽃보다 그대가 더 아름답다고 해야 해요.
반드시 명심!
동원님 사진을 보고 있자면, 꼭 한국이 아닌 딴나라에 사시는 분 같네요.
코스모스 속을 들여다 볼 때는 잠시 별나라 여행을 했지요. ㅋ
그럼 길가에 하늘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모두 힘들여 심었던거네.
난 쟤네들이 알아서 옹기종기 피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나는 길가의 코스모스 하늘하늘거리는 모습이 좋더라.
가을오는 걸 젤 먼저 반겨주는 것처럼 손도 흔들어주고…
집 들어오는 길가 어귀에 심어진 코스모스나 해바라기는 마치 엄마가 마중나온 것처럼 좋더만.
더 웃기는 건, 한시간에 차가 한대 지나갈까 말까 한
학교 옆 삼거리에 서서 교통정리도 했다는 거 아니겠어.
교통정리를 한게 아니고 이제나 저제나 차가 오나 쭈구리고 앉아 기다렸던 기억이 나는 군.
참, 왜 그짓들을 하고 살았는지, 원.
난 그래서 박쫑히나 존두환 이런 시대는 아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그나마 코스모스를 심었던 것은 좀 잘한 짓 같기는 해.
시골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은 주었을 테니까.
코스모스와 얽혀서 여러 추억이 떠오르는 군.
ㅋㅋㅋ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길의 교통정리…
비오는 날 물청소차 지나가는 소리 하고 있구먼.^^
지금 생각해보면 시대 자체가 웃기는 시대였던거 같어.
그런데 그런 시대로 거꾸로 돌아가는 대통령을 뽑아놓았으니 그것도 웃기는 일이야.
그래도 그때는 대놓고 웃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대놓고 웃을 수 있잖어.
예쁜 코스모스에도 참 여러가지 생각이 담기네.
오래 오래 코스모스 바라 보면서 향수를 달래 봅니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 저도 길가에 코스모스 심으러 나갔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코스모스 몇 장 가져가도 되는지요…
매번 염치 없이 보기만 하면 될 것을 또 욕심을 부려보네요.
용서 구하면서…
매번 먼길 오시는 수고에 그 정도 보답이라도 할 수 있는게 다행이지요. ^^
코스모스 심기에 대한 같은 기억을 갖고 계시다니… 그때는 좀 지겨웠는데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되었어요. 전 초등학교 때만 심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