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살지 않거나 가보지 않아도 익숙한 이름의 산들이 있다.
설악산이 그렇고 지리산도 그렇다.
예봉산은 그 정도로 이름의 호사를 누리진 못한다.
가본 사람만 알고, 가까이 사는 사람들만 안다.
몸소 차를 몰고 가면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하면
곧바로 가는 길은 없고, 최소한 한번은 바꿔타야 한다.
또 버스가 이곳저곳을 다 기웃거리면서 가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도 한번 버스타고 가보고 싶었다.
미리 버스편을 알아놓았다가 11월 9일 일요일에 예봉산을 찾았다.
딱 한번 그 산의 중턱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 오른 길을 버리고
팔당역 뒤쪽으로 행로를 잡아 산에 올랐다.
산의 어귀, 밭가에 선 붉은 단풍 한그루가 시선을 끌었다.
사진은 실제처럼 붉게 나오질 않았다.
실제로는 타는 듯이 붉었다.
예봉산 단풍의 예고편 같았다.
항상 그렇지만 산길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아울러 산길은 산꼭대기로 올라가곤 한다.
품안으로 들 때는 아늑하고,
위로 오를 때면 시야가 열린다.
산을 오르다 보면 잠깐씩 숲을 벗어날 수 있다.
처음 숲의 품을 벗어나 시야를 연 곳이다.
팔당댐을 갓빠져나온 한강의 줄기가 보이고,
강건너로 단풍의 색이 곱게 물든 검단산이 보인다.
검단산도 몇 번 갔었는데 가을엔 가보지 못한 듯하다.
내 기억으로는 그런대로 높은 산 같았는데
예봉산이 강하나 건너 북쪽으로 있다고
이미 중턱쯤에서 검단산이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인다.
노란 단풍이 길게 손을 잡고 사람들을 맞는다.
경사가 급해지면서 산을 오르는 걸음의 속도도 느려진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데도
그 걸음이 쌓여 부쩍부쩍 높이를 높인다는 것이다.
산의 놀라움은 천천히 가도 앞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있는 듯 싶다.
산의 중간에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가지 사이로 기웃거리던
산아래 풍경이 한눈에 모두 들어온다.
가지 사이로 퍼즐맞추기하던 재미는 없었지만
이렇게 한눈에 보면 시원한 맛이 있다.
아마 이 사진보면서
어, 저기 우리가 사는 아파트인데 하는 분들이 있을 거다.
단풍과 함께 우르르 몰려내려가 놀러가고 싶은 분들의 마을이다.
흐흐, 누구네 집인지 궁금하지요?
원래 동네 이름만 알고 있으면 아파트촌은 느낌이 건조한데
그 아파트에 사는 좋은 분들을 알고 있으면
아파트촌의 느낌이 갑자기 친근하게 와닿는다.
좋은 분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예봉산 정상의 바로 직전이다.
산의 정상이 아니라
시골의 사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예봉산 정상이다.
흰 깃발은 풍향을 알려주는 바람자루인데
그만 꼬여서 저런 모양이 되었다.
예봉산 정상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한강이 S자를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상에서 동쪽으로 본 풍경.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져 하나가 되고 있다.
왼쪽에서 흘러오는 물줄기는 북한강이고,
멀리 위쪽에서 흘러오고 있는 물줄기는 남한강이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가면 양평에 이르게 되고,
북한강 줄기를 따라가면 춘천을 만난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진 곳이라 두물머리라 부른다.
경치가 좋아 자주 놀러가는 곳이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온통 산이다.
산을 자주 다닌 사람들은
저게 무슨 산, 저건 무슨 산하면서 이름을 꿴다.
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예봉산에 오른 뒤 봉우리 하나 정도 더 타넘으면
곧바로 수종사 있는 운길산으로 갈 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운길산으로 올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갈 데까지 가보자고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보니 한강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경관이 나온다.
노을 좋은 날 좋은 사진 건질 수 있는 곳 같았다.
예봉산에서 철문봉을 거쳐 들리게 된 적갑산이다.
수수하게 세워놓은 표지석이 마음에 든다.
길은 서서히 아래쪽으로 높이를 낮추고 있었고,
그러자 다시 나뭇가지가 풍경을 조각내며 퍼즐맞추기 놀이를 시작한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가지 사이로 잘 짜맞추면서 산아래 풍경을 엿보곤 한다.
양수리에 새로 놓고 있는 다리가 있는데 그곳이 보였다.
한해 전에는 기둥만 서 있더니 이제는 상판이 다 올라갔다.
처음에는 춘천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아닌가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고,
현재 팔당까지 가는 지하철역을
양평과 용문까지 잇기 위한 전철 노선 같다.
예봉산에서 적갑산을 거쳐 내려오는 길은
험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길었다.
중간에 운길산행은 포기하고 도곡리로 내려와
마침 떠나려 하고 있던 버스에 냉큼 올라탄 뒤 덕소까지 나왔다.
저녁 때는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닌다고 했다.
덕소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광장동까지 왔고,
광장동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갈아탔다.
초행길이라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빙돌아온 느낌이다.
10 thoughts on “예봉산에 오르다”
엊그제, 저 수수해 보기 좋은 적갑산 표지석옆 바위턱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도곡리쪽으로 내려왔답니다.
도곡리->적갑산->다시 도곡리^^
이제야 이 포스팅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물푸레나무 꽃필때 꼭 가보렵니다.
엇, 그 정도면 긴 산행인데…
이제 무릎은 괜찮으신가 봐요.
가끔 글이나 사진도 함께 가본 사람들만 누릴 수 있다는 느낌도 들긴 해요.
매년 결심은 하는데 그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계속 놓치는 군요.
이 사진들을 보니, 가을 단풍 들 때 꼭 다시 한 번 가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저 땅만 보며 올라갔는데,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더 생생합니다.
적갑산 쪽으로도 한 번 가 보고 싶어지는군요.
중간 어디쯤인가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있는데
그 나무에 물오를 때쯤 한번 가보고 싶어요.
번번히 그 시간을 놓치고 있어요.
검단산에는 오른 적이 있었는데 강물이 참 시원하게 흐르고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마주 보이던 산이 예봉산이었나 봅니다.
산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야 그나마 때를 덜 타는 것 같습니다.
검단산이 오르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아주 큰 매력이죠.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검단산이 더 좋은 듯 합니다.
아~ 그래서 두물머리군요.
한강의 S 라인을 보니, 역시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
조금씩 단풍의 계절이 물러나는걸요~
가을이 더욱 더 짧아진 듯 해서 아쉽습니다.
완전 우리 말이죠.
두 개의 물이 합쳐지는 머리맡 부분이라는…
양수리라는 말보다 훨 좋은 듯 싶습니다.
우리 집 은행나무는 두 해째 노랗게 물들지도 못하고,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에 푸르딩딩한 상태에서 잎을 모두 떨구는 수난을 당하고 있어요.
예봉산 정상을 오르는 발걸음이 산의 모습을 닮아 정겹습니다.
시골집 사립문을 열 듯 한 걸음 산의 정상에 올라 서는 느낌은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올랐을 때 보다 더욱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 참으로 축복입니다.
언젠가 중턱까지 가본 산이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정상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산도 있어요. 아차산이라고… 한강다리를 건너서 아차산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그 한강다리의 절반을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바꾸고 있더군요. 시내버스 타고 갈 수 있는 산은 아주 많네요. 검단산, 예봉산, 남한산 등등… 멀리로는 언젠가 법주사만 돌아보고 왔던 속리산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