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월 29일) 아침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는 쨍소리가 나도록 화창했다.
그건 소백산을 오르는 여러 길목 가운데서
내가 천동계곡쪽의 길을 택해 걸음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간쯤에서 나는 소나기를 만나고 말았다.
산은 철마다 모습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날씨에 따라 하루에도 그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산은
날씨에 관계없이 어느 때가도 좋은 곳이었다.
입구에서 철쭉을 만났다.
활짝 피어있을 때는 하늘을 향하여 온몸을 세우고 있더니만
지면서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숙인 모습은 영락없는 종이다.
피었을 땐 하늘로 빨강이나 분홍의 색을 흩어놓고
질 때는 빨강이나 분홍의 소리를 땅으로 흩어놓는가 싶다.
아마도 저 덩굴이 저만큼 올라가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쳐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다람쥐처럼 날쌔게 저곳까지 나무를 타지 않았을까 싶었다.
천동계곡 쪽으로 소백산을 오르면
산을 오르는 길의 절반 이상을 계곡의 물과 함께 할 수 있다.
계곡의 물은 힘차다.
아울러 계곡의 물은 날렵하다.
우리는 발디딜 곳을 찾기도 어려운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날렵한 자태로 빠져나가며
빠른 속도로 아래쪽을 향하여 쏟아져 내려온다.
물은 그러나 부드럽기도 하다.
아마 그 부드러움이 없었다면
상처없이 그많은 바위 사이를 지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땐
아니, 아직도 목련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산행길에 마련된 안내판을 통하여 알게 되었는데
이건 목련이 아니라 함박꽃 나무였다.
다른 말로 산목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여러 곳에서 마주쳤으며 자태가 고왔다.
하류 쪽의 계곡에서 보면 물이 힘이 있지만
상류로 올라가면 계곡의 물은 아기자기해지기 시작한다.
산에 갔을 때,
특히 그곳에서 만나는 가족의 느낌은 참으로 특별하다.
산은 사실 혼자 오르기에도 힘든 곳이다.
그런데 아빠는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딸을 받쳐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의 갈 길을 끌어준다.
사랑이란 말 이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순간이다.
그럼 엄마는?
엄마는 평생시의 삶 자체가 그렇다.
그리고 그 엄마가 받쳐주기 때문에
아빠의 사랑이 오늘 힘을 내는 것이다.
중간쯤을 지나서 소나기를 만났다.
쨍한 날씨 때문에 아무 준비도 안했기 때문에
꼼짝없이 빗줄기를 모두 뒤집어 쓰고 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600m쯤 남겨두고 비가 잠시 물러섰다.
저만치 안개 속에 사람들의 윤곽이 뿌옇게 보였다.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에 오르긴 했지만
빗줄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냥 카메라를 품 속에 넣고 조심조심하면서
비로봉을 알리는 표석만 촬영을 했다.
어찌보면 이건 내가 정상에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정상에 올랐다는 그 사실 하나가 주는 만족감도 말할 수 없이 크다.
나는 그 만족감을 내 혼자의 기억 속에만 담아두긴 싫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정상을 알리는 표석의 사진을 찍었다.
또다른 사진을 찍기 위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비에 젖은 온몸에 싸늘하게 체감이 되는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곧바로 다시 산 아래로 걸음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안개는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 대신
가까운 풍경을 안개의 신비로 감싸서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안개가 감싸면
주목도 그 분위기가 더더욱 신비롭게 변한다.
조금 내려왔을 때
나무들 사이로 다시 쨍하고 햇볕이 비쳤다.
히, 약오르지 하고
나에게 낼름 혓바닥을 내미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내지 않고 그냥 아이구, 귀엽다 귀여워하고 생각하며
씩 웃어주었다.
비 때문에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던 길과 달리
잠깐잠깐씩 졸졸거리는 물과 동행을 했다.
뜻하지 않은 친구였다.
원래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러운 법인데
흙보다 돌이 많아서인지 미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철벅철벅 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빗속의 산길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좀 성가신 후유증을 남긴다.
바지자락과 신발에 여기저기 달라붙은 흙이
바로 그 후유증의 대표 주자이다.
사람들은 맑은 물을 만나자
잠시 휴식을 취하며 흙을 씻어냈다.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른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비가 바꾸는 풍경은 안개의 길 뿐이 아니었다.
비가 오자 민들레도 그 모습이 바뀌었다.
바람만 불면 언제든지 날아갈 듯 했던 그 민들레가
차디찬 빗줄기를 뒤집어 쓰고 난 뒤론
상당히 까칠해진 느낌이다.
빗줄기가 적신 땅을 다시
햇볕이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비온 뒤의 산행길,
그것도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내내 비가 내린다면 모를까
잠시 산을 훑고 지나가는 소나기라면
비로 인하여 산행길이 더욱 특별해질 수 있다.
물방울이 맺힌 나뭇잎의 풍경은
햇볕이 물방울을 다 거두어간 뒤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러니 소나기가 내릴 때
그 비를 쫄딱맞고 산을 오르고 내려가야 한다고 해도 억울해 하지 마시라.
햇볕이 가꾸는 풍경이 있는가 하면
소나기도 나름대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는
놀라운 예술적 손길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비가 오면
산이 물로 빚어낸 한폭의 수채화가 될 수 있다.
서울로 오는 내내 축축한 옷 때문에 영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소백산의 소나기가 선물한 그 수채화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6 thoughts on “빗속에 오른 소백산 비로봉”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
어느 것 하나 못났다고 할 수 없죠.
그냥 다 좋은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조근조근 산길을 밟는다는 것도 좋고.
난 내가 아이업고 손잡고 갈 자신 있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먹을 것만 잔득 지고 산을 가겠네요. ㅋ
전 소백산은 여름에만 가봤는데 루야님 사진보니 겨울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제가 맥을 쓰다보니 루야님 블로그 스킨과 궁합이 잘 맞질 않아서 댓글을 못남겼어요.
두물머리의 그 낮으막한 담은 사실은 처음엔 철조망이었는데 그 뒤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담으로 들어섰다가 최근에 다시 허리 위를 약간 넘어서는 낮은 담으로 바뀌었더군요. 집근처라 자주 가다보니… 그런 변화도 챙겨두게 되네요.
지낭 토욜은 동문 산행이 남한상성에서 있었답니다..
아침부터 오는 비~
번거로왔으나~ 되려 그 오던 비 때문에
더 특별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우중산행이 사진찍는 사람에겐 더더욱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은 좋은 것을 많이 건진 듯.
하지만 비옷은 준비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도 뭐 사진은 그때그때 상황이 주는 장면이 워낙 특별하기 때문에 특별히 좋은 시간이나 날씨는 없는 듯도 하고.
그냥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산을 살피고 찍으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올랐던 산중 가장 높은 산이 소백산이었어요.^^
그때도 5월 중순쯤이었는데 저녁 8시쯤 출발해서 새벽 산을 올랐었죠.
첨 보는 꽃들이랑 나무에 넋이 나갈정도로 너무 좋았던 기억나네요.
거의 다 내려와서 보았던 하얀 수국도.^^
철쭉의 군락지를 찾아간 거였는데
군락지는 어디있는지 보지도 못하고
계곡의 폭포만 잔뜩 찍었어요.
정말이지 예쁜 꽃들이 너무 많더군요.
버스가 끊어져서 제천을 거쳐서 집으로 왔지 뭐예요.
독특한 사진을 많이 얻었어요. 악천후 덕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