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가로수, 그리고 아파트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1월 3일 서울 암사동에서


천호동과 경계를 맞댄 암사동의 한 귀퉁이로
아직도 여전히 논밭이 있다.
암사동의 논엔 벼가 아니라 미나리가 한가득이다.
처음 천호동에 이사왔을 때,
이곳엔 미나리꽝이란 지명이 있었다.
지금도 길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아마 옛날부터 이곳에선 미나리를 많이 키웠나 보다.
미나리는 한뼘 정도의 길이를 제 키로 삼고,
그만큼만 자란다.
더 이상은 키욕심을 내지 않는다.
키로만 보면 미나리는
논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아파트촌과 경계를 맞댄 논밭의 옆으로 작은 길이 하나 나있고,
길가로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촌의 뒤쪽을 기웃거리기 전까지
나는 이런 길이 나 있는 줄 몰랐었다.
이 길은 숨겨진 듯 묻혀있는 길이다.
그 길의 가로수는 미나리보다는 훨씬 키가 크다.
그러나 나무도 어느 정도의 높이를 제 키로 삼고,
그만큼만 자란다.
나무는 키 욕심을 좀 내긴 하지만
그 길의 가로수를 보면 몇년째 키는 거기서 거기이다.
키로보면 나무는
반듯하게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내가 처음 이사왔을 때 이곳의 아파트는
원래는 5층 아파트였다.
동생이 그곳에 살아 자주 놀러갔었다.
그때도 아파트는 커보였는데
재개발이 되면서 그때의 풍경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젠 새로운 고층아파트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의 풍경 때문에
기억 속의 그 5층 아파트들은
이젠 옹기종기 모여있었던 나지막한 느낌으로 남게 되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 아파트들은 어느 날 5층의 높이를 깨끗이 버리더니
훤칠하게 키를 키우며 새로운 아파트로 거듭났다.
새로 들어선 고층아파트는
하늘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순식간에 제 키를 키웠다.
서울의 아파트는 모두 한없이 키욕심을 낸다.
아득하도록 키를 키운 아파트들은
머리로 하늘을 쿵쿵 들이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풀과 나무는 모두 제 키를 갖고 있다.
미나리는 미나리의 키를, 은행나무는 은행나무의 키를 갖고 있다.
풀과 나무는 다들 자기 키만큼만 자란다.
아파트는 제 키가 없다.
그저 하늘높은 줄 모르고 키를 키우려 한다.
그렇게 키를 키워 하늘을 제 머리로 쿵쿵 들이받으며
아득하게 서 있고 싶어한다.
우리의 욕망은 풀과 나무보다는 아파트와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다들 너나 없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가 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은
풀과 나무들 곁으로 가고 싶어한다.
풀과 나무는 그러고보면 우리의 꿈 비슷하다.
무한히 키를 키우는게 우리의 꿈이 아니라
작고 나지막한 나만의 키에
내 삶을 담고 싶은게 우리의 꿈인지도 모르겠다.

4 thoughts on “미나리와 가로수, 그리고 아파트

    1. 바벨탑에 대한 욕망과 함께 풀과 나무의 꿈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게 우리들이기도 하죠. 참, 우리는 이율배반적 존재인듯 싶어요.

  1. 저 많은 아파트들, 점점 더 키를 자랑하는 아파트들, 아직도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면서 더 많은 아파트를 지으려는 사람들…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좁은 땅에 그토록 많은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지… 낡고 오래 된 집이라고 모두 헐어 버리고 새로 아파트를 세워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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